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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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반대로 흐르는 물줄기 주변에 돈 모인다

[안영배의 웰빙 풍수] 청계천, 양재천 같은 역수(逆水)가 땅 기운 증폭

  • 안영배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풍수학 박사)

    입력2026-06-21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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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초반 복원 공사를 거쳐 서울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된 청계천. 뉴스1

    2000년대 초반 복원 공사를 거쳐 서울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된 청계천. 뉴스1

    물길을 중시하는 중국 풍수계에서 발복의 대명사처럼 쓰는 표현이 있다. ‘역수일작가치부(逆水一勺可致富)’, 즉 역수가 일작(一勺: 10분의 1홉·약 18㎖)만큼이라도 흘러가는 곳에서는 능히 부를 거머쥘 수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역수가 일장(一丈: 10척·약 3m) 폭으로 흘러가면 재물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번다”는 뜻의 ‘역수일장재무수(逆水一丈財無數)’라는 표현도 있다. 풍수적으로 역수의 규모가 부(富)의 축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역수는 물 본류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흐르는 지류를 가리킨다. 한국 지형은 대체로 동쪽과 북쪽이 높고 남쪽과 서쪽이 낮다. 그래서 산맥을 끼고 흐르는 물은 보통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거나, 북쪽에서 남쪽으로 진행한다. 이처럼 보편적인 지형에 맞춰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는 지역을 순수국(順水局)이라 하고, 이와 반대로 흐르는 곳은 역수국(逆水局)이라고 한다.   

    청계천 복개 후 닥친 위기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은 동쪽에서 발원해 서해로 빠져나가는 전형적인 동출서류수(東出西流水)다. 반면 강북 청계천과 강남 양재천은 한강의 지류이면서 역수다. 이 중 청계천의 경우 서울 주산인 북악산을 비롯해 인왕산, 남산 등지에서 발원한 물이 합류해 동쪽으로 흐르다가 중랑천을 거쳐 한강으로 빠져나가는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다. 이처럼 본류와 지류가 서로 거슬러 흐르면 아주 길하다고 해석한다. 땅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고 더욱 증폭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역수인 청계천의 발복 효과는 복원 스토리에서도 확인된다. 서울 4대문 내 재물운을 좌우하는 청계천은 조선 왕조가 중히 여긴 물길이었다. 그런데 1957년 이승만 대통령 재임기에 청계천 복개(覆蓋) 공사가 시작됐다. 각종 생활 오물로 물이 오염되고 천변에 도시 빈민이 모여들어 일대가 슬럼화되자 이 대통령이 물길을 덮어버리고 그 위를 지상 도로로 활용하려 한 것이다. ‘물은 곧 재물’이라는 풍수적 관점보다 당장의 경제적 효용을 우선시한 조치였다. 

    이때 장안의 명풍수가였던 고(故) 지창룡 박사는 청계천이 복개되면 국가적 재난이 생길 수 있다고 봤다. 육안으로 보이던 청계천이 가려지면서 역수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리라 판단한 것이다. 이에 평소 친분을 나누던 이승만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각하, 청계천 명당수 복개 공사를 속히 거두어주소서. 아뢰옵기 황감하오나 이 명당수는 절대 각하 혼자 복개할 수 없습니다. 군주(대통령) 셋의 힘으로라야 능히 복개할 수 있는 지난한 일이니, 수도의 지리에 변화를 가해 국운이 쇠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코자 하는 충정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지창룡 박사 에세이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에서 발췌) 

    지 박사는 이때 청계천을 복개해 암천(暗川)으로 만드는 것은 국익에 반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경무대 비서실에서 한바탕 웃음거리 소재가 된 뒤 곽영주 당시 경호실장의 책상 서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지 박사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1960년 3·15 부정 선거와 4·19혁명으로 이 대통령이 하야했다. 뒤를 이은 윤보선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결국 청계천 복개 공사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인 1979년 말에야 마무리됐다. 지 박사의 예언처럼 3명의 대통령을 거치고서야 완성된 셈이다. 이 시기 대한민국은 갑작스러운 정권교체와 경제적 어려움 등 국가적 위기를 맞아야 했다. 

