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의 ‘야설(野說)’은 격주 화요일 ‘주간동아’ 온라인 채널에 게재됩니다. 제도 정치권 밖(野)에서 바라 본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서민 교수의 날카로운 입담(說)으로 풀어냅니다. <편집자주>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동아DB]
2019년, 조 전 장관의 청문회 때 조국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이 제기됐다. 그가 한국과 미국의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었고, 입대를 다섯 차례나 연기했으니, 그 의혹이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부인 정경심 교수가 “(아들이 대학원에) 두 번 떨어지고 나니까 군대 끌려가게 생겼다”며 서울대 교수에게 부탁하는 녹취록까지 있는 마당이었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이를 단호히 부인했다. 아들이 대학원에 재학 중이라 늦어졌을 뿐이며 내년에 입대할 예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 ‘내년’에서 벌써 열 달이 지났다. 입영 희망자가 많다는 걸 감안하면 지금 신청해도 올해 입대는 어려웠기에, 내가 SNS로 “조국 전 장관님, 두 달 남았네요”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맨 위에 쓴 문장은 그러니까 내 질문에 대한 조 전 장관의 답변이었다. 의아한 점은 ‘난데없이’라는 단어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대에 가는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2020년에 입대한다고 한 건 바로 조 전 장관 자신인데 왜 이게 난데없는 질문이 되는 것일까?
의문을 풀 길이 없어 충남 천안에 있는 태조산에 올랐다. 어려울 때마다 가르침을 주시는 도인 한 분이 산 중턱에 있어서였다. 나를 보자 그는 막 퇴근하려던 참이었다며 투덜거렸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내 얘기를 경청해 줬다. 이야기가 끝나자 그가 말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 말을 끝으로 그가 산을 내려가 버렸기에, 난 한참을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하려 발버둥을 쳐야 했다. 그리고 깨달음이 찾아왔다. 말이란 영원하지 않으며, 시대에 따라 변한다. 특히 요즘처럼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라면, 그 변화가 훨씬 더 심할 것은 자명한 이치다. 아이돌 그룹인 HOT를 ‘핫’이라 읽어서 ‘왕따’가 된 사례에서 보듯, 그 시대에 통용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생각지도 못한 피해를 겪을 수 있다. 이 지면을 빌려 내가 알게 된 것들을 나누고자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먼저 ‘난데없이’를 보자. 이 단어는 ‘갑자기 불쑥 나타나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게’라는 뜻이었지만, 현 정부 들어 ‘그냥 모른척하지 짜증나게’로 그 뜻이 변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A: 이봐, C! 너 지난주에 손흥민이 골 넣으면 밥 사기로 했잖아?
B: 아, 맞다. 손흥민 두골이나 넣었으니 오늘 밥 사라.
C: ‘난데없이’ 나한테 밥 사라는 얘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있네? (가만있으면 넘어갈 수도 있는데, 짜증나게 왜 그 얘기를 꺼내느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시스]
선생: 너 오늘까지 숙제해오기로 했잖아. 왜 안 했어?
학생: 꼭 숙제를 하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닙니다. 오히려 숙제를 안 하고 그 시간에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이 책임 있는 학생의 도리라고요.
사정이 이러니, ‘오늘 점심은 내가 책임진다’는 다른 이의 말만 믿고 지갑을 놔두고 가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자기 밥값도 남에게 부담시킨다는 뜻이니 말이다.
‘나경원’도 그 뜻이 변한 대표적인 단어다. 원래 나경원은 과거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정치인을 일컫지만, 지금은 자신이 공격받을 때 물타기용으로 이용하는 수단이 됐다. 예를 들어보자.
상사: 김 대리, 지난번에 나한테 준 자료, 숫자가 다 틀렸어요! 요즘 자꾸 왜 이래요?
김 대리: 나경원한테는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상사: 자네가 나경원을 언급하니, 내가 할 말이 없네. 화낸 거 미안해.
요즘 재판정에서 거론되는 ‘표창장’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뭔가를 훌륭히 해낸 이에게 학교나 다른 기관에서 주는 게 표창장이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또는 가족이 합심해서 만드는 것으로 그 의미가 달라졌다. 예를 들어보자.
학생1: 나 표창장 13개 받았어.
학생2: 13개 만들려면 힘들었겠다.
학생3: 나는 27개!
학생1 & 2: 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학생3: 응, 아버지가 인쇄소 하시거든.
하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은 말은 역시 ‘검찰개혁’이다. 지난 정권까지만 해도 이 말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현 정부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원래 검찰개혁은 검찰의 잘못된 점을 고침으로써 보다 나은 검찰을 만들자는 뜻. 하지만 지금은 자기가 잘못해 상황이 안 좋아졌을 때 쓰는 상투어가 됐다.
예컨대 어떤 이가 술을 마신 채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다고 가정해보자. 다른 이들이 그를 보며 혀를 끌끌 차겠지만, 그가 갑자기 “아야! 이래서 검찰개혁이 돼야 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갑자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운 투사로 칭송하게 된다.
‘검찰개혁’이란 말이 유용한 이유는 저지른 잘못이 클수록 효과가 더 커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100억을 횡령한 이가 외치는 검찰개혁과 1조원을 횡령한 이의 검찰개혁은 그 파장이 달라서, 후자가 훨씬 더 진정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라임사태의 김봉현이 법무장관의 신뢰를 듬뿍 받으며 ‘검찰개혁’에 앞장서고 있는 비결도 여기에 있다. 이밖에도 뜻이 변한 단어가 많이 있는 바, 이것들의 새로운 의미를 파악하고 상황에 맞게 쓰시길 빈다. 더 이상 ‘아싸’(아웃 사이더)로 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