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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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가 공세로 홈술족 사로잡은 와인, 2020년 주류 시장 평정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47]

  • 명욱 주류 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입력2020-12-20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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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술과 혼술 문화 덕에 주류 시장 트렌드가 크게 바뀌었다. [Gettyimage]

    홈술과 혼술 문화 덕에 주류 시장 트렌드가 크게 바뀌었다. [Gettyimage]

    2020년도 곧 마무리된다. 코로나19로 시작해 코로나19로 마무리되는 2020년. 이러한 상황은 술 문화를 비약적으로 바꿔놓았다. 요식업 시장에 절대적으로 기대던 주류 소비는 이내 ‘홈술’이라는 이름으로 가정으로 들어왔다. 홈술 문화는 단순히 집에서 마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잔, 거치대, 셀러 등의 매출을 늘리며 홈바 확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최근 새롭게 지어지는 아파트의 주방 인테리어는 이러한 홈바 형태를 그대로 옮겨왔다. 술 하나가 집 안의 인테리어는 물론, 소비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올해 술 시장의 승자는 어떤 술일까. 주종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가장 타격이 큰 건 위스키. 유흥 시장과 직결되는 부분들이 상당히 위축됐기 때문이다. 특히 맛과 멋을 즐기는 싱글몰트 위스키나 개성 있는 위스키 시장은 그나마 살아남았지만 기존에 부어라, 마셔라 하던 국산 위스키와 수입 블렌디드 위스키 시장은 아사(餓死) 직전이다. 

    소주와 맥주 역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전 맥주와 소주의 외식 시장 비중은 60% 전후. 다양한 술이 점점 더 많이 소비되고 있지만 소주와 맥주는 여전히 외식 시장에서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주종이다. 하지만 현재 소주와 맥주의 외식업 시장 점유율은 40% 전후까지 떨어졌다. 아쉽게도 떨어진 이 숫자만큼 모두 홈술로 소비하지는 않았다. 한국의 소주와 맥주는 홈술 문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회식자리의 술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힘든 시기에 홈술 주인공으로 성장한 술은 와인과 전통주다. 올해 와인 수입량은 전년 대비 25% 이상 증가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10월까지 수입액은 1억6600만 달러(1822억6800만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5.8% 늘었다.

    와인과 전통주 소비 늘어

    이렇게 와인 수요가 늘어난 것은 대형마트 등에서 진행하는 5000원 미만 초저가 와인의 공세와 더불어, 해외에 나가지 못하는 만큼 모든 와인을 국내에서 구입해야 하는 코로나19 시대의 소비 패턴에 기인한다. 예전에는 해외에서 면세로 와인을 구입해 왔다면, 지금은 대부분 국내에서 구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통주 역시 유일하게 100% 비대면으로 구입할 수 있는 주류인 만큼 인터넷 시장에서 성장이 두드러졌다. 11월 23일 발표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2018년 전통주 시장 규모는 456억 원으로 파악됐다. 이는 2017년(400억 원)보다 14.0% 늘어난 수치다. 

    다양한 전통주 콘텐츠가 증가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전통주’를 검색하면 다양한 콘텐츠가 나온다. 가깝게는 슈퍼주니어 규현이 등장한 케이블TV방송 tvN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에 나온 전통주 시음부터 개그맨 이용진과 방송인 허영지가 양조장을 찾아다니는 ‘술기로운 여행’, 파란 눈의 외국인 소믈리에 저스틴의 전통주 탐방 스토리까지 다양한 콘텐츠가 나와 있다. 여기에 최초의 전통주 구독 서비스 술담화가 등장하면서 전통주의 맛과 스토리, MZ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콘텐츠가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출 최고치를 기록한 전통주 기업도 있다. 국순당의 경우 올해 매출이 지난해 대비 10%가량 늘어나 670만 달러(약 73억5660만 원)를 기록할 전망이다. 원래 막걸리를 주축으로 한 전통주 매출은 일본 시장에서 90%가 나왔다. 하지만 혐한 이슈 등으로 막걸리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다 보니 업체들은 새로운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신남방 시장으로 불리는 동남아시아가 급부상했다. 

    국순당은 신규 비즈니스 전략의 하나로 비대면으로 술을 구입할 수 있는 인터넷 시장에 포커싱을 맞췄고, 접근성이 좋은 탄산감 있는 과일 막걸리를 선보였다. 이후에는 쌀막걸리를 적극적으로 홍보해나갔다. 코로나19 사태로 요식업 시장이 어려워지고 비대면 소비 시장이 커지면서 국순당의 현지화 전략은 딱 맞아떨어졌다. 이번에 얻은 수치는 10여 년 전의 막걸리 수출 거품과는 다른 형태로,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실적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술 없는 술가게도 인기

    국내 최초 주류 캐릭터 숍 ‘두껍상회’. [명욱 제공]

    국내 최초 주류 캐릭터 숍 ‘두껍상회’. [명욱 제공]

    국내 최초 주류 캐릭터 숍 ‘두껍상회’가 성료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하이트진로의 두껍상회는 ‘어른이 문방구’라는 콘셉트로 8월 17일부터 10월 25일까지 70일간 영업했는데, 방문자가 1만 명에 달했다. 주류 캐릭터 숍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곳은 술을 마시는 곳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캐릭터를 구입하는 곳으로, 라인프렌즈나 카카오프렌즈 숍과 동일한 콘셉트의 매장이었다. 

    이곳에서 인기 상품은 요즘쏘맥잔, 진로소주잔, 한 방울 잔 같은 술잔 굿즈였다. 두꺼비 캐릭터를 활용한 두꺼비 피겨 인형, 두꺼비 키링 등을 찾는 이도 많았다. 매장이 성공리에 마무리된 것은 이제 술이 단순히 마시며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술을 상징하는 캐릭터와 경험을 즐기는 다양성이 주목받는다는 것을 보여준 하나의 시그널이 아닐까. 

    와인과 전통주가 코로나19 시대에 성장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기본적으로 와인과 전통주 중에는 지역이나 농업에 기반을 둔 술이 많다. 이 경우 해당 지역의 역사와 사람, 기후와 여행, 그리고 인문학으로도 연결된다. 이렇게 이야기가 많은 술은 서로 맛을 보기 위해 마시는 만큼 과음 스트레스가 적다. 이전 회식 문화에서 위스키, 소주, 맥주처럼 일단 따르면 무조건 앞에 놓인 잔을 비워야 하는 분위기와도 이별할 수 있다. 자기 페이스대로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것. 

    위스키업계가 최근 위스키 탄산수 하이볼로 적극적인 홍보를 하는 것도 이런 영향 때문이다. 각자 취향대로 만들어 원하는 만큼만 즐기라는 의미다. 그래서 굳이 대용량일 필요가 없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사람은 적은 양으로도 충분하다. 소용량 위스키가 팔리고 술병이 작아지는 것도 이런 점과 연관 있다. 

    회식이 사라지고 홈술이 주목받는 문화가 조성된 건 코로나19 사태 때문만은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조직에 대한 맹목적 충성보다 개인과 가정이 더 중요한 시대가 찾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대로 마시고 내가 나를 책임지겠다는 것. 그래서 술은 더 세분화되고 개인화돼왔다. 역설적으로 과음과 멀어져야 성장하는 주류 시장이 됐다는 것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알려준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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