연초부터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암울한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 리비아 내전 이후 한숨 돌리는가 했던 중동 정세가 이번에는 미국과 이란 간 갈등 고조로 전쟁 발발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갈등의 핵심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과 핵무기 개발. 지난해 말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본격화했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가 발표되고 이란의 우라늄 농축과 핵무기 제조 사실이 부각되면서 이스라엘에서는 심지어 핵시설 선제공습론까지 부상한 형국이다.
미국은 이미 이란 중앙은행과의 모든 거래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EU)도 이란의 석유 수입을 금지하는 데 일단 동의해 이제 이란의 석유 수출로는 본격적으로 차단당할 위기에 놓였다. 그러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으로 맞불작전에 나서 중동에 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의 먹구름
이목이 집중되는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위치한 해역으로 페르시아 만에서 인도양으로 빠져나가는 유일한 해로다. 이 해역의 중요성은 뭐니 뭐니 해도 원유 수송에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송되는 원유량은 하루 1700만 배럴로, 세계 해상수송량의 35%가량. 2010년을 기준으로 중동 지역의 1일 평균 원유 생산량은 2520만 배럴로 세계 원유 생산량의 30%에 달한다. 중동에서 생산하는 원유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전 세계로 수송되는 셈. 이 해협을 봉쇄하거나 전쟁 발발로 차단할 경우 지구촌 원유 공급에 일대 차질이 빚어지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지난해 말까지 안정세를 보였던 국제유가는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위험이 거론되자 요동치기 시작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유가는 지난해 10월 3일 77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위기가 고조된 올해 1월 4일 103달러까지 급등했다. 브렌트유는 113달러, 두바이유는 110달러 수준. 이 정도면 지난해 초 재스민 혁명과 리비아 사태 등으로 유가가 급등했던 시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유사한 선례를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심상치 않다. 2008년 7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이 나왔을 무렵 유가는 WTI 값을 기준으로 145달러까지 치솟은 바 있다. 위기가 이어질 경우 이번에도 유가가 당시 수준까지 급등할 소지가 크다. 더욱이 만에 하나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봉쇄되고 미국과 이란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경우 문제는 훨씬 심각해진다. 특히 이란 핵시설에 공습을 단행하고 전쟁이 1년 이상 장기화할 경우 세계 경제가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전쟁이 발발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전쟁의 장기화 여부에 따라 두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미국과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만 6개월 이내의 단기전으로 끝나는 경우다. 이는 과거 걸프전이나 최근의 리비아 내전처럼 미군이 일방적으로 공세를 퍼부어 전쟁을 단기간에 종료하는 시나리오다. 이럴 경우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빠른 시일 안에 해제되고 원유 수송도 6개월 내에 재개되면서 위기에서 급속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안정 최우선 정책 수립을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국제유가는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단기적으로 200달러 수준까지 오르고, 연평균으로는 160달러 수준까지 급등할 수 있다. 국제유가가 이렇게 오르면 세계 경제성장률은 3.4% 수준으로 하락하고 물가상승률은 4.5%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해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3.3%, 물가상승률은 5.5%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길어지면 상황은 훨씬 어려워진다. 미국 또는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공습하고 이란이 미사일 등으로 이스라엘과 바레인의 미군기지 등을 타격하는 시나리오다. 이렇게 되면 전쟁은 일시에 중동 전역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고 미국과 이스라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의 다국적군이 참전하게 될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봉쇄 차원을 넘어 그 자체가 전쟁터가 되기 때문에 원유 수송이 불가능해질 테고, 이란의 정유시설과 원유 수송시설은 전쟁 장기화로 크게 파괴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이란의 원유 생산은 장기간 불능 상태에 빠진다. 다른 중동 산유국도 장기간 원유 수출을 상당 부분 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세계 경제는 1, 2차 오일쇼크 때와 같은 수준의 충격을 받아 경제성장률은 2.9%까지 떨어지고 물가상승률은 5.1% 수준까지 급등할 것이다. 한국도 경제성장률 2.9%, 물가상승률 7.1%라는 힘겨운 성적표를 피하기 어려워진다. 