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호(兪順浩) ‘김일성, 1912~1945’ 전 3권 (서울셀렉션, 2020). 상권 (성장과 시련), 748쪽. 중권 (희망과 분투), 885쪽 하권 (역경과 결전), 1220쪽.
저자는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도문에서 태어난 ‘조선족’ 중국인이다. 이미 20대 초에 다큐멘터리 작가로 입신하면서, 우리가 흔히 만주라고 부르는 중국 동북 3성(길림성, 요령성, 흑룡강성)에서 전개된 항일독립운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괴뢰국 만주국을 세운 1931~1932년 이후 거기에 대항해 중국공산당이 조선인을 끌어들여 세운 동북항일연군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그 결과 ‘비운의 장군: 동북항일연군 총사령 [중국인] 조상지(趙尙志) 비사’, ‘만주 항일 파르티잔: 잊혀진 [조선인] 허형식(許亨植)’, ‘만주 항일 속으로’ 등을 출판할 수 있었고, 마침내 동북항일연군에서 조선인으로서는 최고의 지위인 사장(師長)에까지 오른 김일성의 3부작을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에 앞서 김일성에 관한 기존 자료와 연구를 샅샅이 살폈다. 우선 자료로는 최현(崔賢, 오늘날 북한의 ‘제2인자’ 또는 ‘제3인자’로 불리는 최룡해(崔龍海]의 아버지)을 비롯한 김일성의 게릴라 동지들의 회상기로 구성된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전 20권(1959~1970년대)에 이어, 연구로는 서대숙(徐大肅)의 ‘조선공산주의운동사, 1918~1948’(1967, 영문) 및 ‘김일성: 북한의 지도자’ (1988, 영문), 이명영(李命英)의 ‘김일성열전’(1974), 허동현(許東賢)의 ‘김일성평전’(1986), 림은(林隱)의 ‘북조선왕조성립비사: 김일성 정전’(1982, 일본문), 그리고 김일성이 죽기 직전에 출판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전6권, 1992) 및 그가 죽은 뒤 북한당국이 출판한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전2권, 1998) 등이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저자의 연구대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중국에서, 특히 연변에서 출판된 수많은 책들을 철저히 검토했다. 이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동북항일연군과 김일성에 관해 밖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를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출판물의 광범위하면서도 철저한 분석에 더하여 현장취재를 통한 증언청취에도 의존했다. 1982년부터 1998년까지 16년에 걸쳐 동북3성을 도보로 답사하면서 이 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김일성의 행적과 관련해 김일성 스스로 주장했고 북한당국이 뒷받침했던 ‘투쟁’의 장소를 찾아다니고 거기에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여기서 강조돼야 할 점은 저자가 면담한 사람의 수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그들 가운데 특히 중국인으로서는 동북항일연군에서 김일성의 상사로 일했던 종자운(鍾子雲), 왕일지(王一知), 이형박(李荊璞)과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당시나 해방 후 중국공산당 중앙에서 고위직에 있던 위포일(魏抱一), 한광(韓光) 등이, 그리고 동북항일연군 시절 김일성의 직계상사였던 유한흥의 친딸 유효화(劉曉華) 등이 포함됐다. 심지어 ‘만주국’ 정부에 소속되어 일본 관동군에 협력했던, 그래서 ‘한간(漢奸)’으로 매도됐던 사람도 포함됐다. 조선인으로는 빨치산 대원으로 훗날 북한의 인민무력부장으로 일했던 오진우(吳振宇)의 친조카 오은숙(吳銀淑) 등이 포함됐다.
