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관 1층 오른편의 고고관에는 구석기시대부터 발해까지의 선사 및 고대 유물 4500여 점이 전시된다. 우리 민족 문화의 독창적 시원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교과서에서 많이 본 빗살무늬토기와 농경무늬청동기, 신라의 금관과 말 탄 사람 토기, 그리고 해학적인 표정의 발해 유물인 용머리를 감상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면, 백제 금동대향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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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먹에 잡기 좋게 생긴 이 돌은 구석기시대의 다용도 칼이다. 손으로 쥐는 부분은 다치지 않도록 둥글게 하거나 홈을 파서 잡기 좋게 만들었고, 도끼로 쓰는 부분은 날카롭게 다듬어놓았다. 주먹도끼는 대개 이처럼 끝이 뾰족하고 아래는 둥근 모양이다. 사냥할 때 동물을 내리치거나 뼈를 깎고 나무를 자르는 등 그 쓰임새가 다양해서 구석기시대에 널리 사용된 돌 도구 중 하나다. 이 외에도 구멍을 낼 때 쓰는 뚜르개, 나무에 홈을 팔 때 쓰는 새기개, 화살대를 다듬을 때 쓰는 홈날과 같은 많은 돌 도구가 사용되었다.
18. 낚싯바늘 신석기시대, 고고관 신석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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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에 썼던 그릇이다. 인류 최초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토기는 농사로 거둬들인 곡물을 보관하기 위한 저장 용기나 냄비와 같은 조리 용기로 쓰였다. 그중 덧무늬토기는 가장 이른 시기에 쓰였던 그릇으로, 겉면에 따로 진흙 띠를 덧붙이거나 겉면을 손가락으로 맞집어서 도드라진 모양을 냈다. 무늬를 덧댄 방식은 그릇이 단단하지 않아 끈으로 감아 쓰던 것에서 착안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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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에 한반도 전역에서 사용한 그릇이다. 빗같이 생긴 무늬새기개로 비스듬한 줄무늬를 촘촘히 새겨넣어서 빗살무늬토기라고 한다. 그릇의 모양은 요즘 그릇들과 달리 밑 부분이 뾰족하거나 둥글다. 바닥에 그냥 세워놓지 않고 땅바닥을 조금 파거나 토기 주위에 돌 같은 것을 받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릇의 겉면을 정확히 구획하여 점과 선을 새겨넣은 것에서 일상 용기를 아름답게 꾸미고자 했던 당시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21. 반달돌칼 청동기시대, 고고관 청동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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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후기에 썼던 청동거울이다. 앞면은 광을 내서 거울로 쓰고, 뒷면에는 갖가지 무늬를 새겨 장식하고 꼭지를 달아 끈을 매달 수 있게 했다. 중앙에 꼭지가 하나 달린 중국식 거울과 달리, 한국식 거울은 두 개의 꼭지가 거울의 위쪽으로 살짝 비껴 자리하는 특징이 있다. 동심원과 사방으로 퍼지는 직선 모양의 잔무늬는 태양과 햇살을 표현한 것이다. 잔무늬거울은 일상 용구보다는 청동기시대의 제사장이 태양빛을 비추기 위한 의식용 도구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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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모습이 새겨진 청동기다. 벌거벗은 한 남자가 따비로 네모진 밭을 갈고 있고 맞은편의 남자는 항아리에 담아온 씨를 뿌리고 있다. 이는 입춘 날 옷을 벗은 남자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풍년을 기원했던 ‘입춘나경’의 의식과 같은 장면으로, 농경을 중요하게 여겼던 당시의 생활 모습을 고스란히 나타낸 것이다. 청동기를 뒤집으면 갈라진 나뭇가지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풍년의 기원을 하늘에 전해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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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동검이다. 중국의 요령 지방을 중심으로 분포되어서 요령식 동검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악기인 비파를 닮아 비파형 동검이라고도 한다. 요령식 동검은 검 몸과 손잡이를 한꺼번에 만드는 중국의 동검과 달리 각각 따로 만들어 연결하는 독특한 제작 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대표적 유물인 요령식 동검은 요령 지방과 한반도 서북한 지방에서 고루 출토되어 고조선의 중심 위치를 가늠하게 해준다.
27. 고리자루 칼 백제, 고고관 백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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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산수무늬 벽돌 백제, 고고관 도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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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오리 모양 토기 원삼국시대, 고고관 원삼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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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호우’ 글씨가 새겨진 그릇 고구려, 고고관 고구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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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에서 나온 왕비의 관 꽂이이다. 백제에서는 왕뿐 아니라 왕비도 비단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양 옆에 관 꽂이를 꽂아 위엄을 나타냈다. 왕비의 머리맡에서 발견된 이 꾸미개는 얇은 금판을 오려 만든 것이다. 가운데 작은 꽃병과 아래위로 연꽃잎과 넝쿨무늬가 새겨져 있어 활짝 핀 꽃이 꽃병에 꽂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왕의 관 꽂이는 왕비의 것보다 좀더 화려한 불꽃 모양인데 꽃가지마다 둥근 달개가 달려 있다.
