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두번째)이 10월 27일 경기 성남시 엔씨소프트를 방문해 김택진 대표(맨 왼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김 위원장이 이 시점에 김 대표를 만난 일차적 이유는 내년 재보선 때문일 것이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김 위원장이 김 대표를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우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내년 재보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탓도 있지만, 서울시장으로서 역량을 검증한 뒤 대선후보로 내세우는 것이 덜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개연성이 높다. 김 대표를 만나기 전 측근들 간에 물밑접촉이 이뤄졌을 테고, 상당한 수준의 논의도 이뤄졌을 것이다. 그 결과 두 사람이 식사를 함께 했다. 식사 자리가 끝난 뒤 김 위원장이 자신의 수첩에 김 대표의 이름을 적었다는 후문이다.
수첩에 이름을 적은 까닭
이 말이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이 먼저 김 대표를 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핵심 측근 누군가가 강력하게 추천했고, 김 위원장이 간보는 차원에서 일단 식사 자리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식사 후 수첩에 이름을 적었다는 것은 일단 후보군에 올렸다는 의미다. 아예 감이 아니라고 판단 내렸다면 이름을 적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 식사 자리보다 더 의미 있는 행보는 10월 27일 김 위원장의 엔씨소프트 방문이다. 식사 자리에서 모종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이 방문이 성사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또 다른 가능성은 다시 한 번 설득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삼고초려(三顧草廬)로 가는 과정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엔씨소프트 방문 직후 김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답변했다. “추가로 만날 필요가 있겠나. 기업과 관련해서 특별히 물어볼 게 있으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에 내가 만나야 할 상황은 없는 것 같다.” 김 대표는 이렇게 답변했다. “정치에 전혀 뜻이 없다. 나는 기업가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으로 끝! 협상 결렬일까. 그렇게 해석하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 다른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첫째, 위장전술일 가능성이다. 내년 서울시장 재보선에 출마하기로 설령 합의가 이뤄졌다 해도 김 대표가 지금 이 사실을 공개할 수는 없다. 당장 당내 다른 서울시장 후보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경선이라는 공식 절차를 무시한 합의라는 지적과 더불어 김 위원장이 당내에서 독재를 한다는 비판도 터져 나올 것이 분명하다. 이런 식으로 분위기가 흐르면 될 일도 안 된다. 안 그래도 친박(친박근혜)계인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를 내년 보궐선거대책위원장에 내정했다 철회한 뒤 부쩍 당 내외에서 리더십 논란이 일고 있는 터다.
둘째, 기대 수준 차이가 존재할 가능성이다. 김 위원장은 ‘서울시장’ 카드를 내밀었고, 김 대표는 ‘대선주자’ 카드를 내밀었을지 모른다. 김 위원장의 판단이나 기대와 무관하게 김 대표는 ‘제2의 안철수’가 되는 길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다시 말해 어차피 정치를 하려면 단숨에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길을 선호할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현 단계는 두 사람이 입장을 조율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서울시장으로서 역량 검증부터 받은 다음에 대선에 도전해라! 아니다. 나는 곧바로 대선으로 가길 원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윤석열 vs 김택진 구도
윤석열 검찰총장. [동아DB]
더 만날 일이 있겠느냐고 말했지만, 김 위원장의 속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야심 찬 반전 카드가 허무개그로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칫 이 일로 리더십 논란이 더 거세지지 않을까 걱정일 것이다. 김 대표 영입을 아예 없었던 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김 대표를 차라리 대선후보로 영입할 것인가/ 이 또한 고민스러울 테다. 김 대표를 국민의힘 대권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일단 띄운 다음, 반응이 좋으면 그를 활용해 내년 재보선 승기를 잡아나가는 방법도 대안의 하나로 생각할 것이다.
최근 국민의힘 차기 대권주자로 뜨고 있는 인물은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40대 경제 전문가 대선후보론’과 괴리가 크다. 더욱이 그가 진짜 나설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설령 나선다 하더라도 내년 재보선 전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윤 총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쌍끌이’ 중이다. 대권주자 지지율 면에서도 범야권 후보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거의 중도를 넘어 보수까지 저인망식으로 표 확보를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 내에서도 이런 경쟁 구도를 빨리 만들어내고 싶을 것이다. 윤석열 대 김택진 구도라면, 이낙연 대 이재명 구도를 압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이런 고민도 하고 있을 것이다.
