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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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거리 800㎞ 넘는 전기차가 몰려온다

[조진혁의 Car Talk] 한 번 충전으로 서울~부산 왕복… 차체 경량화, AI 활용이 비결

  • 조진혁 자유기고가

    입력2026-02-02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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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차를 탈 때면 으레 하는 걱정이 있다. 겨울철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배터리가 방전되면 어쩌나, 충전해야 할 때 충전소가 안 보이면 어쩌나 같은 것들이다. 충전은 주유에 비해 번거로운 일이다. 이 때문에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이가 적잖다. 그런데 최근 전기차 대중화를 가로막던 충전 스트레스가 혁신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한 번 충전으로 800㎞ 이상 내달리는 전기차가 등장한 덕분이다.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임에도 주행거리 810㎞를 기록한 볼보 EX60. 볼보 제공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임에도 주행거리 810㎞를 기록한 볼보 EX60. 볼보 제공

    볼보, 중형 전기 SUV EX60 공개

    서울에서 부산까지 편도 거리는 약 400㎞다. 주행거리 800㎞라면 한 번의 충전도 없이 서울~부산을 왕복하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전기차업체가 내세우는 주행거리 800㎞는 국제표준배출가스시험방식(WLTP) 기준이니, 이보다 엄격한 국내 기준을 따르면 주행거리가 다소 줄어들 수 있다. 그럼에도 일상 주행이나 지방 여행 시 충전 걱정이 줄어들 것은 분명하다. 

    주행거리 800㎞ 시대를 대중화한 것은 유럽의 전통 강호들이다. 1월 22일 첫 공개된 볼보 EX60은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임에도 WLTP 기준 810㎞를 기록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던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선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 차량의 핵심 무기는 메가 캐스팅 공법이다. 거대한 주물 틀에 쇳물을 부어 차체 하부를 한 번에 찍어낸 것. 이로써 제조 원가를 낮추면서 차량 무게를 15% 이상 줄인 덕에 적은 에너지로도 더 멀리 갈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시스템이 주행 도로의 경사도, 외부 온도, 운전자의 주행 패턴을 초당 수천 번씩 분석하며 모터의 토크를 미세 조정하는 것도 주행거리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안전의 대명사였던 볼보가 이제는 고효율 스마트 모빌리티의 선두주자가 된 셈이다. 

    전기차 주행거리의 비약적 상승을 이끈 것이 값비싼 대용량 배터리가 아니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60은 앞으로 전기차 시장을 좌우할 핵심 경쟁력이 ‘차체 제조 공법’의 혁신과 AI라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BMW의 뉴 iX3가 주행거리 805㎞를 달성한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다. BMW는 뉴 iX3에 기존 각형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에너지 밀도를 20% 높인 6세대 원통형 배터리를 차체 섀시에 통합하는 방식으로 공간 낭비를 줄였다. 또 자체 개발한 통합 제어 컴퓨터 ‘하트 오브 조이’로 기존 엔진 컨트롤 유닛(ECU)을 대체했다. 이 덕에 자율주행과 에너지 관리를 하나의 AI로 통합해 전력 누수를 ‘제로’에 가깝게 통제할 수 있게 됐다.

    메르세데스벤츠 EQS 450+는 배터리 용량 증대보다 공기역학과 열 관리라는 정공법을 택해 주행거리 822㎞를 달성했다.

    설계 혁신과 인공지능(AI) 활용으로 주행거리 805㎞를 달성한 BMW 뉴 iX3. BMW 제공

    설계 혁신과 인공지능(AI) 활용으로 주행거리 805㎞를 달성한 BMW 뉴 iX3. BMW 제공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실리콘밸리의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 모터스가 선보인 루시드 에어 그랜드 투어링은 1000㎞에 육박하는 주행거리를 자랑한다. 그 배경에는 배터리 셀 하나하나의 에너지를 낭비 없이 구동력으로 전환하는 압도적인 전력 변환 기술이 있다. 루시드 모터스의 전기모터는 초소형이지만, 900V 초고전압 시스템과 독자적인 구리선 기술을 결합해 단위 면적당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을 낸다. 

    물론 테슬라도 주행거리 1000㎞에 도달했다. 테슬라의 2세대 로드스터는 전기차 생태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첨단기술의 집약체다. 로드스터의 1000㎞ 주행은 AI 슈퍼컴퓨터 ‘도조’가 관리하는 극도로 정밀한 배터리 시스템과 차량 내 모든 열에너지를 통합 순환하는 ‘옥토밸브’가 결합된 결과다. 테슬라는 오디오 앰프와 인포테인먼트 칩셋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발열까지 난방에 재활용하는 지독한 알뜰함을 보여준다.

    비야디(BYD)도 주행거리 확대에 나섰다. BYD의 럭셔리 브랜드 양왕 U7은 기존 135.5kWh 대용량 배터리를 150kWh로 업그레이드한다고 밝혔다. 그럼 주행거리도 기존 약 720㎞(중국항속거리측정표준(CLTC) 기준)에서 1006㎞로 늘어난다. 가성비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온 BYD가 초고가 프리미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전략 무기로 주행거리를 앞세운 것이다.  

    주행거리 800㎞ 시대는 자동차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과거 명차를 구분하는 기준은 엔진 배기량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앞으로 전기차 시장 판도는 “누가 더 가벼운 소재로 효율적인 골격을 만드는가”와 “누가 더 똑똑한 AI로 단 1W의 에너지까지 쥐어짜내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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