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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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더 주목받는 명상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마음 번잡한 현대인을 위한 창의성의 원천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5-03-0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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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든 도시에서 명상하는 과학자 이미지. 그는 과학자인 동시에 예술가다. [김재준 제공]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든 도시에서 명상하는 과학자 이미지. 그는 과학자인 동시에 예술가다. [김재준 제공]

    현대 사회는 급격한 기술 발전의 이면에 종교 영향력이 쇠퇴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유럽 성당과 교회들은 이제 일요일 예배 시간을 제외하면 사회복지 시설이나 상업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신성한 공간이 세속적 용도로 전환되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종교적 다양성과 활력을 유지하는 국가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 무속신앙 등이 공존하면서 각자의 색채를 유지하는 종교적 모자이크를 형성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종교에서 특히 주목받는 것은 명상이다. 가톨릭의 묵상기도, 선불교의 좌선, 남방불교의 비파사나 등은 각기 독특한 접근 방식을 가진 명상 수련법이다. 그러나 명상의 본질은 단순히 ‘지켜보는 행위’에 있으며, 이는 특정 종교적 테두리를 넘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수행법이다.

    종교의 쇠퇴와 명상의 부상

    명상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예상 외로 ‘시끄럽다’는 충격적인 발견이다. 마치 잠잠해 보이는 호수 밑에 격렬한 물살이 숨어 있는 것처럼, 조용히 앉아 있는 순간에도 우리 내면은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생각들로 가득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억제하려 할수록 오히려 더 강렬한 잡념이 물밀듯이 밀려온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명상의 핵심 기술이 등장한다. 자신의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고, 마음의 흐름을 마치 타인의 생각을 관찰하듯이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지켜봄, 즉 관법(觀法)’ 과정을 통해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내적 평온과 명료함을 체험하게 된다.

    창의적 사고를 갈망하는 현대인에게 명상을 권하면 종종 이런 의문이 제기된다. “언어의 개입 없이 그대로 본다는 것은 단순히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바라보는 것과 같은 건가요?” 이는 명상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다.

    명상 상태에서 ‘봄’은 무기력한 ‘멍 때림’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멍하니 바라볼 때는 정신적 에너지가 저하된 상태지만, 명상에서 관찰은 오히려 고도로 집중된 에너지 상태를 수반한다. 이는 마치 천문학자가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할 때 집중력과 유사하다. 겉으로는 정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매우 활발한 에너지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명상가도 논리적 사고력과 표현력, 글쓰기 능력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다만 이러한 능력들이 언어의 한계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창의성 발현에서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어의 틀에 갇힌 사고는 결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창의성은 언어적 범주화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세상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깨어난다.

    우리의 정신 활동은 직관(보는 것)과 사유(생각하는 것)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마치 춤을 추듯이 두 가지 정신 작용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움직일 때 가장 풍요로운 정신 활동이 가능해진다. 예술가의 창작 과정에서 발견되는 패러독스는 “잘하려는 욕심이 오히려 작품을 망친다”는 것이다. 지나친 완벽주의와 의식적 통제는 창조적 흐름을 방해하고, 작품의 자연스러움과 생명력을 앗아간다. 이는 테니스 선수가 너무 의식적으로 스윙을 제어하려 할 때 오히려 실수가 증가하는 현상과 유사하다. 명상이 반드시 가부좌를 틀고 정적으로 앉아 있는 형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태극권처럼 단순한 동작의 반복을 통한 ‘동적 명상’도 존재한다.

    단순함의 미학: 기교를 넘어선 위대함

    일본 국보로 지정된 조선 막사발 ‘기자에몬 이도다완’(고려다완). [위키디아 커먼스]

    일본 국보로 지정된 조선 막사발 ‘기자에몬 이도다완’(고려다완). [위키디아 커먼스]

    역설적이게도 진정으로 위대한 예술 작품은 놀랄 만큼 단순한 경우가 많다. 첫 눈에는 너무나 소박해 보여 웃음이 나올 정도지만, 곧 깊은 감탄을 자아내는 그 특별한 아름다움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은 일본 도자기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조선 시골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소박한 막사발이 일본에서는 국보급 예술품으로 추앙받았다는 점이다. 일본인은 기술적으로 정교하고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데는 뛰어났으나, 무심한 듯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일본인은 조선 도공들의 작품에 완전히 매료돼 조선 도공의 투명하고 깨끗한 마음이 그들 작품에 반영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 수행에 평생을 바친 스님들에게 도자기 제작을 부탁했으나, 예상과 달리 기대했던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이 사례는 예술 창작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단순히 마음의 깨끗함만으로는 위대한 예술이 탄생하지 않는다. 정신적 순수함과 함께 무수한 반복 훈련을 통한 신체적 숙련도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마음과 손이 하나가 되는 경지, 즉 무심한 상태에서 행위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무위자연(無爲自然)’ 경지에 이를 때 비로소 “바로 이거야!”라고 외칠 수 있는 탁월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알림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스마트폰과 유튜브를 잠시 내려놓고 자연 속을 거닐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일 것이다. 현대 과학은 명상이 뇌 구조와 기능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정기적인 명상 수행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감소시키고, 집중력과 창의성을 높이며, 감정 조절 능력을 끌어올린다.

    창의성과 명상의 만남은 우리에게 단순함 속에 숨겨진 위대함, 반복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라는 역설적 진리를 가르쳐준다.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혼란 속에서 이러한 고대의 지혜는 우리 삶에 새로운 균형과 조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