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한모 씨는 연인과 함께 부동산 매물을 보러 다니는 ‘임장 데이트’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 씨는 임장 데이트를 하면서 남자 친구와 결혼을 결심했다. 한 씨는 “지난해 5월 처음 임장 데이트를 할 때는 구체적인 결혼 계획을 구상하지 않았다”며 “임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남자 친구가 ‘전세 사기 안 당하는 법’이라는 책을 사서 읽는 등 부동산 투자 관련 공부를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것을 보고 든든한 마음이 들어 올해 하반기로 결혼 날짜를 잡았다”고 말했다.
‘현장에 임한다’라는 뜻의 임장(臨場)은 2~3년 전만 해도 청년층에게 낯선 단어였다. 부동산을 살 여력이 안 되는 청년층은 부동산 매매계약을 하기 전 현장에 직접 가서 물건을 살펴보는 임장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2030세대 사이에서는 당장 부동산을 살 생각이 없어도 투자 공부를 위해 부동산을 현장 답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연인과 주말에 영화관이나 놀이공원에 가는 대신 임장 데이트를 하고, ‘임장 클래스’를 통해 열댓 명이 떼로 모여 집을 보러 다니기도 한다.
한 인터넷 포털 스토어에 올라온 임장 클래스 상품. [네이버 스토어 캡처]
커플은 ‘임장 데이트’, 솔로는 ‘임장 클래스’
임장 데이트를 즐기는 2030세대 연인들은 “투자 공부도 하고 애인의 대출 가능 금액도 알 수 있어 일석이조”라며 기자에게 임장 데이트를 적극 추천했다. 남자 친구와 지난해 임장을 6번 한 20대 이모 씨는 “실제로 아파트 매매계약을 할 생각이 없어도 내 예산 수준에 맞는 아파트를 볼 때 가장 재미가 있었다”며 “임장을 준비하면서 남자 친구와 서로 돈을 얼마나 모았는지 확인하고 대출 가능 금액이 얼마인지 공유했는데 남자 친구의 경제관념을 알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임장을 함께할 사람이 마땅치 않은 사람은 ‘임장 클래스’를 찾는다. 부동산 유튜버나 ‘부동산프로’로 불리는 강사들이 이끄는 유료 임장 클래스에 신청한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집을 둘러보는 것이다. 임장 클래스 수강자들은 임장을 앞두고 매일 부동산 관련 기사 읽기 등 과제를 수행해 서로 인증하는 스터디를 진행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 아파트 단지들을 둘러보는 클래스를 수강한 20대 김모 씨는 “혼자 임장하기에는 민망해 클래스에 신청했는데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좋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임장 클래스 4개에 참여했다는 30대 수강생 김모 씨는 “클래스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게 좋아 클래스를 수강할 때마다 스터디를 이끄는 조장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임장 클래스의 커리큘럼과 수강료는 다양하다. 아파트 단지 열댓 개를 둘러보는 클래스의 수강료는 보통 7만~8만 원 수준이다. 아파트 투자로 100억 자산을 일궜다는 강사가 진행하는 이론 강의와 강사가 동행하는 임장 일정이 포함된 6주 커리큘럼의 클래스 수강료는 50만 원이다.
애인 대출 가능 금액 미리 확인까지
당장 부동산 거래를 할 계획이 없는 20, 30대에게 시간을 내어 매물을 보여주는 부동산공인중개사는 많지 않다. 하지만 임장을 즐기는 청년은 집 안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많다고 한다. “임장이 취미”라는 20대 여성 임모 씨는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면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유치원생인지, 아니면 중고교생인지 보고 주민들의 세대 구성을 가늠할 수 있다”며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가 많이 보이면 아파트 이미지가 좋아진다”고 말했다. 임장 경험이 4번 있는 한 씨는 “아파트 동 현관에 ‘몇 호실의 담배 연기로 입주민의 항의가 많아지고 있다’고 적힌 문서나 층간소음 관련 경고문이 붙어 있는 것만 봐도 해당 아파트의 문제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매물로 나온 아파트의 내부까지 보려고 20, 30대 임장 클래스 수강생들은 신혼부부인 척 연기를 하기도 한다. 나이가 있는 수강생은 친정엄마 역할을 맡는다. 지난해 3월 부동산 매물을 보려고 ‘새댁’ 연기를 했다는 30대 여성 A 씨는 “완벽한 연기를 위해 부동산공인중개사 앞에서 남편 역할을 맡은 30대 수강생에게 ‘오빠 같이 가’라고 외치기도 했다”며 “매물을 직접 보고 나와서는 임장 클래스를 함께 듣는 다른 수강생들에게 매물의 특징을 설명해줬다”고 전했다.
부동산을 거래할 생각이 없으면서 매물만 보려는 사람이 많아지자 부동산공인중개사들은 애로를 호소하고 있다. 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회장은 “집을 살 생각이 없으면서 놀러오듯이 집을 보러 오는 경우가 많아 공인중개사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데 심각한 지장이 있다”며 “부동산 계약을 진행할 때 공인중개사가 중개의뢰인에게 실비를 청구하는 것처럼 임장 활동에도 실비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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