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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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님 한 수 가르쳐주시오

파업사태 겪은 현대차 ‘노사 신뢰’ 바탕으로 유연성 강조한 생산방식 배워야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08-13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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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요타’님 한 수 가르쳐주시오

    도요타자동차의 화상회의 모습.

    ”뭐! 현대자동차 평균임금이 5000만원이 넘는다고?”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임금·단체 협상(이하 임단협)이 노조의 완승으로 끝나면서 샐러리맨들 사이에 현대차의 급여와 160일이 넘는 휴가 일수가 화제가 되고 있다. 현대차 직원들은 연봉 기준으로 1인당 평균 600만원에서 800만원이 늘어난 두툼한 월급봉투를 받을 전망이다. 현대차는 또 사업의 확장·합병 공장 이전 사업의 분리·양도시 90일 전에 노조에 통보하고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심의·의결하기로 하는 등 ‘노조의 경영 참여’ 요구를 대폭 수용하고 정규직의 경우 58세까지 정년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이 같은 현대차의 노사합의에 대해 재계는 “다른 사업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는 특히 53년간 노사분규가 없었던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이하 도요타)와 현대차를 빗대며 현대차 경영진과 노조를 싸잡아 공격하고 있다. 현대차노조를 비판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도요타다. 도요타는 세계 3위의 자동차 업체(현대차는 11위)로 지난 회계연도에 약 10조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처럼 회사의 수익이 높았는데도 도요타 노조는 기본급을 동결하고 이익의 7%를 성과급으로 받는 선에서 임금협상을 마무리했다. 연례행사로 파업을 벌여온 현대차노조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도요타 무파업 밑거름은 ‘종신고용’

    하지만 도요타가 오늘날과 같은 노사관계를 맺게 된 데는 1950년대의 치열한 노사갈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현대차가 올 임단협에서 약속한 ‘정년보장’과 ‘임금인상’이 도요타가 악순환 구조를 탈피하는 데 디딤돌이 됐다. 도요타는 노동자들에게 종신고용이라는 당근을 제공하면서 도요타 생산방식, 혹은 린 생산방식이라고 불리는 일본식 생산시스템을 도입해 노동자들을 교묘하게 통제하며 생산성을 ‘극적으로’ 높였다.



    경상대 주무현 교수는 “노조와 파업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양 몰고 가며 전후관계를 생략하고 ‘한쪽은 매년 파업을 해왔고, 다른 한쪽은 파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대차 노조가 도요타 노조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대차 노사가 세계표준 경영시스템을 갖췄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도요타로부터 ‘진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현재 도요타 생산방식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자동차 업체에서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 수공업 생산방식을 대체한 대량생산 체계인 테일러-포디즘의 자리를 도요타이즘이 대체한 것이다. 도요타 생산방식은 팀 작업, 무재고, 무결점주의, 연공에 따른 임금, 종신고용을 특징으로 품질, 비용과 생산성에서 기존의 테일러-포디즘을 크게 앞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도요타 공장에서도 그 경쟁력을 인정받아 세계 1, 2위 업체인 GM과 포드가 도요타 생산방식을 벤치마킹할 만큼 도요타의 생산체계는 비교우위에 있다.

    그동안 한국자동차 업계도 도요타 생산방식을 경쟁적으로 도입해왔다. 대우자동차(현 GM대우)는 1990년대 GM과 결별하면서 도요타 생산방식으로 선회했고, 현대차도 초창기에 포드식 생산체계를 그대로 들여왔다 미쓰비시와 제휴를 맺은 뒤로는 도요타 생산방식으로 상징되는 일본식 생산양식을 ‘충실히’ 따르려 하고 있다. 현대차 아산공장은 도요타 공장의 설계를 고스란히 빌려와 건설된 것으로 유명하다.

    문제는 “도요타 노조가 53년간 파업을 하지 않아 도요타가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며 현대차노조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과 같은 식으로 도요타 생산방식 또한 파편적으로 도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국가의 생산방식이 다른 나라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대차의 도요타 생산방식 도입은 겉모습을 따라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해 현대차에선 포디즘 체계의 경직적 생산체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한국 노동연구소 조성재 연구위원)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도요타 생산방식의 주요한 특징은 유연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도요타 생산방식은 다능공을 육성하고 체계적 직무순환을 통해 유연성을 확보함으로써 수요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한다. 예를 들어 특정 모델 라인의 수요가 늘면 신속하게 다른 모델의 생산라인을 특정 모델 라인으로 전환해 인원을 늘리지 않고 대처한다. 이 같은 유연성은 정년보장으로 인해 고령노동자가 늘어난 도요타의 입장에서 고령노동자의 노동강도를 조절하면서 숙련공을 양성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반면 현대차의 작업반은 도요타에 비해 덜 세분화돼 있으며 직무순환은 회사의 방침이 아니라 직무에 따른 노동강도를 조절하려는 노동자간의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즉 기업 주도가 아니라 노동자 주도로 직무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도요타의 다능공 육성이 승진을 인센티브로 하며 숙련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현대차는 일자리 보장과 노동강도의 불평등 해소에 목적이 있는 셈이다.