    2003년 8월 청계천 복원공사 현장. 청계천을 덮고 있던 도로를 철거하자 30여년 동안 갇혀 있던 물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아DB

    2003년 8월 청계천 복원공사 현장. 청계천을 덮고 있던 도로를 철거하자 30여년 동안 갇혀 있던 물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아DB

    반면 역수인 청계천을 잘 활용해 서울의 지기(地氣)를 증폭한 인물도 있다. 조선 21대 임금 영조(1694∼1776)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영조는 청계천을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한 임금이다. 당시 청계천은 장마 때마다 범람했다. 주변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영조는 1759년 준천소(濬川所)라는 임시 관청을 설치하고 대대적인 준설 작업을 벌였다. 이는 치수 사업이면서 동시에 빈민 구제 정책이기도 했다. 당시 한양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실업자가 많았다. 이들을 동원해 하천 바닥을 파내고 여러 다리를 건설하는 데 2개월이 걸렸다. 이때 일한 사람 수가 20여 만 명에 달했다고 하니 실업자들에게는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이후 청계천은 새로 태어났고, 앞서 언급한 복개 공사가 있기까지 서울의 주요 물길 구실을 했다.

    서출동류수, 양재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청계천 복원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3년 7월 착공해 2005년 10월 끝난 복원 공사를 통해 청계천은 암수에서 양수(陽水)로 탈바꿈했다. 그 과정에서 문화재 훼손 및 환경 파괴 등 여러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지만, 되살아난 청계천의 양수 기운은 주변 땅값을 올리고 상권을 일으켰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17대 대통령으로 당선하는 데도 청계천이 한몫했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현재 청계천은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국제적 명승지가 됐다. 

    서울 양재천 일대는 강남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이다. GETTYIMAGES

    서울 양재천 일대는 강남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이다. GETTYIMAGES

    다음으로 서울 강남권에서 한강의 역수에 해당하는 양재천을 살펴보자. 양재천은 서울 남쪽 과천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서초동, 양재동, 도곡동, 대치동, 학여울 일대를 지나 탄천과 만나 한강으로 합류한다. 구룡산과 대모산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서출동류수인 것이다. 동출서류수인 한강의 반대 방향으로 양재천이 흘러가는 곳은 모두 강남의 노른자위 지역에 해당한다. 역수처(逆水處)의 발복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본류와 지류의 역수 관계는 좀 더 미시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초구에서 서리풀공원과 몽마르트공원으로 이어지는 작은 산줄기는 행정적으로 서초동과 방배동을 가른다. 그런데 이 산줄기가 방배동과 서초동의 지운(地運)을 다르게 하는 역할도 한다. 비가 내리면  산줄기 오른쪽은 빗물이 동쪽 방향으로 흐른다. 여기서 대법원, 검찰청, 서울교대 등이 들어선 서초동으로 흘러감으로써 한강 흐름과는 반대인 역수 성격을 띠는 것이다. 반면 산줄기 왼쪽 빗물은 서쪽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에 따라 대부분 아파트와 빌라 등 주택가가 형성된 방배동 일대에서는 한강 흐름과 같은 방향인 순수(順水)가 된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역수 지역인 서초동 상권이 순수 지역인 방배동 상권보다 더 발달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포 풍경 바꾼 김포대수로

    경기 김포시 김포대수로 주위에 주택가가 조성돼 있다. GETTYIMAGES

    경기 김포시 김포대수로 주위에 주택가가 조성돼 있다. GETTYIMAGES

    흥미로운 점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역수도 발복의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서울과 인접한 경기 김포시가 대표 사례다. 김포시 남동부를 가로지르는 인공 수로인 김포대수로는 한강과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역수에 해당한다. 그간 김포시 일대는 한강이 곧장 서해로 빠져나가는 직류수(直流水)인 것이 약점으로 꼽혀왔다. 직류수는 기운이 모이지 않고 흩어져 나간다는 점에서 풍수에서 그다지 길하게 보지 않는다. 반면 서울 강남권 한강처럼 구불구불 흐르는 곡류수(曲流水)는 기운이 모이게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김포시의 이런 약점을 보완해주는 것이 바로 김포대수로다. 한강과 반대 방향으로 흘러감으로써 일대의 지기를 북돋는 구실을 한다. 이 인공 수로의 등장과 더불어 김포시는 그간의 침체를 떨치고 수도권 핵심 도시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앞으로도 김포시의 성장 잠재력은 인공수로인 역수를 얼마나 잘 활용하지에 달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수가 도시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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