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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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반려동물 건강보험제도

[이학범의 펫폴리] 현행 동물진료비 100% 보호자 부담… 도입한 외국 사례 없어

  • 이학범 수의사·데일리벳 대표

    입력2024-12-24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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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과 행복한 동행을 위해 관련법 및 제도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멍냥 집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반려동물(pet)+정책(policy)’을 이학범 수의사가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이번 글에서는 반려동물 건강보험제도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1989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시행됐습니다. 소득이 있는 모든 국민은 매달 건강보험료를 납부합니다. 그 대신 아파서 병원에 갈 때, 약국에서 약을 살 때 일부 금액(본인부담금)만 납부하는 혜택을 받습니다. 진료 과목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평균 본인부담금은 전체 진료비의 10~15% 수준입니다. 최근 저도 대학병원 응급실에 다녀왔는데, 진료비 총 56만8490원 중 본인부담금 14만4210원만 납부했습니다. 이마저도 실손보험에서 12만9210원을 돌려받았습니다. 제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단 1만5000원이었죠.

    반려동물 보건 증진과 보호자 부담 경감을 위한 반려동물 건강보험제도 도입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GettyImages]

    반려동물 보건 증진과 보호자 부담 경감을 위한 반려동물 건강보험제도 도입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GettyImages]

    사람 1만5000원 vs 반려동물 57만 원

    반면 반려동물은 건강보험제도가 없습니다. 따라서 반려동물이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전체 진료비를 보호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본인부담률 100%인 셈이죠. 사람의 실손보험 같은 사보험(펫보험)이 있긴 합니다. 현재 10개 손해보험사가 펫보험 상품을 판매 중이고, 가입자도 매년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가입률은 1.4%에 그칩니다(손해보험협회 2023년 기준).

    국민건강보험제도 같은 공보험이 없고, 사보험(펫보험) 가입률은 낮은 만큼 반려동물 보호자 입장에서는 동물진료비 부담이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동물진료비가 비싼 것은 아닌데, 당장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훨씬 많다 보니 비싸게 느껴집니다. 만약 제가 최근 응급실에서 받은 검사와 치료를 제 반려묘가 같은 비용을 책정한 동물병원에서 받았다고 가정하면 저는 56만8490원을 모두 내야 했을 것입니다. 본인부담금 차이가 너무 크죠. 이 때문에 일부 반려동물 보호자 사이에서 “반려동물도 건강보험제도를 시행해달라”는 요구가 나옵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경남 김해갑)은 ‘반려동물진료보험심의회’를 만들어 운영하는 법안(수의사법 개정안)을 발의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수의사법 개정안에 따르면 반려동물진료보험심의회는 농림축산식품부 소속으로 운영되고, 이곳에서 반려동물 진료 관련 공보험을 구축할 법적 근거가 마련됩니다. 심의회는 담당 공무원, 수의사회 추천 인사, 보험협회 추천 인사, 관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며 △반려동물진료보험 목적물의 선정에 관한 사항 △반려동물진료보험에서 보상하는 질병 또는 상해의 범위 및 진단·치료 비용의 범위에 관한 사항 △보험료율 산정에 관한 사항 등을 논의합니다.

    민 의원은 “반려동물 공보험 도입을 논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반려동물 공보험제도를 체계적으로 구축할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반려동물 보건 증진에 기여하고 보호자 부담을 경감하려는 것”이라고 법안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당장 반려동물 공보험을 도입하자는 것은 아니고, 심의회를 만들어 관련 기초 논의를 시작해보자는 취지입니다. 민 의원은 같은 내용의 법안을 21대 국회에서 발의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습니다.

    “반려동물 의료 공적 영역 맞나” 지적도

    국민건강보험제도 같은 반려동물 공보험을 도입한 나라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잘 운영하는 나라이기에 반려동물 공보험 또한 잘 운영할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 의견이 나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반려동물 의료를 과연 공적 영역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현실적으로 도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제도는 1980년대에 처음 시행됐기 때문에 전 국민이 따르는 것이지, 만약 지금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시행하겠습니다. 모든 국민은 병원, 약국에 가지 않아도 소득에 따라 매달 보험료를 납부해야 합니다”라고 한다면 합의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또 반려동물 건강보험제도를 시행하려면 보험료를 부과할 동물이 특정돼야 하는데, 결국 ‘동물등록이 완료된 개체’가 대상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이 경우 동물등록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보호자도 생길 수 있습니다.

    참고로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은 ‘반려동물진료보험법 제정안’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국민건강보험처럼 반려동물 보호자 전체가 매달 ‘동물의료보험비’를 내고 동물병원에 갈 때 진료비 본인부담률을 낮추는 사회보험 방식을 검토한 바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사보험의 보험료와 사업 운영관리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로 법안을 발의했지만요. 많은 토의와 논의를 거쳤음에도 사회보험이 아닌 다른 방식을 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반려동물 공보험 도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 의원이 반려동물진료보험심의회를 구성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반려동물 공보험이 다시금 도마에 올랐는데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번 법안이 어떻게 논의되는지 함께 지켜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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