김 대표와 더불어 최근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금태섭 전 의원이다. 10월 21일 금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면서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는 평가다. 국민의힘이 내년 재보선 서울시장 경선을 ‘김택진 대 금태섭’으로 치러낼 수만 있다면 흥행 효과는 확실할 것이다. 일단 젊다. 기존 당내 계파로부터도 자유롭다. 실력도 검증된 상황이다. 변호사 대 기업인이라는 점에서 직업군 면에서 대비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흥미로운 한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키울 수 있는 구도다. 하지만 김 대표가 끝내 출전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구도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금 전 의원에 대해서도 “한 번 만나볼 수는 있다”고 밝힌 상태다. 금 전 의원은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김 위원장이 금 전 의원을 우선 고려 대상으로 보는 것 같진 않다.
이런 김 위원장의 행보를 바라보면서 창밖의 남자들은 속이 탈 것이다. 대표적 인물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다. 안 대표는 10월 22일 언론 인터뷰에서 “출마 생각이 없다고 여러 번 말했다. 서울시장은 절대 안 나간다”며 서울시장 출마설을 전면 부인했다. 진심일까. 10월 18일 미래세대 당원과의 화상회의 ‘청년온택트’에서 한 당원이 내년 재보선 출마 여부를 물었을 때 “국회에 있는 중요한 일을 마치고 나야 다음 선거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할 것이라며 11월과 12월을 언급했던 그다.
범야권 단일 후보 선출 가능성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왼쪽)와 금태섭 전 의원. [동아DB]
김 위원장에게 안 대표는 애초부터 논외 인물이었다. 앞서 4월 25일 언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2017년 대선에 출마했던 홍준표 전 대표, 유승민 의원, 안철수 대표 등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미안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검증이 다 끝났는데 뭘 또 나오느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공정경제 3법(상법 일부 개정안,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에 대해 안 대표가 반대 의사를 밝히자 이렇게 강하게 질타까지 했다. “자유시장경제가 무엇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을 못 하는 것 같다.” 여전히 안 대표는 논외라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김 위원장이 안 대표 배제를 전제로 내년 재보선 구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다고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구도가 잘 그려지지 않으면 안 대표에게 손을 내밀지 모른다. 안 대표의 ‘절대 안 나가’ 발언은 그때를 기다리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이 내년 재보선에 임박한 시점에도 더불어민주당에 크게 뒤진다면, 또 김 위원장이 공을 들인 서울시장 후보들이 지지율 가뭄에 지속적으로 허덕인다면 그때는 김 위원장도 손을 들 것으로 봐야 한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선거연대를 통한 범야권 단일 후보 선출을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때가 안 대표에게는 기회일 테고,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 ‘밑밥’을 깔기 시작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안 대표는 ‘절대 안 나가’ 발언 후에도 이른바 ‘작은 연대’에 꽤나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발언이 나온 그날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언급했다. “국민의힘은 한계가 있다. 국민의당이 앞장서 저변을 넓혀야 한다.” 국민의힘 독자적으로는 외연 확장이 불가능하니 자기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안 대표는 10월 10일 국민의힘 수도권 전현직 당협위원장 오찬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런 안 대표로서는 김택진 대표도 거슬리겠지만, 금태섭 전 의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 대표는 ‘제2의 안철수’, 곧 자신의 대체재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럴 테고, 금 전 의원은 한때 자신의 핵심 측근이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만약 금 전 의원이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다고 전제한다면 범야권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한 길고도 지루한 경선룰 협상을 해야 한다. 그나마 선거 연대가 성사됐을 경우다. 그 결과 자신이 승리하면 모르겠지만, 패배하면 또다시 정계 은퇴를 고려해야 한다. 악몽이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쪽은 김 위원장이라고 본다. 일단 큰집이기도 하지만, 수 싸움에서도 안 대표가 많이 밀린다. 김 위원장은 비상대책위원장에 오른 이후 진보 이슈 선점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미완의 상태이긴 하지만 인재 영입에도 누구보다 열심이다.
이에 비해 안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비판 이외에 보여주는 것이 별로 없다. 가장 큰 자랑거리인 외연 확장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인재 영입으로 드러난 성과가 없다. 안 전 대표가 김 위원장에 앞서 김택진 대표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김 대표에게 서울시장 재보선 출마를 권유하면서 벤처정신으로 대동단결해 집권하고 세상을 혁신적으로 바꿔보자고 제안했더라면 어땠을까. 정치계에도 4차 산업혁명이 필요한 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