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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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생각 한 뼘 자랐으면 OK!

결과물 서툴러도 부모 직접 나서면 곤란 … 최대한 자율성 부여 강요보다 ‘우회 지도’를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8-06 17: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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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생각 한 뼘 자랐으면 OK!

    매미, 잠자리 등 일상에서 흔히 보는 곤충들은 관찰기록의 좋은 대상이 된다.

    ”야~ 방학이다!” 아이들의 힘찬 함성 소리가 초등학교 운동장에 울려 퍼진 지도 벌써 3주일이 지났다. 대부분의 학교는 8월 넷째 주를 전후해서 개학하고 2학기를 맞이한다. 방학이 반 정도 지나가면 아이들은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손도 안 댄 채 책상 어딘가에 밀쳐둔 방학숙제가 걱정되어서다.

    아이 못지않게 부모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 학원 다니느라 바쁜 아이의 방학숙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웃집 엄마들은 매일같이 박물관이며 공연장으로 견학 다닌다던데 우리 아이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닐까, 탐구학습 과제는 무얼 선정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아예 숙제를 대신 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도 있다던데 등등 고민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대부분 기우에 불과하다. 부모 세대의 어린 시절, 방학을 짓눌렀던 ‘탐구생활’ 류의 방학책은 6차 교육과정이 개편되면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 방학숙제를 선택과 필수로 나눠 학생이 선택하게 하는 학교가 많으며, 아예 숙제를 학생이 정하게 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방학숙제의 양은 과거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초등학교의 방학숙제는 크게 일기 쓰기, 책 읽기, 견학하기, 관찰 기록하기의 4가지로 나뉜다. 이들 방학숙제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또 엄마는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꼼꼼히 살펴보자.

    일기 쓰기 - 매일 쓰는 것보다 꾸준히 쓰자



    개학 직전에 방학 동안의 일기를 한꺼번에 몰아 쓰느라 끙끙댔던 기억이 없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기는 매일 쓰는 것보다 꾸준히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느낌을 일기에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엄마가 매일 저녁마다 “일기 안 쓰니?” 하고 강요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 그보다는 어떤 내용을 써야 하는지를 부모가 지도해주어야 한다. 일기는 사건이 아니라 느낌을 쓰는 기록이다. 저학년의 경우는 일기를 쓰기 전, 아이와 엄마가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기 쓰기를 지겨워하는 아이들도 많다. 교육 칼럼니스트인 김은실씨는 “이런 아이들에게는 형식 파괴형 일기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직접 찍은 사진을 연이어 붙인 사진일기, 글 대신 그림을 그리고 말풍선에 일기를 쓰는 만화일기, 편지 형식으로 일기를 쓰는 편지일기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일기 쓰기가 재미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아이 생각 한 뼘 자랐으면 OK!

    예술의전당 미술관으로 견학을 온 엄마와 아이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등 방학중 아이들이 견학 숙제를 하기에 적당한 전문박물관, 전시관이 늘고 있다. 미술관의 방학 특별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들이 엄마와 그림을 그리고 있다(왼쪽부터).

    많은 학교들이 ‘방학 동안 책 20권 읽고 독후감 쓰기’ 같은 숙제를 내준다. 그러나 꼭 독후감을 쓰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독후감을 쓰기가 싫어 책을 안 읽는다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받은 느낌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책 읽기를 시작하기 전, 엄마와 아이가 함께 방학 동안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우선으로 선정하되, 아이가 자신 없어하거나 취약한 분야의 책도 한두 권 부모가 권해준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한꺼번에 많은 책을 사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책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으면 아이는 시작하기도 전에 책 읽기에 질려버린다. 매주 ‘서점 가는 날’을 정해 규칙적으로 한두 권씩 사주도록 한다. 또 집 주위에 어린이 도서관이 있으면 이런 곳을 이용하는 것도 아이의 책 읽기 습관에 큰 도움이 된다. 책을 읽은 후에는 자신만의 ‘작은 도서관’을 방이나 베란다 등에 만들어주어 스스로의 책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게 한다.

    견학 & 답사 여행 - 사전 계획을 철처히 세워라

    방학숙제 중 가장 부모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분야가 바로 견학이다. 5, 6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아이들끼리만 박물관이나 미술관, 공연장 등에 갈 수 없기 때문.

    최근 들어 역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아프리카 미술 박물관 등 특정 분야의 전문 박물관이 늘고 있다. 어떤 분야를 견학하더라도 사전 준비는 필수다. 단순히 박물관이나 공연장에 데려다 주는 것만으로 아이들이 새로운 감동이나 교훈을 얻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가족 오페라 ‘마술피리’를 보러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예술의전당에 온 주부 김주원씨(34)는 “오기 전에 책으로 나온 ‘마술피리’를 아이에게 읽어줬다”고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매일 박물관과 미술관, 공연장을 번갈아 다니는 엄마의 과잉 의욕에 지쳐 있다. 여러 곳을 섭렵하기보다는 한 곳을 가더라도 철저히 준비해 많은 것을 얻어온다는 자세로 견학 계획을 짜도록 한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처럼 대규모의 박물관은 하루에 모든 전시관을 볼 수 없으므로 석기시대나 불교미술 등 한 가지 특정 주제를 정해 이 분야만 자세하게 답사하는 것이 좋다.