저성장에 초고물가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는 앞서 말했듯 미국과 이란이 군사적 충돌을 벌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고, 실제로 현지 상황이 군사적 분쟁으로 연결될 위험은 아직 작아 보인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가 이어지면서 두 나라가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에 처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더욱이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3.6%에 그쳤지만 물가상승률은 이미 4%를 넘긴 데다, 올해는 이보다 상황이 더욱 안 좋을 것이라는 정부와 각 연구기관의 발표가 쏟아지고 있다. 유로존의 신용등급 강등 도미노와 그리스의 디폴트 위험성이 고조되는 와중에 미국, 중국, 신흥국 등 세계의 주요 경제 주체가 모두 불확실성에 떠는 상황인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 악화와 국제유가 급등 우려는 이렇듯 세계 경제 전체를 염두에 두고 들여다봐야 그 후폭풍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심각성을 감지한 듯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9.7%에 이르는 이란산 원유 수입 비중을 낮추려는 노력이 대표적이다. 꼭 전쟁이 벌어지지 않아도 이는 당장 이란산 원유 금수조치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압력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이기도 하다. 현재 정부는 이란산 원유 수입 비중을 2010년 수준인 8.3% 선까지 감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시간이다. 국방수권법으로 미국이 본격적인 이란 제재를 시행하기까지는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미국의 제재안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면 이 기간 안에 이란산 원유를 대체할 물량이라도 확보해야 한다. 2011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이란으로부터 수입하는 원유는 연간 8300만 배럴 내외로, 전체 원유 수입량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에 이어 네 번째(9.7%)로 비중이 크다.
이란산 원유 수입을 감축하려면 먼저 단기적으로는 증산 여력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등으로부터 대체 원유를 확보하는 작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간이 부족한 만큼 외교력을 총동원해 이란산 원유 감축분에 해당하는 물량을 이들 국가로부터 최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미국이 예외조항을 인정해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오히려 지금은 대미(對美), 대중동 라인 가릴 것 없이 외교채널을 모두 가동해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란산 원유 수입을 최소한만 감축해 미국을 상대로는 제재에 동참했다는 명분을 챙기고, 다른 중동 국가로부터는 원유 수입 물량을 최대한 확보해 실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외교가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초고유가 상황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시급하다. 먼저 국제유가 급등에 대비한 비상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석유 비축 규모를 늘리고 에너지 수급로를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물시장을 활용해 석유자원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등의 비상수급 대책과 함께 에너지 관리대책을 세우는 것도 필수적이다. 또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이들 대책을 효과적이면서도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점검하고 상황별 매뉴얼을 마련하는 위기대응 체제도 구축해야 한다.
경제정책 전반으로 눈을 돌려보자. 정부는 물가관리 등 경제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전기와 가스 요금, 대중교통 등 공공서비스 요금 인상을 억제해 물가상승으로 인한 가계 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임금과 물가상승의 악순환 고리를 차단하는 차원에서 노사 합의에 따라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완화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석유에 대한 관세 인하 조치나 상황에 따른 유류세 인하 조치도 적극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 기회에 단기적으로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장기적인 구조까지 손보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먼저 경제 및 사회 부문의 비용을 절감하는 노력으로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을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에너지 소비가 큰 현재의 산업구조를 바꿔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자원 효율적인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등 거시적인 구조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전 사회적으로 확산해 에너지 고효율 차량과 가전제품 사용을 늘려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중·장기 에너지 전략 마련 중요
