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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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가듯 여행하기 좋은 일본 구마모토

[재이의 여행블루스] 화산과 온천, 역사 유적에서 느끼는 소박한 즐거움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6-06-17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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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3대 명성(名城) 가운데 하나인 구마모토성. GETTYIMAGES

    일본 3대 명성(名城) 가운데 하나인 구마모토성. GETTYIMAGES

    일본 규슈 중앙에 자리한 구마모토(熊本)는 오랜 역사와 웅장한 자연, 그리고 소도시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를 함께 품은 여행지다. 이곳에는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 3대 명성(名城)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구마모토성(熊本城)을 비롯해 세계 최대 규모의 칼데라 화산인 아소산(阿蘇山), 300년 전통의 구로카와 온천마을(黒川温泉) 등 역사와 자연이 함께한다. 후쿠오카에서 신칸센이나 버스로 비교적 쉽게 이동할 수 있고, 한국에서도 비행시간이 길지 않아 최근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화려한 관광 도시와는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분위기 덕분에 구마모토는 잠시 쉬어가듯 여행하기 좋은 도시로 기억된다.

    웅장하면서도 묵직한 구마모토성

    구마모토 시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존재는 단연 ‘구마몬’이다. 검은 곰 모양의 이 지역 마스코트로,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 가운데 하나가 됐다. 기념품 가게와 전철역, 카페 곳곳에서 구마몬을 쉽게 만날 수 있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캐릭터와 함께 움직이는 듯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특히 쓰루야 백화점에 위치한 구마몬 스퀘어는 여행객들이 한 번은 꼭 들르는 장소다. 구마몬 관련 굿즈가 전시돼 있고, 정해진 시간에 구마몬이 직접 등장하는 이벤트도 열리기 때문이다. 

    구마몬이 도시의 현재를 상징하는 문화라면 구마모토성은 도시의 역사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검은 외벽이 인상적인 이 성은 웅장하면서도 묵직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 당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지금도 복구 작업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원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성 주변을 걸으면 새롭게 복원된 건물과 당시 흔적이 남아 있는 돌담이 함께 보이는데, 그 모습에서 도시가 지나온 시간을 실감할 수 있다.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는 구마모토 시내 풍경도 인상적이다. 현대적인 건물 사이로 오래된 성곽이 어우러져 있어 과거와 현재가 한 장면에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구마모토성 바로 아래에는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桜の馬場 城彩苑)이 자리하고 있다. 에도 시대 분위기를 재현한 거리로, 지역 음식과 기념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골목 안에는 말고기 고로케와 당고,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거리를 판매하는 가게가 이어지고, 여행객들은 간식을 하나씩 손에 들고 천천히 거리를 활보한다. 지나치게 상업적인 느낌보다는 지역 특유의 소박한 분위기가 살아 있어 산책하듯 둘러보기에 좋다. 

    밤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시내 중심가 도리초스지(通町筋) 근처에 있는 야타이무라로 모여든다. 약 50m에 이르는 포장마차 거리로 점포와 양조장이 모여 있는데, 국물 맛이 진한 구마모토 라멘을 비롯해 숯불 꼬치요리, 말고기 요리 등 지역 음식을 늦은 밤까지 맛볼 수 있다. 특히 로컬 특산품인 고구마 사케는 부드럽고 은은한 단맛 덕분에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좁은 포장마차 안에서 옆자리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여행지라기보다 누군가의 평범한 저녁 속에 잠시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소박한 밤의 풍경이야말로 일본 소도시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30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한 구로카와 온천마을. GETTYIMAGES

    30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한 구로카와 온천마을. GETTYIMAGES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과 거대한 분화구

    구마모토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역시 아소산이다. 세계 최대급 칼데라 지형으로 유명한 활화산 지역인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예상보다 훨씬 압도적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과 거대한 분화구, 바람 따라 일렁이는 억새 풍경은 일본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하이킹이나 승마, 사이클링 같은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아소산 주변은 차분한 도시 분위기와 달리 자연의 에너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넓은 하늘 아래 서 있으면 복잡했던 생각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든다. 

    휴식을 원한다면 구로카와 온천마을도 가볼 만하다.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온천 마을로, 30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대형 리조트 대신 전통 료칸들이 자리해 마을 전체가 차분하고 아늑한 분위기다. 구로카와 온천마을의 가장 큰 매력은 숙박 없이 온천 마패(입욕 어음)를 구매해 여러 료칸의 노천탕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울창한 숲 사이로 김이 피어오르는 노천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복잡했던 마음이 노곤해진 몸과 함께 스르르 풀린다.

    구마모토는 일본 소도시의 평범한 일상을 가까이에서 느껴보기에 좋은 도시다. 웅장한 화산과 온천, 오래된 역사 유적과 소박한 골목 문화가 억지스럽지 않게 한 지역 안에 어우러져 있고, 무엇보다 여행 속도를 높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이 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여행의 즐거움을 다시 떠올리고 싶을 때 구마모토로 떠나보자.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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