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지수가 첫 솔로 앨범 ‘ME’를 내놓았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그 한 이유는 간결한 곡 구조에 있다. 곡은 ‘ABC 도레미’로 시작하는 A, ‘붉게 타버려진’으로 시작하는 B로 이어진다. 후렴을 기대하는 순간 ‘꽃향기만 남기고 갔단다’라는 한 구절을 던지고는 보컬이 거의 멈춘다. A와 거의 동일한 반주에 매우 인상 깊은 신스가 더해진 채 보컬 멜로디보다 안무 퍼포먼스를 위해 안배된 K팝식 드롭(drop)이다. 그러니 B에서 잠시 전환되는 것과 후반 브리지를 제외하면 플레잉타임 내내 같은 기조의 사운드와 감성으로 흐르는 셈이다. 보컬의 활약도 A와 B 2개 섹션과 ‘꽃향기만 남기고 갔단다’라는 의미심장한 구절, 그리고 후반 브리지로 제한된다. 보컬이 멜로디로 주제를 호소력 있게 전달하려 동분서주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런 노래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더욱 부각되는 지수의 존재감
미니멀리즘이라고 부르자면 그럴 수도 있겠다. 또는 서구인 시선에서 이국적으로 바라보는 동양미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단순하다기보다 단순화를 선택한 것처럼 느껴지는 멜로디의 리듬은 특히 그렇다. 곡 구조상 가사에 담길 분량도 적어서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침묵해버리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서구에서 말하는 ‘속을 알 수 없는 동양인’과도 유사한 종류의 위화감이다. 보컬의 멜로디와 드롭의 신스 등은 세련되게 소화된 트로트 향취를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사가 자못 신파적이다. 사랑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이 변모하는 순정이라는 주제나, ‘처참하게 짓밟혀진 내 하나뿐인 라일락’ 같은 대목이 대표적이다. ‘꽃’은 한국의 오래된 것들을 씨줄 삼고, 더할 수 있는 것들의 덜어냄을 날줄 삼아 이국미로서 동양미를 만들어낸다.사운드는 질감을 중시한다. 딱딱한 킥, 마림바, 현을 뜯어 소리를 내는 방식인 플럭(Pluck), 손가락 스냅, 셰이커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장해 서로를 만나고, 이들 사이에는 은근하게 사운드의 여백이 남는다. 그곳에 긴장이 깃든다. ‘꽃’의 사운드는 서스펜스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해학적이라 해도 좋을 아이러니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 묘한 공기가 이 곡의 신파성에 약간의 거리두기 효과를 준다. 마지막 미련을 버리려는 찰나에도 ‘넌 괜찮을까’를 읊조리는 지독한 순정녀지만, 그가 가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이별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전달되는 건 꽃향기만 남은 허무함뿐이다. 그가 강한 자존감의 소유자인지, 다른 사랑을 찾았는지, 이제 연애 따위는 잊고 세계의 정상을 향하려는지, 상대에게 무시무시한 복수를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감상자는 화자에게 이입하기보다 그저 감상하게 된다. 화자마저 ‘착했던 나 (중략) 눈빛이 싹 변했지’에서처럼 자신을 감상하고 있다. 그렇게 지수가 부각된다. 그의 목소리와 얼굴과 춤 말이다. 그것이 어떤 길을 돌고 돌아도 결국 인물로 수렴하는 스타 시스템으로서 K팝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