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7일 노동’ 막고자 1953년 도입
‘원조’ 일본은 1990년대 폐지…스페인, 터키, 대만 등 8개국에만 존재
재계·소상공인 “최저임금 2년간 30% 올라…주휴수당이라도 폐지해달라”
2016년 12월 알바연대알바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고용노동부는 체불임금 해결하라!’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월급을 받는 노동자의 시급은 ‘월급÷근로시간’으로 산출된다. 종전의 최저임금법은 근로시간에 주휴시간을 포함하는지 여부에 대한 규정이 명확지 않았다. 다만 최저임금을 산정할 때 주휴수당을 분자가 되는 월급에는 포함시키지만, 분모가 되는 근로시간에서는 제외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실제 일한 시간만 근로시간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도 대법원은 이런 판단에 기초해 최저임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충남 아산의 모 자동차부품업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대법원 판단과 달리 주휴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하는 것으로 최저임금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로써 올해 1월 1일부터 월급에 변동이 없더라도 시급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하루 8시간씩 주5일을 근무하는 노동자가 월급으로 170만 원을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이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을 계산하면 9770원(1,700,000원÷174시간)으로 2019년 최저시급 8350원을 초과한다. 하지만 새로운 최저임금법 시행령을 적용하면 시간당 임금이 8134원(1,700,000원÷209시간)으로 최저시급에 못 미치게 된다.
“주휴시간도 최저시급 산정에 포함하라”
2018년 12월 3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들이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헌법소원 심판 청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논란의 대상이 된 주휴수당의 역사는 길다. 주휴수당은 1953년 근로기준법이 처음 제정됐을 때 도입됐다. 당시 국회가 일본 노동기준법을 바탕으로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 주휴수당도 함께 들여온 것으로 정부 및 학계는 파악한다.
어떤 취지로 쉬는 날에도 임금을 지급하기로 했는지 구체적인 자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다. 노동자의 휴일을 보장하면서도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보완책의 의미로 주휴수당이 도입됐다는 것이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장은 “한국과 일본의 경제가 제조업 위주로 성장하면서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며 “노동자가 쉬는 날 없이 일주일 내내 일하는 것을 막고, 휴일을 ‘주중 임금만 주면 주말에는 굶으라는 것이냐’고 반발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해 사회적 보호 의미에서 유급휴일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국가다. 2017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고용전망(Employment Outlook)’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2069시간으로 멕시코(2255시간), 코스타리카(2212시간)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는 많이 개선된 것이다. 한국인은 1983년에는 2734시간, 2000년에는 2474시간을 일했다. 1990년 7월 ‘동아일보’에는 ‘일요일에 남들처럼 편히 쉬고 싶어서’ 다니던 공장에 불을 지른 한 소년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신군은 한 주일은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7시 반까지, 다른 한 주일은 밤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공기가 좋지 않은 지하실에서 땀 흘려야 했다. (중략) 신군은 토요일 밤 근무를 가장 싫어했다. 일요일 낮시간을 잠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토요일인 지난 7일 ‘무서운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공장이 다 타버리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엉뚱한 것이었다. - (동아일보 1990년 7월 9일자, ‘중노동이 힘들어서…16세 소년 일하는 공장 門 방화’)
한국 주휴수당 제도의 원조 격인 일본은 1990년대 주휴수당을 없앴다. 근로자 임금 수준이 높아지고 근로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주휴수당의 ‘필요’가 수명을 다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은 “일본 주휴수당 제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결과가 없어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많이 오르고 임금체계가 바뀌면서 1990년대 주휴수당을 없앤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휴수당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고 유럽 국가들에 ‘유급휴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은 단체협약을 통해 연 25~30일 유급휴일을 보장한다. 유급인 법정 공휴일도 한국이 하루(5월 1일 노동절)인 것에 비해 영국 8일, 독일 9일, 프랑스 11일 등이다. 법정 연차휴가(유급)도 한국이 최소 15일인 데 반해 영국과 독일은 각각 최소 20일, 프랑스는 최소 25일을 보장한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12개월을 일한 직원에게 28일간 유급휴가를 주게 돼 있다. 다만 한국 또한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2020년부터 법정 유급휴가를 15일 보장하기로 했다(39쪽 상자기사 참조).
‘꺾기 계약’ 들통나 주휴수당 부활
특히 소상공인의 반발이 거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휴수당 존재조차 몰랐던 상인도 많다. 서울 구로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유모(46) 씨는 2017년 당시 자신의 식당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이 주휴수당을 챙겨달라고 요구했을 때 처음 주휴수당에 대해 알게 됐다. 그는 “처음에는 ‘그런 돈 모른다’고 했지만 추후 확인해보니 아르바이트생의 말이 맞았다”며 “그간 조용하다 왜 2년 전부터 아르바이트생들이 주휴수당을 따지고 들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휴수당이 이슈로 부각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다. 그해 초 일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주휴수당을 줄이려고 아르바이트생들과 ‘꺾기 계약’을 한 것이 들통났다. 주휴수당 지급 기준인 주15시간을 넘기지 않으려고 아르바이트생을 주14시간 59분만 일하게 한 것이다. 이외에도 시급 지급 기준 시각을 정각, 30분 등으로 맞추고 1분 일찍 퇴근시킨 뒤 해당 시급을 지급하지 않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런 일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그간 제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2017년 8~9월 아르바이트생 15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임금이 체불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56.9%). 이 중 가장 많은 임금 체불 유형은 ‘월 임금 전체 미지급’(27.7%)이었고, ‘주휴수당 미지급’(23.3%), ‘최저임금 미준수’(17.7%)가 뒤를 이었다. 대기업이 직접 채용하는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생을 제외하면 실태는 더 심각했다. 2017년 10월 알바연대알바노조가 개별 점주가 채용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4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2%가 ‘주휴수당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후 고용부가 적극적으로 실태 파악에 나서면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던 주휴수당 관련법이 다시 효력을 나타내게 됐다.