32. 금동대향로 백제, 고고관 백제실, 국보 제2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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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갑옷과 투구 가야, 고고관 가야실
전사의 몸과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갑옷과 투구다. 이 장비들은 경상북도 고령 지산동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실제 전쟁터에서 착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덤의 껴묻거리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갑옷은 어깨가리개·판갑옷으로 이루어졌는데, 철판을 인체의 곡선에 맞게 가로 세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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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황남대총 금관 신라, 고고관 신라실, 국보 제191호
경주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관이다. 지금까지 출토된 6개의 신라 금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금관은 왕족의 힘과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화려하면서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둥근 관테에는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 장식 세 개와 뒤쪽에 사슴뿔처럼 휘어진 장식 두 개가 달려 있는데 모두 금못을 박아 붙였다. 나무와 사슴뿔 모양은 하늘과 소통하는 신령한 상징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세움 장식마다 달려 있는 둥그런 달개와 곱은옥은 열매와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흔들릴 때마다 반짝여서 금관을 더욱 화려하게 보이도록 했다. 그러나 이런 금관은 일상용이 아니라 부장용으로 특별히 만든 것이다.
35. 귀걸이 신라, 고고관 신라실, 국보 제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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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허리띠와 드리개 신라, 고고관 신라실, 국보 제192호
여러 가지 모양의 드리개를 매단 허리띠다. 허리띠에 드리개를 달아 장식했던 것은 북방 유목민족들이 부싯돌, 침통, 귀이개 등의 생활용구들을 허리띠에 달고 다니던 관습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관습이 한반도에 전해지면서 생활용구들은 주술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상징물들로 대체되었다. 약통, 물고기, 숫돌, 손칼 등의 드리개는 생명, 건강, 풍요, 다산, 액막이 등의 주술적 힘을 상징한다.
37. 감옥팔찌 신라, 고고관 신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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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리총에서 출토된 금동 신발의 바닥 부분이다. 윗부분은 떨어져나가고 바닥만 남았다. 금동 신발은 신라 시대 대형 무덤에서 거의 예외 없이 출토된다. 이 신발은 신분이 높은 사람을 위한 부장품임을 나타내듯이 거북등과 같은 육각형 안에 갖가지 꽃과 동물들을 매우 화려하게 표현해놓았다.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있는 가릉빈가, 사슴처럼 머리에 뿔이 난 기린, 날개 달린 물고기 등 상상 속의 상서로운 동물이 가득하다. 이러한 도안은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중국의 북위시대 문화가 고구려를 거쳐 신라로 들어와 수용된 것이다.
39. 금방울 신라, 고고관 신라실 전시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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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말 탄 사람 토기 신라, 고고관 신라실, 국보 제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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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길고 통이 넓은 항아리다. 목 둘레에 여러 가지 모양의 토우가 붙어 있다. 토우는 흙으로 빚어 만든 인형인데 신라 사람들의 독특한 조형감각을 나타낸다. 정교하지는 않지만 대상의 특징을 잘 포착하여 오히려 생생한 느낌이 전해진다. 항아리에는 뱀·개구리·남근을 잡고 있는 사람 등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각각 생명력과 다산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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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형상을 담은 기와다. 당시 사람들은 도깨비나 짐승 무늬 기와를 지붕에 얹어두면 집으로 들어오려는 악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고 여겼다. 기와를 지붕에 고정시키기 위해서 이마 쪽에 구멍을 뚫어 못을 박았으며 때로는 뒷면에 달려 있는 고리에 줄을 매어 고정시키기도 했다. 기와의 무늬는 짐승 무늬 외에도 연꽃무늬, 덩굴무늬, 새 모양 등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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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발해에서 발원한 불상이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고 양옆에 가르침을 듣는 수행 승려가 있으며 그 옆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서 있는 모습이다. 불상에 ‘함화사년(咸和四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그 밑에 불비상을 설명하는 글이 씌어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834년에 발해 허왕부의 관리인 조문휴라는 사람의 어머니가 모든 불자들을 위해 이 불비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허왕부는 황제가 왕으로 봉한 부서의 이름으로, 발해가 독자적인 황제 체제를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44. 뼈 담는 그릇과 돌함 통일신라, 고고관 통일신라실, 국보 제 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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