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防空)은 말 그대로 하늘에서의 위협을 저지하는 것이다. 적 전투기나 폭격기, 미사일이 날아오면 이를 격추하는 행위 전반을 의미한다. 방공작전은 여러 군사작전 가운데서도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분야로 꼽힌다.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매우 비싼 무기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미그(MiG)-29. [뉴시스]
30년간 신형 전투기 구경 못 한 北
수백㎞ 밖 표적을 공격할 수 있는 스커드미사일은 1발에 300만 달러(약 43억830만 원) 정도 한다. 이를 막기 위해 패트리엇 시스템을 구매하려면 레이더·통제소·발사대·지원유닛으로 구성된 1개 포대가 세트로 필요한데, 포대당 가격이 7억~10억 달러(약 1조52억~1조4300억 원)에 육박한다. 요격용 미사일 역시 싼 것은 1발에 300만 달러, 비싼 것은 600만 달러(약 86억1660만 원)나 한다.
전투기를 상대하려면 방공작전용 전투기도 마련해야 한다. 전투기는 기종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전투기로 꼽히는 중국 FTC-2000G는 대당 1000만 달러(약 143억6100만 원)다. 가장 비싼 전투기라는 미국 F-22는 대당 2억 달러(약 2872억2000만 원) 상당이다. 하지만 지대공미사일이나 전투기 같은 무기는 아무나 사지 못한다. 방공무기나 전투기 같은 장비의 거래는 국제사회 감시와 통제가 매우 심하고 가격도 비싸기 때문이다. 북한은 소련 붕괴 후 30년 넘는 세월 동안 신형 지대공미사일이나 전투기를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북한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북한은 2008년과 2010년 중국에 J-10A, JH-7A 전투기 공급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 2014년에는 최룡해 당시 노동당 비서와 노광철 부총참모장을 러시아에 보내 수호이(Su)-35 공급을 요청했지만 거부됐다. 당시 활발한 교역 상대국이던 한국을 고려한 부분도 있겠지만, 북한이 유엔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제재 대상국에 무기를 공급할 경우 국제적 반발에 직면할 수 있고, 전투기를 주더라도 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6월 19일 북한 평양에서 만나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러시아 주력 전투기 Su-27
신형 전투기를 갖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뜻을 이루지 못했던 북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기회였다. 2023년부터 탄약 공급에 나선 북한은 이후 미사일과 화포를 수출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사단급 규모 병력을 파병했다. 당연히 이는 공짜가 아니었으며, 한국과 서방 정보당국은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무엇을 받아올지 동향 추적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국 정부에 의해 러시아가 평양 방공망 현대화를 지원했다는 정보가 공개됐고, 최근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이 북·러의 전투기 거래 합의 소식을 공개했다. 러시아가 4세대 전투기 Su-27과 미그(MiG)-29를 북한에 공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Su-27은 옛 소련이 미국 F-15에 대적하려고 개발한 제공전투기로, 1985년부터 실전에 배치됐다. 이 전투기는 주력 전투기로 대량 배치될 예정이었지만 소련이 1991년 무너지면서 220여 대만 생산됐다. 2000년대 이후 개발된 현대화 개수형 Su-27SM, Su-27SM3 80여 대가 추가돼 러시아 공군에는 300대 정도가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개량형 80대는 러시아 본토를 겨냥한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습이 격화되면서 방공작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러시아가 Su-27을 북한에 준다면 1991년 이전에 생산된 기체, 즉 30년 넘은 노후 기체를 손본 뒤 공급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구형 기체도 현역 기체인 만큼 러시아가 자국 방공망에 구멍을 내면서까지 북한에 대량으로 공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MiG-29는 러시아가 당장 북한에 넘길 수 있는 여유분이 많은 전투기다. Su-27이 미국 F-15에 대응하는 전투기라면, MiG-29는 F-16과 체급이 같다. 당초 소련은 고성능 대형 주력 전투기와 적당한 성능의 경량급 보조 전투기를 섞어 운용하는 미국 공군의 하이로믹스(High-Low-Mix) 개념을 모방해 Su-27과 MiG-29를 함께 운용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 전투기가 등장한 1980년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장기화로 소련 경제가 피폐해진 때였고, Su-27보다 훨씬 저렴한 MiG-29조차 200대 이상 생산하지 못했다. 소련 붕괴 후에는 수출조차 실패하면서 ‘미그’라는 제조사의 명맥이 끊길 위기마저 여러 차례 있었다.