“암 덩어리 없애달라”
편의점 점주들은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주휴수당을 피할 목적으로 쪼개기 계약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DB]
하지만 올해부터는 처벌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주휴시간을 포함해 최저시급을 따져야 한다는 법적 논의가 일단락됐기 때문이다. 최저시급에 미달하는 시간당 임금을 지급하면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서울 금천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47) 씨는 “주휴수당까지 고려한다면 최저임금 인상폭을 낮게 잡았어야 한다. 결국 주휴수당을 피하려고 쪼개기 계약(주당 14시간 근무)을 하지 않으면 아르바이트생을 쓸 여력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은 정부가 합리적으로 교통정리를 해줄 것이라 생각해 일부 아르바이트생에게 주휴수당을 챙겨줬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아르바이트생과 쪼개기 계약을해야 할 판이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 정든 친구들이지만 법을 충실히 따르다 가게를 접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최모(51) 씨도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생을 쓸 수 없는 영세사업자는 타격이 더 크다. 한 사람을 하루 종일 써야 하니 최저임금 인상에 주휴수당까지 이중고에 빠졌다. 사업자 처지에선 실제 일한 시간 대비 지급하는 임금이 시간당 1만 원을 넘어섰으니, 최저임금 인상을 그만하든지 주휴수당이라는 암 덩어리를 도려내든지 정부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못해도 80%의 소상공인이 나가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계와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된 지난해 12월 31일 일제히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번 개정안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면서 ‘주휴수당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선진국에 거의 없는 주휴수당, 불합리한 임금체계와 최저임금 산정 방식, 영세업자의 부담 능력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고용부에 제출한 검토의견을 통해 ‘개정안으로 근로자 간 임금 격차가 최대 40%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는 주15시간 미만 근로자가 늘어나 주휴수당을 받는 대기업 및 정규직 근로자와 임금 격차가 더 커진다는 지적이다. 경총도 “기업의 어려운 경영 현실과 절박성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임금체계 개편 신호탄 될 수도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임금체계 개편이 가능하리라는 시각도 있다. 바뀐 최저시급 산정 공식에 따라 최저임금법을 위반하지 않으려면 분자, 즉 기본급과 정기상여금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는 월별로 지급되는 상여금만 포함되기 때문에 상여금의 격월 또는 분기별 지급 주기가 매달 주는 것으로 바뀔 공산이 크다. 고용부도 이를 의식해 임금체계 개편에 착수한 기업에게는 6개월 시정 기간을 보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이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총 한 관계자는 “임금체계를 개편하려면 노사가 합의해야 하는데, 고용부가 보장한 기간 안에 노조를 설득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전문가들도 최저임금 인상과 주휴수당이라는 두 장의 카드로 경영계를 동시 압박하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으로 주휴수당의 덩치도 함께 커져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라며 “주휴수당 제도 개편 논의도 필요한 시점이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낮추는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이 먼저”라고 견해를 밝혔다.
Tip 시간당 최저임금, 1만 원 넘었다?!
2019년 최저시급은 8350원. 그러나 주휴수당까지 포함해 계산하면 최저시급은 이보다 많아진다. 하루 8시간씩 주5일 근무할 경우 주당 8시간의 주휴수당을 받게 되므로, 월 급여는 174만5150원이 된다. 이를 실제 일한 시간인 174시간으로 나눌 경우 시간당 임금은 1만30원. 재계 및 소상공인 등이 “실질 최저임금은 이미 1만 원을 넘어섰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여기 있다.◇ 2019년 최저임금 고시 월액 : 174만5150원
8350원×174시간(8시간×5일×4.35주)+8350원×주휴 35시간(8시간×4.35주)
◇ 실제 일한 시간 대비 시급 : 1만30원
174만5150원÷174시간(8시간×5일×4.35주)
주휴수당 폭탄 다음엔 ‘유급공휴일’ 폭탄?!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15일 유급휴일’ 법적 보장돼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진다. 지난해 6월 민간기업 노동자에게도 연간 약 15일의 유급공휴일을 추가로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표 참조). 이에 따라 2020년부터 2년간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유급공휴일 확대 방안이 시행된다.
대다수 대기업은 법정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하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2~3월 중소기업 1028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부여하고 있다’는 응답은 절반에 못 미쳤다(43.8%). 나머지 중소기업은 공휴일에 무급으로 쉬게 하거나(24.3%), 연차를 사용해 쉬게 했다(18.5%).
민간기업에도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61.7%로 ‘찬성’(27.2%) 의견보다 많았다. △인건비 부담 증가 △근로시간 분배 및 휴일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 △근로일수 감소로 생산 차질 발생 등의 이유에서였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더해 유급공휴일 확대는 중소·영세업체에게 또 하나의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은 주휴수당이나 유급공휴일 확대 이슈로부터 자유롭지만, 중소기업이나 취약 사업장은 그렇지 않다”며 “형편이 어려운 기업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