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 치료제 ‘소트로비맙’으로 성공 궤도에 오른 ‘버 바이오테크놀로지’. [버 바이오테크놀로지 홈페이지 캡처]
코로나19 팬데믹은 제약바이오 분야 스타트업이 스타 반열에 오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 예가 ‘버 바이오테크놀로지’(Vir Biotechnology·버 바이오)다. 버 바이오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함께 코로나19 치료제 ‘소트로비맙’을 출시해 전 세계에 750만 회분을 배포했고, 지난해 9억1700만 달러(약 1조1300억 원) 매출을 올렸다. 2017년 창업한 신생 제약사로선 눈부신 성장이다. GSK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5% 이상 증가했는데, 소트로비맙의 성공적 출시 덕분인 것으로 분석된다. 2019년 나스닥에 상장된 버 바이오의 주가는 지난해 초반 소트로비맙 효과로 76달러까지 오르며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3배 이상 뛰었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반의 스타트업 버 바이오는 ‘전염병 없는 세상을 만들자’가 캐치프레이즈다. 바이오테크 분야 투자자이자 아치벤처파트너스(Arch Venture Partners) 공동 설립자인 로버트 넬슨과 바이오젠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조지 스캉고스 등이 창업했다. 주요 투자자는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과 소프트뱅크 등이다.
범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도전
소트로비맙은 2003년 유행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감염된 뒤 회복한 사람의 혈액 샘플에서 항체를 확보해 설계됐다. [사진 제공 · GSK]
이러한 감염병 치료제 개발에 주력하던 버 바이오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기회를 포착했다. 2020년 초 중국에서 ‘우한 폐렴’이 유행하자, 버 바이오는 이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킬 것으로 예측하고 변이에 대응할 수 있는 치료제 개발에 착수했다. 2003년 유행한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감염된 뒤 회복한 사람의 혈액 샘플에서 항체를 확보해 소트로비맙을 설계했다. 글로벌 공급망을 확보하고자 GSK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지난해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다.
소트로비맙은 단일클론항체 치료제다. 이는 특정 항원에만 작용해 해당 항원의 침투나 증식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항체를 말한다. 소트로비맙은 경증~중증도 증세를 보이는 코로나19 환자의 입원 및 사망 위험을 79% 줄이는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해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 치료제로 소트로비맙이 유일할 때 버 바이오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미 정부는 소트로비맙을 10억 달러(약 1조2360억 원)어치 사들이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소트로비맙이 스텔스 오미크론에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면서 버 바이오 주가는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스텔스 오미크론은 올해 3월 기준 북미지역의 코로나19 확진 사례 10건 중 9건 이상일 정도로 우세 바이러스로 자리 잡았다. 이에 버 바이오와 GSK는 복용량을 늘린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3월 FDA는 소트로비맙의 긴급 사용 승인 중단을 결정했다. 한편 버 바이오가 소트로비맙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는다 해도 이제는 경쟁 제품이 만만치 않다. 화이자의 팍스로비드(Paxlovid)는 현재까지 등장한 모든 변종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화이자와 머크 등이 알약 형태의 코로나19 치료제를 출시할 예정이다. 정맥주사제인 소트로비맙은 환자가 병원으로 찾아가야 하기에 알약 치료제보다 접근성이 떨어진다.
코로나19 팬데믹 후에도 바이오테크 신예 자리를 지키려면 ‘포스트 코로나’ 치료제를 선보여야 하는 것이 버 바이오가 안고 있는 과제다. 현재 버 바이오가 주력하는 파이프라인 가운데 B형 간염 치료제가 임상 2기, 인플루엔자 치료제가 임상 1기까지 진행된 상태다. 넬슨 버 바이오 이사회 이사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소트로비맙 성공을 바탕으로 코로나19, 독감, 전염성 호흡기 질환 등 세포 융합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 범바이러스 치료제(pan-viral drugs) 개발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