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왼쪽)이 온갖 상상력으로 가득한 퓨전 요리라면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오른쪽)은 정통 서사구조를 갖춘 클래식 요리다.
두 영화는 내용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모두 할리우드의 시리즈물로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팬터지 영화이며 폭넓은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등 비슷한 면이 많다. 게다가 규모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뉴라인 시네마가 ‘반지의 제왕’ 3부작을 기획하면서 책정한 총예산은 1억9000만 달러. 원화로 환산하면 약 2300억원인데 이는 지금까지의 영화 프로젝트 중 가장 큰 액수다. 3부작 한 편당 투입된 금액은 평균 6300만 달러로 할리우드의 여느 블록버스터와 맞먹는다. 2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의 예산은 약 1억 달러 수준. 100억원 정도를 투입하면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되는 국내 상황과는 너무나 다르다.
지난해의 승자는 전국적으로 4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전 세계적으로 9억3000만 달러의 흥행 실적을 올린 ‘해리’. ‘반지’는 지난해 400만명의 관객을 모았고, 전 세계적으로 9억 달러의 흥행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1편 대결에선 ‘해리포터’가 승리
2편에서 해리는 전편보다 한층 성숙하고 적극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해리’의 콜럼버스 감독은 가족드라마 ‘나 홀로 집에’로 명성을 얻은 감독이다. ‘해리’의 전편은 관객을 마법의 세계로 이끌고 들어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2편에서는 곧바로 상상의 세계로 데려간다. 2편은 어린 마법사 해리 포터(대니얼 래드클리프)와 그의 친구들인 론 위즐리(루퍼트 그린트), 헤르마이온 그레인저(엠마 와트슨) 등이 호그와트 마법학교 2학년에 올라가 겪는 새로운 모험담이다. 주인공들은 성큼 성숙한 느낌이 들고, 어둠의 힘도 그만큼 더 세졌다. 학교 안의 어두운 세력이 머물던 비밀의 방이 열려 학교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영화는 해리 포터와 친구들이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단순한 선악 대결을 그리고 있지만 재미와 볼거리는 풍성하다. 책 속의 움직이는 사진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전편보다 박진감 넘치는 퀴디치 게임, 집의 요정 도비 같은 마법의 세계와 강렬해진 액션, 빠른 장면 전환 등은 관객을 2시간 30분 동안 영화에 몰입케 하기에 충분하다.
‘반지’ 2편은 전편의 내용이 그대로 이어진다. 9명으로 이뤄진 중간 대륙의 반지원정대는 사우론의 사악한 세력에 맞서 싸우다 뿔뿔이 흩어진다. 프로도(일라이저 우드) 등 대원들은 저마다 위기를 극복하고 잇단 모험을 거치며 다시 악의 세력과 맞붙는다. 한때 절대반지의 주인이었던 거대한 골룸이 모습을 드러내고, 고대 양치기 종족이었다가 악의 세력 사루만에게 배반당해 숨어 지내던 ‘엔트족’도 나타난다. 1편에서 지하세계로 떨어졌던 마법사 간달프(이안 메켈런)가 다시 등장하는 점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박력 넘치는 전투신이 볼 만하다. ‘펠레노르 평원 전투’ 신과 ‘헬름 협곡 전투’ 신에서는 80여대의 카메라와 9000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돼 웅대한 전투 장면을 연출했다. 전쟁과 사랑이 있으며, “철학적 깊이가 있는 팬터지”(영화평론가 김시무)로 평가된다.
두 영화의 스크린에 잘 어울리는 음악도 놓칠 수 없다. ‘해리’의 경우 ‘지붕 위의 바이올린’ ‘스타워즈’ ‘쉰들러 리스트’ 등에서 감동적인 선율을 제공한 존 윌리엄스가 영국의 고전적 풍광에 어울리는 클래식 선율을 들려주고 있다. ‘반지’의 음악은 전쟁 영화답게 울림이 크고 멜로디가 비장하다. ‘양들의 침묵’ ‘슬리버’ 등의 음악감독인 하워드 쇼어가 음악을 맡았다.
개봉을 앞두고 양 배급사의 물밑 전쟁 또한 치열하다. ‘해리’의 수입·배급사인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와 ‘반지’의 수입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는 마케팅비로 20억원을 각각 책정해뒀다. 이는 일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광고비에 비해 2, 3배 많은 액수.
‘해리’는 11월20일부터 전국적으로 극장용 예고편을 TV광고로 방영하면서 개봉 전 인기몰이에 나섰다. 특히 기존 광고에 비해 두 배 가까운 60초 광고를 내보내는 등 물량공세를 취했다. 또 11월 한 달 동안 서울 지하철 3호선 1개 차량(10량)을 ‘해리포터’ 열차로 장식해 운행했고,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해리’의 공식 부스를 개설해 ‘해리’ 열기를 유도했다.
11월15일 개봉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개봉 첫 주 박스 오피스 정상에 오르는 등 기염을 토했다. 일본에서는 개봉 전에 이미 30만장이 예매됐고, 국내에서는 11월20일 예매를 시작해 2일 현재 15만장이 팔린 상태. 배급사측은 전국 193개 극장(270개 스크린)으로 국내 최다 개봉관을 확보했다.
‘반지’ 홍보사인 ‘영화인’측은 전국 150개 극장(220개 스크린)을 확보하고 관객몰이에 나섰다. 또한 영화 홈페이지의 회원을 대상으로 시사회 초대와 촬영지인 뉴질랜드 방문 등의 이벤트를 마련해두고 있으며, 미국과 하루 차이로 개봉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1월30일부터 예매에 들어간 서울극장 메가박스 등은 개봉 주말의 표가 매진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연말 송년모임용이나 기업체의 고객 선물용으로 대량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홍보사측의 설명.
빠른 장면 전환·강렬한 전투신 등 볼거리 가득
‘반지의 제왕’ 수입사측은 2편이 5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반지’는 인물과 스토리 배경 등이 전편과 그대로 연결되기 때문에 전편을 보아야 재미가 배가될 수 있다는 것이 홍보사측의 주장이다. ‘반지원정대’는 서울극장, 메가박스, 씨네플러스 등 서울과 지방 주요극장 15~20개관에서 12월12일부터 재개봉된다.
두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도 서로 비교가 됐다.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 3부작을 2년에 걸쳐 동시에 촬영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통해 시간과 제작비를 절약하고 주연배우들의 연기 집중도를 높였다. 반면 ‘해리’의 크리스 콜럼버스는 당초 매년 한 편씩 제작하는 시스템을 택했다가 주연을 맡은 래드클리프가 나이를 먹으면서 급속히 성장하자 황급히 2편을 제작했다.
결과적으로 ‘반지’가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됐으며, 두 영화의 흥행 대결은 아쉽게도 올해로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해리’의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장을 맡았던 원로배우 리처드 해리스가 타계하면서 3편 제작이 늦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 ‘반지’ 3편은 이미 촬영은 끝난 상태이며 내년 겨울 이맘때쯤 다시 국내 팬을 찾아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