위에서 거명한 사람들만이 아니다. 제3권 말미에는 피면담자의 명단이 나오는데, 참으로 놀라울 정도의 많은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고 증언을 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 저자는 무엇이 사실이었고 무엇이 과장·왜곡·날조였는지를 가려낼 수 있었다. 저자가 이 책에 또 하나의 부제로 붙인 ‘왜곡과 과장, 편견과 거짓을 걷어낸 진짜 김일성’은 그러한 점에서 적절했으며, 이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북한당국은 저자의 현장답사와 증언청취 작업을 포착했으며, 집필하지 못하도록 회유하기도 하고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여기서 저자는 2002년에 미국으로 망명하는 길을 택했고, 뉴욕에서 집필을 끝낼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에 대해 훨씬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또는 하나하나 매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냈다. 우선 앞의 경우와 관련해 말한다면, 1932~33년에 동북항일연군에서 조선인 유격대원들을 상대로 펼쳐졌던, 그리하여 적지 않은 수의 조선인들을 무고하게 죽인 반(反)민생단투쟁에 대해서다. 이미 이정식(李庭植) 교수의 연구를 통해 알려졌었지만, 저자의 이 연구는 훨씬 더 상세하다. 둘째, 1938년에 일제가 펼친 김일성 귀순작전에 대해서다. 김일성을 ‘귀순’시키려던 일제의 작전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불쌍하게 죽은 조선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 뒤의 경우와 관련해서는 몇몇만 소개하기로 한다.
첫째, 북한의 김일성에 앞서 만주와 시베리아 일대에는 ‘항일독립운동가 김일성 장군’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북한의 김일성은 어려서부터 그 전설에 접했고 자신이 크면 그러한 ‘김일성 장군’이 되겠노라고 다짐하곤 했다. 스스로 본명 김성주 대신에 김일성으로 행명(行名)했으며, 1920년대 말~1930년대 초에 그는 본명 김성주보다 ‘김일성’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둘째, 김일성의 부모 김형직(金亨稷)과 강반석(康盤石)의 결혼을 주선한 사람은 미국 침례교 목사 빌리 그레이엄의 장인 넬슨 벨 의료선교사였다. 벨 목사는 강반석의 이름도 지어주었다. 그러한 인연에서 그레이엄 목사는 1992년과 1994년에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었다(1권 50~51쪽).
셋째,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죽은 뒤 어머니 강반석은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조선인 부농에게 개가했다. 생활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처음엔 화를 냈으나 곧 이해하게 됐다. 강반석은 곧 새 남편과 헤어져 혼자 살았으며, 적빈 속에서도 아들이 ‘독립군 대장’으로 성장하도록 독려했다.
넷째, 김일성은 스무 살이 된 1932년께부터 지방의 한 항일유격대의 정치위원으로 뽑힐 정도로 성장했다. 주보중(周保中)을 비롯한 중국 유격대 지도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졌으며, 그들은 대체로 김일성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훗날 김일성은 자신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었다고 썼는데, 그러한 조직은 실존하지 않았다.
다섯째, 김일성이 이끌던 항일유격대 안에서 식사를 담당했다가 훗날 김일성의 부인이 된 김정숙이 1936년에 ‘만주국’군의 습격을 받자 밥을 짓던 가마솥을 머리에 인 채 권총으로 사살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도 북한당국은 영화에 꼭 이 장면을 포함시켰다.
여섯째, 김일성이 자랑스럽게 내세운 보천보전투에 대해서다. 김일성은 자신이 빨치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 함경남도 혜산의 보천보를 습격했을 뿐만 아니라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에게 연설도 했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압록강을 넘지도 않았고, 자연히 연설도 할 수 없었다.
항일투쟁가로서의 김일성의 생애를 총괄하면서, 저자는 “민낯이 더 건강하고 아름답다”는 표현을 썼다. “청년시절의 김일성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훌륭하다…김일성은 북한에서 선전하듯 일본군 토벌대를 무더기로 쓰러트리고 백만의 관동군을 싸워서 이겼다는 그런 전설 같은 위업을 이룬 위인은 아니지만, 끝까지 일본군에게 붙잡히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칭송 받을 만 하다”라고 전제한 다음, 그런데도 “남이 한 일도 다 김일성이 한 것처럼 꾸며대” 김일성을 ‘가짜’로 만들어 놓았다고 비판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김일성의 문제는…거짓말에 있다. 거짓말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하게 불거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북한의 김일성을 그리고 그 김일성 ‘신화’에 바탕을 두고 3대 세습에 이른 오늘날의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