가장 근본적으로는 국가 차원의 중·장기 에너지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80%가 넘는 중동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러시아나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의 원유개발 사업에 참여해 수급로 다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또한 태양과 풍력, 조력 등 대체에너지 개발에 대한 투자를 과감히 확대하고, 에너지 의존도가 낮은 경제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청사진과 정책을 개발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중동 지역에 대한 면밀한 상황 파악 및 모니터링을 위해 지역 전문가와 네트워크 정보망을 구성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2년, 위기는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의 지혜와 힘을 모아 대응책을 준비해나가는 일이다. 닥쳐온 파도가 워낙 높긴 하지만 이를 하나하나 넘어서는 동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미 이란 중앙은행과의 모든 거래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EU)도 이란의 석유 수입을 금지하는 데 일단 동의해 이제 이란의 석유 수출로는 본격적으로 차단당할 위기에 놓였다. 그러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으로 맞불작전에 나서 중동에 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의 먹구름
이목이 집중되는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위치한 해역으로 페르시아 만에서 인도양으로 빠져나가는 유일한 해로다. 이 해역의 중요성은 뭐니 뭐니 해도 원유 수송에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송되는 원유량은 하루 1700만 배럴로, 세계 해상수송량의 35%가량. 2010년을 기준으로 중동 지역의 1일 평균 원유 생산량은 2520만 배럴로 세계 원유 생산량의 30%에 달한다. 중동에서 생산하는 원유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전 세계로 수송되는 셈. 이 해협을 봉쇄하거나 전쟁 발발로 차단할 경우 지구촌 원유 공급에 일대 차질이 빚어지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지난해 말까지 안정세를 보였던 국제유가는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위험이 거론되자 요동치기 시작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유가는 지난해 10월 3일 77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위기가 고조된 올해 1월 4일 103달러까지 급등했다. 브렌트유는 113달러, 두바이유는 110달러 수준. 이 정도면 지난해 초 재스민 혁명과 리비아 사태 등으로 유가가 급등했던 시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유사한 선례를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심상치 않다. 2008년 7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이 나왔을 무렵 유가는 WTI 값을 기준으로 145달러까지 치솟은 바 있다. 위기가 이어질 경우 이번에도 유가가 당시 수준까지 급등할 소지가 크다. 더욱이 만에 하나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봉쇄되고 미국과 이란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경우 문제는 훨씬 심각해진다. 특히 이란 핵시설에 공습을 단행하고 전쟁이 1년 이상 장기화할 경우 세계 경제가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전쟁이 발발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전쟁의 장기화 여부에 따라 두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미국과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만 6개월 이내의 단기전으로 끝나는 경우다. 이는 과거 걸프전이나 최근의 리비아 내전처럼 미군이 일방적으로 공세를 퍼부어 전쟁을 단기간에 종료하는 시나리오다. 이럴 경우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빠른 시일 안에 해제되고 원유 수송도 6개월 내에 재개되면서 위기에서 급속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안정 최우선 정책 수립을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국제유가는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단기적으로 200달러 수준까지 오르고, 연평균으로는 160달러 수준까지 급등할 수 있다. 국제유가가 이렇게 오르면 세계 경제성장률은 3.4% 수준으로 하락하고 물가상승률은 4.5%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해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3.3%, 물가상승률은 5.5%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길어지면 상황은 훨씬 어려워진다. 미국 또는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공습하고 이란이 미사일 등으로 이스라엘과 바레인의 미군기지 등을 타격하는 시나리오다. 이렇게 되면 전쟁은 일시에 중동 전역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고 미국과 이스라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의 다국적군이 참전하게 될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봉쇄 차원을 넘어 그 자체가 전쟁터가 되기 때문에 원유 수송이 불가능해질 테고, 이란의 정유시설과 원유 수송시설은 전쟁 장기화로 크게 파괴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이란의 원유 생산은 장기간 불능 상태에 빠진다. 다른 중동 산유국도 장기간 원유 수출을 상당 부분 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세계 경제는 1, 2차 오일쇼크 때와 같은 수준의 충격을 받아 경제성장률은 2.9%까지 떨어지고 물가상승률은 5.1% 수준까지 급등할 것이다. 한국도 경제성장률 2.9%, 물가상승률 7.1%라는 힘겨운 성적표를 피하기 어려워진다. 저성장에 초고물가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는 앞서 말했듯 미국과 이란이 군사적 충돌을 벌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고, 실제로 현지 상황이 군사적 분쟁으로 연결될 위험은 아직 작아 보인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가 이어지면서 두 나라가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에 처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더욱이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3.6%에 그쳤지만 물가상승률은 이미 4%를 넘긴 데다, 올해는 이보다 상황이 더욱 안 좋을 것이라는 정부와 각 연구기관의 발표가 쏟아지고 있다. 