    김은실씨는 “답사 날짜와 시간, 교통편, 꼭 봐야 할 유물 등을 꼼꼼하게 기록한 답사 계획표를 짜라”고 권한다. 계획을 짤 때는 아이의 의견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준비 과정에서 아이를 동참시키면 아이는 ‘나도 견학에 참가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 카메라와 수첩 등 답사 준비물도 사전에 챙겨놓는다. 디지털카메라는 견학의 필수품. 유물이나 문화재에 대한 정보를 수첩에 모두 쓰기보다는 카메라로 촬영하면 간단하게 기록을 남길 수 있다.

    견학 후 감상문을 쓸 때는 사전에 쓴 계획표, 입장권, 사진, 자료 등을 순서대로 정리해 붙이도록 한다. 많은 아이들이 박물관이나 유적지 등에서 얻은 정보를 베끼는 것만으로 감상문을 완성하려 한다. 그보다는 견학 과정에서 받은 느낌 위주로 감상문을 쓰도록 한다. 유적지나 박물관의 게시판에 씌어진 글 중에는 어려운 단어가 많으므로 아이와 함께 인터넷으로 이런 단어의 뜻을 검색해보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견학은 공부가 아닌 ‘놀면서 배우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너무 많은 지식을 담아가기를 강요하기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놀면서 배울 수 있도록 부모가 배려해야 한다.

    엄마와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방학숙제가 관찰기록이다. 특정 주제를 정해 한 달간 관찰한 후 A4 용지 4~5장으로 기록한다는 숙제 내용이 막연하기 때문. “지난해에는 집에서 키우는 토끼를 관찰했는데 올해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이가 태권도 도장에 다니니까 태권도에 대해 기록해볼까 해요.”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엄마인 박혜리씨(36)의 말이다. 박씨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엄마들도 모두 관찰기록을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탐구과제는 크게 자연과 사회 과제로 나뉜다. 두 가지 다 일상생활에서 친숙하게 접하는 일을 주제로 삼아야 관찰기록을 끝맺기 수월하다. 중랑초등학교 정미경 교사는 “자연과제라면 파리나 잠자리 관찰, 집에서 키우는 화분이나 애완동물 생태 관찰 등이 좋고, 사회과제는 광복절에 우리 동네에서 태극기를 단 집이 몇 집이나 되나,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우리 동네에서 분리수거를 잘하고 있나 등을 주제로 택하면 된다”고 조언한다. 또 서울시 교육청 홈페이지(www.sen.go.kr)에 올라와 있는 ‘학생탐구 우수사례’를 참조해도 좋다.

    분당 초림초등학교 안미희 교사는 “탐구과제는 독창적 주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하게 관찰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봉사활동, 집안일 체험, 수집 등도 훌륭한 관찰기록 사례가 된다”고 말했다.

    관찰기록은 방학숙제를 하는 과정에서 소외되기 쉬운 아빠가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부모나 형제 모두가 매일 관찰대상을 살펴보면 아이는 관찰기록에 더 큰 흥미를 갖게 된다. 특히 탐구과제나 관찰기록 등을 아예 ‘엄마 숙제’로 생각하고 소매 걷고 나서는 극성 엄마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별다른 효과가 없다. 교사들의 말에 따르면 부모가 해준 숙제는 금세 알아볼 수 있다고. “방학숙제에 대해 시상하거나 큰 대회에 내보낼 작품을 고를 때 부모가 해준 과제는 수상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좀 서툴더라도 아이들이 어른의 도움 없이 혼자 한 과제를 선생님들은 높게 평가하거든요.” 강남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의 지적이다. 이 교사는 “2학년 과제에 파워포인트를 써서 그래프를 그린다든가 하면 어느 교사가 학생이 혼자 한 것으로 보겠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처럼 요즘의 방학숙제는 과거처럼 부담스럽거나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아현초등학교 허성복 교사는 “숙제가 필수가 아니기 때문에 안 해와도 야단치는 교사는 별로 없다”고 말한다. 이외에 줄넘기 200번씩 하기, 손톱에 봉숭아물 들이기 등 실용적인 숙제들을 내주는 학교도 많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전문가들은 정말 중요한 것은 방학숙제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방학 동안 무엇을 배울 것인지’에 있다고 지적한다. 교육학자인 김진숙씨(연세대 교육연구소 전문연구원)는 “방학 때만이라도 아이에게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하게 하는 자유를 주라”고 말한다.

    “요즘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학교와 학원 교육에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대학생이 되어서도 과외교사가 필요할 정도죠. 이런 아이들에게 방학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계획을 세워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입니다. 즉 아이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고 부모는 우회적으로 지도하는 게 좋습니다. 엄마의 생각만을 강요하다 보면 방학 동안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나빠지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김씨의 말처럼 대부분의 방학숙제는 아이가 혼자 생각하는 힘과 표현력을 키워주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욕심부리지 않고 아이 스스로 하게 놓아두는 것. 말은 쉽지만 엄마들은 “아이가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가장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아이의 방학은 엄마의 개학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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