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값을 상징하는 검은 백조(왼쪽)와 ‘블랙 스완’ 저자 탈레브.
먼저 칠면조 비유다. 칠면조 한 마리가 있다. 주인이 매일 먹이를 준다. 칠면조는 주인(인간)을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존재로 인식한다. 그 인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믿음과 신념으로 자리 잡는다. 이렇게 1000일이 지나고 그다음 날. 그날은 추수감사절을 앞둔 수요일이었다. 칠면조에게 기대 밖의 엄청난 일이 찾아온다. 추수감사절 만찬을 위해 죽음을 맞는 칠면조의 운명을 바꾼 건 1000일이 아니라 단 하루였다. 극단적인 하루 말이다.
다음은 몸무게 비유다. 1000명의 표본 집단이 있다. 한국, 중국, 인도,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을 무작위로 뽑아 체중계 위에 올려놓고 몸무게를 잰다. 그리고 이 1000명의 표본 집단에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을 마지막으로 포함시킨다. 전체 몸무게에서 마지막 사람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이 뚱뚱한 사람은 평균 몸무게보다 4배 정도 많이 나간다 해도 300kg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평균 몸무게를 60kg이라 하고, 가장 무거운 사람의 몸무게를 300kg이라 하더라도 그 비율은 5%에 불과하다. 흔히 하는 말로 대세에 지장이 없다. 몸무게와 같은 평균 세계에서는 극단이 들어갈 여지가 많지 않다.
검은 백조 출현 빈도 증가
이번에는 똑같은 표본 집단이 하나 더 있는데, 몸무게가 아닌 돈이다. 마지막에 세계 최고 갑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를 포함시킨다. 게이츠의 재산은 760억 달러(약 81조 원)다. 게이츠가 이 표본 집단 전체의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절대적일 것이다. 사회적 부(富)는 몸무게와 달리 극단의 세계에 있다.
탈레브는 검은 백조의 속성을 3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극단값이다. 극단값은 과거 경험으로부터 그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 기대 영역 바깥에 있다는 얘기다. 둘째, 극심한 충격을 준다. 2008년 금융위기를 생각해보자. 이 충격이 글로벌 경제에,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를 미쳤는가. 2008년 금융위기는 검은 백조였다. 셋째, 검은 백조가 현실로 드러나면 인간은 적절한 설명을 통해 그 인과관계를 찾는다. 선견지명이 아닌 후견지명이다. 금융위기 원인을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전문가가 언론에 나와 분석을 했는가. 그러나 정작 그들 중 검은 백조에 대비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후견지명의 전형적인 예다.
1697년 빌럼 데 블라밍은 오스트레일리아 탐험 여행에서 검은 백조를 보게 된다. 수백 년 동안 서구인은 ‘백조는 모두 흰색’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검은 백조 단 한 마리 의 출현으로 백조에 대한 기존의 모든 가정이 송두리째 뒤집어졌다. 탈레브가 ‘블랙 스완’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면서 이 단어는 금융계에 널리 확산했다.
왜 검은 백조가 투자와 노후 준비 같은 재정적 활동에서 중요할까. 앞의 칠면조가 1001일째 맞은 운명처럼 우리의 재정 상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같은 긍정적인 검은 백조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 효과가 나타나지만, 금융위기 같은 부정적인 검은 백조는 순식간에 출현한다. 탈레브 말을 빌리자면 “건설보다 파괴가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검은 백조를 엄격하게 정의하지 않고 그냥 금융위기나 대형 이벤트로 바라보더라도 검은 백조는 너무 자주 출현한다. 1990년대 이후 흔히 ‘위기’라고 부를 만한 정치·경제 이벤트 리스트를 보면 검은 백조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 알 수 있다. 간단히 연대기순으로 나열해보자.
1997년 말 외환위기, 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과 미국의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2001년 9·11테러, 2003년 신용카드 대란, 2004년 차이나쇼크,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2010년 그리스 금융위기, 2012년 아르헨티나 등 일부 신흥국가 위기, 2014년 중국발 위기설(아직 현실화하지 않았다) 등.
예기치 못한 파괴력 깊은 상처
2009년 9월 미국 뉴욕 윌스트리트에서 리먼브라더스 사태 1년을 맞아 벌인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먼저 부채를 멀리해야 한다. 1990년대 말 이후 대형 정치·경제 이벤트는 대부분 ‘부채’와 관련 있다. 외환위기, 러시아 모라토리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2명이 참여했던 LTCM 파산, 신용카드 대란, 서브프라임 사태, 그리스와 아르헨티나 위기 등은 모두 부채와 연결돼 있다.
부채는 검은 백조의 출현에 가장 취약하다. 왜 그럴까. 부채와 투자 자산의 만기 불일치 문제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고수익을 노리고 단기 대출을 받아 주식과 부동산 같은 곳에 투자하다 검은 백조가 출현하면 단 한 번에 치명타를 입는다. 게다가 부채는 그대로 남는다. 투자는 만기가 없지만 부채는 만기가 있어 언젠가는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채가 일상화한 사회는 검은 백조가 출현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이다. 평균과 균형이 지배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검은 백조가 출현하는 순간 부채는 파괴적 속성을 드러낸다.
현금도 중요한 자산배분 대상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현금이란 손실 없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을 말한다. 은행예금 등이 해당한다. 현금은 검은 백조가 출현했을 때 가장 안전하게 기댈 수 있는 피난처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자녀 교육이든, 한곳에 올인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건강에도 검은 백조가 출현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암이나 교통사고 등 개인에게 치명적인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검은 백조다. 사후적으로만 그 원인을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 보험은 검은 백조의 파괴적 비용을 줄이는 장치다.
인간은 명료하고 질서 정연한 세계를 선호한다.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시장 같은 자산시장은 불안정성이 내재한 곳이다. 이론적으로는 균형을 얘기하지만 현실은 불안정하다. 여기에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에서 예기치 못한 한 사건이 가져오는 파괴적 영향은 너무 빠르고 깊다. 검은 백조의 출현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를 투자와 노후 준비에 반드시 마련해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