유로존의 신용등급 강등 도미노와 그리스의 디폴트 위험성이 고조되는 와중에 미국, 중국, 신흥국 등 세계의 주요 경제 주체가 모두 불확실성에 떠는 상황인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 악화와 국제유가 급등 우려는 이렇듯 세계 경제 전체를 염두에 두고 들여다봐야 그 후폭풍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심각성을 감지한 듯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9.7%에 이르는 이란산 원유 수입 비중을 낮추려는 노력이 대표적이다. 꼭 전쟁이 벌어지지 않아도 이는 당장 이란산 원유 금수조치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압력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이기도 하다. 현재 정부는 이란산 원유 수입 비중을 2010년 수준인 8.3% 선까지 감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시간이다. 국방수권법으로 미국이 본격적인 이란 제재를 시행하기까지는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미국의 제재안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면 이 기간 안에 이란산 원유를 대체할 물량이라도 확보해야 한다. 2011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이란으로부터 수입하는 원유는 연간 8300만 배럴 내외로, 전체 원유 수입량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에 이어 네 번째(9.7%)로 비중이 크다.
이란산 원유 수입을 감축하려면 먼저 단기적으로는 증산 여력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등으로부터 대체 원유를 확보하는 작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간이 부족한 만큼 외교력을 총동원해 이란산 원유 감축분에 해당하는 물량을 이들 국가로부터 최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미국이 예외조항을 인정해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오히려 지금은 대미(對美), 대중동 라인 가릴 것 없이 외교채널을 모두 가동해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란산 원유 수입을 최소한만 감축해 미국을 상대로는 제재에 동참했다는 명분을 챙기고, 다른 중동 국가로부터는 원유 수입 물량을 최대한 확보해 실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외교가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초고유가 상황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시급하다. 먼저 국제유가 급등에 대비한 비상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석유 비축 규모를 늘리고 에너지 수급로를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물시장을 활용해 석유자원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등의 비상수급 대책과 함께 에너지 관리대책을 세우는 것도 필수적이다. 또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이들 대책을 효과적이면서도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점검하고 상황별 매뉴얼을 마련하는 위기대응 체제도 구축해야 한다.
경제정책 전반으로 눈을 돌려보자. 정부는 물가관리 등 경제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전기와 가스 요금, 대중교통 등 공공서비스 요금 인상을 억제해 물가상승으로 인한 가계 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임금과 물가상승의 악순환 고리를 차단하는 차원에서 노사 합의에 따라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완화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석유에 대한 관세 인하 조치나 상황에 따른 유류세 인하 조치도 적극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 기회에 단기적으로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장기적인 구조까지 손보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먼저 경제 및 사회 부문의 비용을 절감하는 노력으로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을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에너지 소비가 큰 현재의 산업구조를 바꿔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자원 효율적인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등 거시적인 구조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전 사회적으로 확산해 에너지 고효율 차량과 가전제품 사용을 늘려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중·장기 에너지 전략 마련 중요
가장 근본적으로는 국가 차원의 중·장기 에너지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80%가 넘는 중동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러시아나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의 원유개발 사업에 참여해 수급로 다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또한 태양과 풍력, 조력 등 대체에너지 개발에 대한 투자를 과감히 확대하고, 에너지 의존도가 낮은 경제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청사진과 정책을 개발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중동 지역에 대한 면밀한 상황 파악 및 모니터링을 위해 지역 전문가와 네트워크 정보망을 구성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2년, 위기는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의 지혜와 힘을 모아 대응책을 준비해나가는 일이다. 닥쳐온 파도가 워낙 높긴 하지만 이를 하나하나 넘어서는 동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