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교부가 1977년 펴낸 ‘국민학교 국민교육헌장풀이(5·6학년)’, 1966년 서울중고등통신학교에서 만든 입학안내서, 대한장학사회가 1958년 발행한 ‘교육전시회 화보’에 실린 인포그래픽, 1933년생 김상철 씨가 40년대 초 사용한 2학년 학습장(왼쪽부터).
영화 ‘쿵푸 팬더’에서 사부님이 제자에게 하는 말이다. 어쩔 도리 없는 어제와 내일에 얽매이지 말고, 선물 같은 오늘에 충실하라는 얘기다. 과연 사부님 말씀답다. 하지만 인간이 어디 그런가. 지나온 역사 속에서 인간은 늘 미래를 전망했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려 했다. 그것이 현실이 되기 어렵기 때문에 미래가 여전히 수수께끼, 미스터리로 남아 있을 뿐이다.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전은 그렇게 좌절된, ‘현재가 되지 못한 과거의 미래 전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1933년생 서울 토박이 김상철 씨와 1960년대 초반 농촌에서 태어난 가상의 인물, 이 두 명을 주인공 삼아 그들이 살아온 한국의 근현대사를 되짚는다.
역사여행의 도구는 텍스트다. 일본어로 적힌 1930년대 교과서부터 일제가 펴낸 ‘농민독본’, 1960년대의 ‘국민교육헌장독본’과 다양한 대중서 등 이들이 살아오며 접했을 법한 당대 자료가 풍성하다. 이 전시물을 통해 관객은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인간이 되기를 바랐고, 어떤 사회를 꿈꿨으며, 사회는 구성원을 어떻게 ‘훈육’하려 했는지 엿볼 수 있다.
1958년 문교부가 펴낸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 방침’, 1967년 고등학교 사회교과서에 실린 ‘국민의 권리 의무’, 1989년 ‘사상문예운동’이라는 잡지에 실린 ‘진보적 대중정당 결성은 필연이다’라는 제목의 좌담 등 1950~80년대 풍경을 보여주는 20개의 인쇄물도 눈길을 끈다.
누구나 한 부씩 가져갈 수 있도록 쌓아둔 이 자료는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라는 전시 제목을 새삼 곱씹게 만든다. 책이 주인공인 이 전시에서 ‘관객’은 곧 ‘독자’이고, 전시를 ‘보는 것’은 곧 그 시대와 인간의 삶을 ‘읽는 것’임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전시에 등장한 ‘작품’들은 2008년 서울 중앙고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인문학박물관 소장품들. 우리나라 근현대 책과 자료 5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던 이 박물관은 지난해 고려대박물관으로 이관이 결정되면서 문을 닫았다. 이때 디자인연구자 박해천, 번역가 윤원화, 큐레이터 현시원 등이 박물관을 미술관으로 옮겨보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이 전시를 기획했다. 이들이 7개월여에 걸쳐 골라낸 책, 잡지, 자료 등 500여 점이 관객을 맞는다. 9월 21일까지, 문의 02-2020-2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