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릴린 먼로(1926~1962)는 이처럼 ‘텅 빈 머리의 금발미녀’를 가리키는 대명사다. 그러나 40년 전 8월, 서른여섯의 나이로 의문사한 그녀가 과연 세간의 짐작처럼 그저 이빨을 드러내고 섹시하게 웃을 줄만 아는 여자였을까.
마릴린 먼로가 클래식 음악과 재즈를 좋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에 대한 기존의 선입관은 약간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먼로는 엘라 피츠제럴드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열광적인 팬으로 항상 이들의 LP 음반을 가지고 다녔다. 당시 백인만 출입할 수 있는 할리우드 나이트클럽에 흑인 여가수인 엘라 피츠제럴드의 자리를 예약해서 함께 다녔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또 먼로가 가장 좋아했던 클래식 음악은 20세기 초 스트라빈스키가 파리에서 초연해 보수적 평론가들에게는 엄청난 혹평을, 그리고 젊은층에게는 열렬한 지지를 얻어낸 전위적 발레음악 ‘봄의 제전’이었다고 한다.
마릴린 먼로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이뿐만이 아니다. 먼로는 자신이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 주제가를 직접 부른 ‘가수’였다.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나이아가라’ 등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먼로가 지하철 환풍구에서 펄럭이는 치맛자락을 끌어내리는 류의 연기만 한 배우가 아니라, 노래에도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먼로의 음성은 언뜻 듣기에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연상시킨다. 그녀는 결코 크지 않은, 약간 허스키한 음성으로 마치 속삭이듯 노래를 부른다. 소곤대는 내러티브도 매력적이다. 한마디로 관능미가 물씬물씬 풍긴다. 이 노래만으로도 그녀의 포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평론가 줄리 커고는 “먼로는 특별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진짜 노래를 할 줄 아는 배우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먼로는 아주 훌륭한 가수라고 할 수는 없다. 음반 속에서 금방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가수가 되기에는 너무 작다. 할리우드의 뒷이야기에 따르면, 먼로가 영화 속에서 부른 많은 노래들은 대부분 교묘한 편집의 결과다. 먼로는 노래 전부를 한꺼번에 부르지 않았고 뉴먼 형제의 지도에 따라 한 소절씩 노래를 불렀다. 음반에 녹음된 노래들은 이 결과물을 편집한 것이다.
먼로가 부른 노래 중 압권은 1953년 개봉된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 나오는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다. 하워드 훅스가 감독한 이 영화에서 먼로는 돈 있는 남자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백치미의 금발미녀 로렐라이로 출연한다.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는 로렐라이가 파리의 카바레 무대에서 부르는 곡으로 ‘남자는 냉담해지고 여자는 늙지만, 그래도 다이아몬드는 변치 않아’라는 가사로 되어 있다.
이 장면은 마돈나가 자신의 노래 ‘머티리얼 걸’(Material Girl)의 뮤직 비디오에서 재현했고 지난해 개봉된 영화 ‘물랑 루즈’에서 니콜 키드먼이 다시금 보여준다. 시간은 흘러도 역시 여자는 다이아몬드에 약하기 때문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반세기의 시간도 먼로의 매력을 빛 바래게 하지는 못했다는 증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