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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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급등할 때마다 찾아온 중동 특수… 이번엔 송유관이 수혜

[김성효의 주식탐사대] 유조선 묶이자 한국이 강한 ‘강관’이 대안으로 떠올라

  • 김성효 글로벌사이버대 재테크·자산관리학과 교수

    입력2026-04-20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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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유가가 치솟을 때면 중동 지역에선 늘 대형 건설 프로젝트 추진 소식이 들려왔다. GETTYIMAGES

    국제유가가 치솟을 때면 중동 지역에선 늘 대형 건설 프로젝트 추진 소식이 들려왔다. GETTYIMAGES

    미국-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유가가 오를 때면 중동 지역의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가 발주됐다. 한국 증시 역시 그때마다 강하게 반응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때를 떠올려보자. 국제유가가 치솟자 중동 산유국들은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발주처가 됐다. 넘쳐나는 ‘오일머니’로 사막에 도로를 깔고, 항만을 세우며, 공항과 산업단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땅 밑에서 나온 석유가 땅 위 인프라로 바뀐 것이다. 이때 한국 건설사들이 수혜를 입었다.

    상징적 장면은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다. 당시 현대건설이 따낸 이 프로젝트 규모는 9억4000만 달러(약 1조4000억 원)였다. 그 시절 한국 정부 예산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이다. 

    사막에 세워진 도시의 꿈

    이때 중동 건설 붐은 한국 경제의 숨통을 틔웠다. 1975년 7억5000만 달러(약 1조1200억 원)였던 해외 건설 수주액은 1980년 82억 달러(약 12조2000억 원)로 10배 넘게 뛰었다. 1973년부터 1985년까지 한국 기업이 중동 등 해외에서 따낸 공사 규모는 700억 달러(약 104조3000억 원)에 이르렀다. 이는 단순한 매출이 아니었다. 석유 수입 대금을 감당해야 했던 한국 경제에 외화를 공급했으며, 한강의 기적을 떠받친 기둥이 됐다. 오일쇼크가 중동에 돈을 안겼고, 그 돈이 다시 한국 경제성장 연료가 된 셈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120달러 안팎까지 치솟았다. 시장은 오래된 기억을 꺼내 들었다. “고유가 시대에는 중동에서 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2022년 하반기에 사우디 네옴시티 구상이 등장했다. 사막 한가운데 총연장 170㎞짜리 직선 도시를 만들고 인구 150만 명이 거주하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세계 최대 부유식 산업단지인 옥사곤 건설, 사막 산악지대에 사계절 스키 리조트인 트로제나 조성, 동계아시안게임 개최 등 현실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러나 고유가는 황당함도 합리화했다. “사우디는 지금 돈이 넘쳐나니 정말 할 수도 있다.” 시장은 그렇게 믿고 싶어 했다.

    한국 증시도 불이 붙었다. 중동 수주 이력만 있어도 주가가 올랐다. 실제로 네옴시티 관련 수주를 따냈는지보다, 과거 중동에서 뭘 해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주가만 보면 이미 네옴시티 건설의 상당 부분을 수주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막에는 삽도 안 꽂혔는데 이미 완공 후 입주까지 끝낸 듯 주가가 뛰었다. 그러나 희망찬 꿈은 유가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유가가 내려오자 기대도 식었다. 프로젝트는 축소됐고, 조감도 속 화려한 상상의 건물들도 함께 무너졌다.

    이번엔 송유관이다

    2026년에도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이번엔 미국-이란 전쟁이다. 호르무즈해협이 흔들리자 국제유가도 다시 뛰었다. 이제 산유국들은 “배로 내보내기 불안하면 땅으로 보내야 한다”는 명제를 놓고 고민한다. 현재 중동의 대형 프로젝트는 도시가 아니라 송유관 건설이다. 사막 밑에 묻히는 강철 동맥이 주목받는다.

    사우디는 원유 수송 능력이 하루 700만 배럴 수준인 동서 송유관을 보유 중이다. 이를 통해 홍해 얀부항으로 원유를 보내 수출함으로써 호르무즈해협 우회 능력을 키우고 있다. 이 파이프라인 길이는 약 1200㎞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있는 관이 부족하니 전쟁이 길어지면 확장 논의가 나올 것이 당연하다.

    이라크도 바스라-하디타 전략 송유관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고 있다. 약 46억 달러(약 6조9000억 원) 규모, 길이 약 685㎞인 대형 사업이다. 단순한 인프라가 아니다. “호르무즈해협이 막혀도 살길을 만들겠다”는 지정학적 선언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예외가 아니다. 기존 아부다비-푸자이라 송유관 확장 카드가 거론되고 있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걸프 국가들이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하는 신규 파이프라인 건설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게 현실화하면 중동 전역은 선으로 연결된다. 사막 아래 거미줄처럼 송유관 네트워크가 깔리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이 다시 호출된다. 대형 송유관 프로젝트는 결국 강관과 피팅(fitting)으로 귀결된다. 길게 뽑아낸 강관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이어 붙일 이음쇠가 있어야 한다. 중동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의 존재감은 작지 않다. 아직은 기대 단계지만, 프로젝트가 구체화되기 시작하면 시장은 다시 한국을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고유가는 언제나 중동에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불러왔다. 1970년대에는 항만과 도로였다. 2022년에는 미래 도시였다. 2026년에는 송유관이다. 그리고 한국은 그 이야기에서 늘 수혜 후보로 등장했다. 국제유가가 치솟으면 한국 증시에서는 기대감이 치솟는다. 이번에도 그 공식을 무시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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