가성비 떨어지는 MiG-29
북한은 2014년 러시아에 수호이(Su)-35(사진) 공급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 [뉴시스]
소련의 뒤를 이은 러시아에서 MiG-29에 대한 평가는 더 박했다. 소련 붕괴 후 한동안 극심한 경제난을 겪은 러시아는 여러 종류의 전투기를 운용할 형편이 못 됐다. 이 상황에서 MiG-29는 주력 전투기인 수호이 시리즈와 호환되는 부품이 별로 없는 데다, 각 부품의 수명까지 짧아 성능에 비해 유지비도 비쌌다. 반면 수호이 시리즈는 제공 전투기 Su-27, 다목적 전투기 Su-30, 전선폭격기 Su-34 등이 모두 Su-27을 기반으로 재설계된 기종이라서 엔진 등 주요 부품이 호환됐고, 성능도 MiG-29보다 훨씬 뛰어났다. 결국 러시아 공군이 옛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200여 대의 MiG-29는 대부분 곳곳에 방치됐으며, 해군 항공대와 훈련부대에서 1개 연대 규모 정도의 전력만 유지됐다. 이번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러시아군 MiG-29가 단 한 차례도 전장에 등장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그는 MiG-29를 어떻게든 팔아보려고 MiG-29M, MiG-33, MiG-35 등 개량 모델을 출시했다. 하지만 항모 탑재용으로 인도에 MiG-29K 일부 기체를 패키지로 판매하고, 예멘·이집트·알제리에 소량 수출하는 데 그쳤다. 황당한 것은 수출된 기체 대부분이 중고였다는 점이다. 미그 공장에는 옛 소련 시절 발주돼 생산했지만 소련이 붕괴하면서 러시아 공군이 인수를 거부한 MiG-29S 기체 100여 대가 있었다. 수출된 기체들은 장기간 방치됐던 MiG-29S를 가져다 일부 부품을 교체·개량한 뒤 출고한 것이었다. 이 중 가장 많은 수량인 65대를 발주했던 알제리는 1차분 15대를 인수했다가 해당 기체들이 중고품을 개조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성능 부족, 계약 위반을 이유로 34호 기까지 납품받은 후 전량 반품했다. 현재 러시아 공군이 보유한 MiG-29 240여 대 가운데 42대는 이때 반품된 34대와 2012년 이후 폐업 위기의 미그를 살리기 위한 정책적 배려로 신규 주문한 8대다. 북한에 공급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이 이 42대다.
이 42대는 MiG-29SMT로 분류된다. 러시아 공군이 방치한 200여 대의 MiG-29는 현재 북한이 운용하고 있는 초기형과 거의 동일한 구형이지만, MiG-29SMT는 레이더와 엔진을 교체하고 기체 일부를 재설계한 MiG-29M을 바탕으로 한 현대화 버전이다. ‘Zhuk-ME’ 펄스 도플러 레이더를 탑재해 110~130㎞ 거리에서 표적 탐지가 가능하고, 최대 10개 표적을 추적해 이 중 4개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 북한이 보유한 구형 MiG-29와 비교하면 대단히 강화된 성능이다.
북·러 군사협력 심화가 변수
우크라이나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며 공개한 영상.[페이스북 SPRAVDI 계정 캡처]
러시아는 MiG-29SMT 신규 물량 제공 외에도 북한이 보유 중인 MiG-29 전투기의 성능 개량 사업도 지원할 수 있다. 이 경우 북한은 개량형 MiG-29를 최대 60여 대 확보하게 된다.
문제는 북한이 손에 넣을 수 있는 MiG-29가 재활용 기체라는 점이다. 러시아가 보유 중인 MiG-29SMT는 40여 대에 불과하고, 이것들은 알제리 반품 때 밝혀진 바와 같이 1990년대 초반에 생산된 구형 동체와 부품을 재활용해 만든 기체다. 부품 신뢰성과 안정성이 떨어지는 데다, 수명 자체도 짧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MiG-29SMT를 받더라도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기껏 대량의 무기를 넘겨주고 파병까지 했는데 반품된 구형 기체를 재활용해서 준다는 러시아 측 제안을 들었을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북한도 받아 올 전투기들이 재활용 기체라는 점을 모를 리 없다. 북한에 우선 공급될 전투기들은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이고, 애초에 김정은이 욕심냈던 Su-30SM, Su-35S 같은 신형 전투기 도입 협상이 별도로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북·러 군사협력이 본격화된 시점에 김정은이 방문했던 콤소몰스크나아무레 수호이 전투기 생산 공장에서 생산 능력을 높이기 위한 대규모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받을 전투기가 구형 MiG-29라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북·러 군사협력이 심화돼 북한이 4.5세대 이상급 신형 전투기를 받아 오는 상황을 막기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