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셸부르의 우산’은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있던 우산 브랜드로, 1800년부터 우산제조 가업을 승계해온 이본(Yvon)가에서 이와 같은 이름(Le Veritable Cherbourg·셸부르의 우산)의 우산을 만든다. 100년 된 천연나무로 손잡이와 대를 만들고, 골프채에 사용하는 최고급 카본 스틸로 프레임을 만들며, 브랜드를 자수로 새겨넣고 제품별로 일련번호를 관리하는 명품이다.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대통령 국빈 선물로 선정하기도 했고, 사르코지 전 대통령 임기 때는 이본가가 대통령궁에 근접 경호를 위한 방탄용 우산을 납품한 적도 있다. 시속 100km 강풍에도 충분히 견딘다는 이 브랜드 광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전엔 프랑스에 다녀오면서 이 우산을 사오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 최근 한국에서도 팔기 시작했다.
집중호우에 우산도 달라져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6월 하순에서 7월 중순 사이 장마가 오고, 태풍도 수차례 지나간다. 한 해 내릴 비의 절반 이상이 여름에 오는 데다, 시간당 100mm씩 쏟아지는 국지성 집중호우도 최근 크게 늘어 우리나라 기후가 온대에서 아열대로 바뀌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렇게 기후가 달라지다 보니 우산도 좀 달라졌다. 길고 큰 장우산의 인기가 높아진 것이다. 물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대비하려면 가방 안에 넣기 편한 작은 우산도 여전히 필요하다. 어쩌면 이제는 비가 작정하고 내리는 날에 쓸 장우산과 애매하게 내리는 날 쓸 2단 우산, 그리고 맑은 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대비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접이식 우산까지 3개 정도는 갖춰야 할 때가 됐는지도 모른다.
우산은 직접 사기보다 기념품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집에도 세어보니 장우산 4개, 접이식 우산 8개가 있다. 그중 돈 주고 산 건 3개뿐이다. 우산이 흔한 기념품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 공짜로 받은 우산은 비를 피하는 데는 요긴해도 비 오는 날 낭만을 느끼기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영화 ‘셸부르의 우산(왼쪽)’과 ‘사랑은 비를 타고’ 포스터.
영국 신사의 소지품에서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바로 우산이다. 맑은 날엔 지팡이 구실을 하는 이 우산은 비가 오면 본색을 드러낸다. 사실 영국 신사는 자신뿐 아니라 숙녀를 위해 상시적으로 우산을 갖고 다녔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워낙 비가 자주 내리다 보니 영국인들은 가랑비 정도에는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 옷깃을 세우거나 후드티셔츠 모자를 쓰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게 보통이다. 그럼에도 우산을 써야 할 때가 있다. 말 그대로 비가 제대로 올 때다.
비 오는 날 우아함과 여유

6월 10일 서울 중구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있는 디자인 스토어 ‘모마숍’에 예술작품을 모티프로 한 ‘모마 우산’ 매장이 들어섰다.
요즘 우리나라 소비자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오스트리아의 도플러(Doppler)는 접이식 우산으로 유명하다. 알루미늄이나 유리섬유 등 초경량 소재로 우산살을 만들어 휴대하기 좋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산 브랜드인 협립우산도 1953년 설립된 전통 명가다. 모든 국민이 살면서 한 번씩은 이 우산을 써보지 않았을까 싶은데, 외국 명품 우산도 많지만 우리나라 우산도 충분히 사치할 대상이 된다.
우산의 매력이 잘 드러난 영화로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1952)도 있다. 주인공이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뛰면서 춤추던 장면은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명장면 중 하나다. 때마침 지금 서울에서 이 작품의 뮤지컬 버전이 공연 중이다. 장마철을 겨냥해 비와 로맨스를 매력적으로 보여주려 한 듯하다.
그러고 보면 우산은 참 로맨틱한 도구이기도 하다. 우산을 쓰면 그 공간은 온전히 자기 것이 된다. 여기에 남녀가 같이 들어가면 둘만의 특별한 공간이 된다. 이 매력적인 공간을 위해 자기만의 특별한 우산을 하나 가져보는 건 어떨까. 좋은 우산이 하나 있으면 비 오는 날에도 우아함과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아마 장마나 국지성 호우도 결코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잊었던 로맨스나 설렘을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우산은 그저 비만 피하는 도구가 아닌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