    현대차 경영진은 도요타의 시스템을 부러워하며 생산체계의 유연성을 확보하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현재로선 회사 주도로 작업장에서 유연성을 확보하는 일은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부경대 류장수 교수는 “도요타에서는 직장의 권한이 매우 높다. 직장 반장이 라인을 관리하는 도요타와 달리 현대는 작업의 중심에 노조 대의원이 있다”고 했다. 현대차 관계자도 “조립공장에선 노조 대의원 대표들이 왕(王)이다”고 밝혔다.

    결국 현대차가 도요타 생산방식을 받아들이고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대립적인 노사관계, 현대차의 노무관리로 귀결된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현대차가 일본식 생산체계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기술체계, 작업조직은 도요타와 같지만 소프트웨어인 노사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와 달리 도요타가 생산과정에서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노사간의 ‘신뢰’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인하대 윤진호 교수는 “도요타가 무분규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도요타에 평생을 맡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게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반면 현대차와 현대차노조의 관계는 ‘대립’ 그 자체다. 이번 임단협에서 정년보장을 약속 받았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조합원이 그리 많지 않을 정도로 ‘신뢰’가 쌓여 있지 않다. 호황기에는 노측이, 불황기에는 사측이 노사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게 마련이지만 현대차 노사는 모두 주도권을 갖고 있을 때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모든 것을 얻어내려 했다. 98년 대량해고 당시 현대차는 1차 해고자에 핵심 노조원을 상당수 포함시키는 등 구조조정을 노조 무력화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구조조정과 임원감축은 당시로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노조원들은 크게 분노했다. 당시의 무리한 노조 와해 작전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얘기다.

    98년 정리해고 사태 때 현대차노조가 받은 충격은 컸다. 희망퇴직 무급휴직 등을 포함해 1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회사를 떠나야 했다. 대규모 인원감축 이후 현대차에선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을 두려워해 생산라인 조정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작업장 재배치조차도 거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차노조의 경영권 참여 부분도 해외공장 증설 등 고용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상시적 고용불안이 가시화하면서 언제 ‘잘릴지’ 모르니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받아내자는 의식이 팽배해졌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현대차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는 등 주변환경이 좋아지자 노조는 주 40시간 5일 근무제, 비정규직 처우 개선, 노조의 경영 참여 등 노동계 전반의 이슈를 들고 나와 사측을 전방위로 압박했다. 지난해에도 현대차노조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노조의 일부 경영 참여 요구를 관철시킨 바 있다. 향후 시장 전망이 괜찮은 상황이라 현대차측이 수출과 내수에 막대한 손실을 입으면서 더 이상 파업에 대해 버티기식 대응으로 일관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용한 것이다.

    작업시스템 선진화에 눈 돌려야

    세계 자동차업계는 노사갈등을 줄이기 위해 컨베이어벨트에서 ‘노동의 인간화’를 어떻게 달성하느냐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 노사에는 ‘기회가 왔을 때 모든 것을 얻어내려는’ 상호 대립만 있을 뿐 작업시스템의 선진화 등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도요타 공장을 본떠 지은 현대차 아산공장이 도요타 공장과 비교되는 것은 생산력을 높이는 데만 주목하고 있을 뿐 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크게 부족하다는 점 때문이다.

    도요타는 높은 노동강도를 완화하기 위해 일일 8시간 2교대 근무를 도입했다. 노동자들의 취약시간인 야간조를 없앤 것이다. 현대차의 경우도 10년 정도 장기계획을 세우면 충분히 운용할 수 있는 근무제다. 그러나 현대차의 경우는 노조조차도 특근비 감소를 이유로 이 같은 제도의 도입을 꺼린다. 15년차 노동자의 연봉이 6000만원에 이른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현대차 임금에서 절반 가까이가 특근 야근 등 기본급 이외의 것이다.

    사실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자랑하는 도요타는 일본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매력 있는 직장이 아니다. 노동강도에 비해 임금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도요타가 ‘노동의 인간화’에 노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노조의 입김이 작용한 현대차의 생산라인은 ‘노동자간의 경쟁을 지양하고 평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다. 하지만 ‘평등’은 효율성 유연성 측면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고, ‘수준이 낮은 다능공’만을 양산해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어쨌든 도요타 생산방식은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세계 자동차 업계의 주류다. 문제는 그 안에 들어갈 소프트웨어다. 전문가들은 도요타시스템을 도입했다면 노사 모두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이 ‘노사관계에서의 상호신뢰’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 5대 자동차 업체를 꿈꾸고 있는 현대차는 어정쩡하게도 50년대의 도요타처럼 ‘정규직에 대한 완전 고용보장’을 담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뢰관계가 없는, 대립적 경직적 노사관계를 상징하는 GM과 포드의 길을 걷고 있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현대차는 노동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전략이나 로드맵조차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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