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버튼에 뒤트임 한 개, 남거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피트, 품위 있는 블랙 슈트를 입은 김용호 씨. 2005년 미국에서 런칭한 디자이너 스펜서 하트와 닉 하트가 그에게 선물한 것. 넥타이는 행사 있는 날 외에는 매지 않고, 대신 행커치프로 포인트 주는 것을 좋아한다. 늘 가방을 들고 다니는데, 명품이 아니라 한 자동차회사에서 프로모션용으로 증정한 것이란다. 남성 패션에서 그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시계와 구두다. 시계는 원판 안에 우주의 메커니즘과 시간의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남자들이 유일하게 사치를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템. 구두는 끈을 매는 스타일을 고수하는데, 끈을 맬 때마다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어서다. “옷차림이 느슨해지면 찬바람도 들어오고, 위기도 오고, 사기도 당하더라고요. 하하.”
사진작가 김용호 씨는 우리나라 멋쟁이들이 모이는 파티에서도 ‘베스트드레서’ 자리를 거의 놓쳐본 적이 없을 만큼 완벽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중년’ 남성이다. 젊은 패션모델과 잘생긴 배우들 사이에서도 그는 단연 돋보인다. 그래서 일반인으로선 드물게 양복 모델도 했다.
중년 남성들의 패션에 대한 조언과 촬영을 제안하자 그는 흔쾌히 동의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옷을 입는 중년 남성들의 옷차림에 대해 할 말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당선된 볼리비아의 대통령이 볼리비아산 스웨터를 입고 외국 정상들을 만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는 옷을 통해 사회주의 이념을 과시한 셈이죠. 옷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고 사회적 약속이기도 합니다.”
김 씨에게 양복은 사회생활에 참여하고, 사회 규칙을 준수하겠다는 남성들의 약속이다.
“옷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자 사회적 약속”
흰색 면 티셔츠에 회색 플란넬 바지를 매치했다. 여유있는 통의 회색 플란넬 바지는 중년 남성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스포츠 슈트나 캐주얼한 의상엔 고급스런 소재를 선택하고, 주름 없이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베스트드레서로 꼽히는 이유는 탁월한 패션 감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옷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각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옷이 사회적 약속인 이상 때(time)와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은 스타일링의 철칙이다. 좋은 레스토랑에 초대를 받았을 때 옷차림이 어울리지 않으면 김 씨는 장소를 바꾸거나 참석을 사양한다. 옷이든 식사든 기능적인 효용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 씨는 옷 모양이 변하지 않도록 주머니에 동전 한 개도 넣지 않는다. 그런 탓에 그는 남자들도 가방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출장을 가면 가장 먼저 욕조에 물을 받고 욕실에 옷을 걸어둔다. 그러면 다림질하지 않아도 옷의 주름이 펴지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탈 때도 재킷을 벗으라는 충고를 잊지 않는다. 자동차는 비싸게 주고 사면서도 양복이 꾸깃꾸깃해지는 것에는 무신경하다면 겉만 번지르르하고 과시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
늘 단정한 양복에 중절모를 쓰고 다녔던 멋쟁이로 아버지를 기억하는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가장 좋은 옷을 입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옷차림이란 저 같은 중년 남자의 성공에 사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 정주영 회장처럼 대범한 남성들이 성공하고, 사회 전체가 함께 움직이던 시대가 있었지요. 하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고, 자기만의 개성이 성공의 기준이 되는 시대도 있습니다. 자기가 서 있는 세상을 어떻게 파악하느냐가 옷에 대한 관점도 결정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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