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오의 새 앨범을 기다렸다. 2015년 MBC ‘무한도전-영동고속도로가요제’로 단숨에 라이징 스타가 된 후 어떤 음악으로 돌아올지 궁금했다. 첫 정규 앨범인 ‘23’이 나왔다. 스트리밍 시대에 음반을 특별하게 여기는 건 구시대적 발상일 수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음악을 하는 이에게 음반은 싱글이나 EP(Extended Play)와는 다르다. 정면승부요,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세계의 제시다.
혁오가 앨범이 나오기까지 2년 동안 침묵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밴드 보컬이자 송라이터인 오혁은 아이유, 프라이머리 등과 협업하며 흑백 경계가 모호한 특유의 목소리와 멜로디를 들려줬다. 혁오의 앨범 또한 그 연장선에 있을 거라 예상했다. ‘위잉위잉’ ‘와리가리’ ‘Panda Bear’ 등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짐작했다. 베일을 벗은 ‘23’은 하지만, 그 예상과 짐작에서 벗어났다. 따지고 보면 혁오는 데뷔와 이슈화 과정부터 관성에서 벗어나 있었다.
2015년 1월 마지막 금요일, 서울 홍대 앞에서는 첫 번째 라이브클럽 데이가 열렸다. 티켓 한 장으로 10여 개 라이브클럽의 공연을 모두 볼 수 있는 이 행사의 라인업은 화려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비롯해 좀처럼 클럽 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스타급 팀이 많았다. 관계자들에게조차 혁오의 이름이 낯설던 그때, 그들의 공연은 순식간에 입장 불가가 됐다. ‘새로운 것’에 반응하고 그것을 찾아다니는 세대에게 혁오는 스타급이었다.
그러니까 페이스북보다 인스타그램을 선호하고, 해방촌과 을지로의 ‘힙한’ 공간을 소리 소문도 없이 아지트로 삼는 이들 말이다. 그런 혁오를 두고 누군가는 “패션지에서 좋아할 만한 밴드가 오랜만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무한도전’ 출연으로 얻은 성공 또한 그들의 음악이 어떤 형태로든 뻔한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대중적 혹은 마니아적이라는 기존의 범주 말이다.
‘23’은 혁오가 상징하던 힙스터적 이미지에서 벗어난다. 이 앨범은 혁오가 ‘오혁과 아이들’이 아닌, 엄연한 밴드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음악이 좋아서 뭉친 친구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연주를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집단으로서의 밴드 말이다.
드럼과 베이스, 기타가 보컬과 동등한 지분을 차지하고 사운드로 곡의 분위기를 만들어나간다. 전에 들을 수 없던 격렬한 기타가 있는 곡,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며 전통적 록 밴드가 지향하던 미학을 추구하는 곡 등이 있다. 그리하여 ‘23’은 그저 열두 곡의 노래 모음이 아닌, 하나의 ‘앨범’으로서 서사가 된다.
첫 곡이 ‘Burning youth’라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들이 그려내는 서사는 대부분 청춘에 대한 이야기다. 그동안 명확지도, 겉돌지도 않던 가사들은 이 앨범에서 좀 더 암시적이면서 개인적 색깔을 드러낸다. 타이틀 곡 ‘TOMBOY’는 20대 중반에 되짚어보는, 젊음에 대한 송가다.
낙관도 비관도 아닌, 불안과 희망이 알 수 없는 경계로 섞여 있는 그 시기를 혁오는 아련하고 애틋한 멜로디로 노래하고 연주한다. 이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대중성은 트렌디하다기보다 과거 지향적 분위기에서 만들어진다. 이는 그들의 세계가 장르와 계보가 아닌, 유튜브와 사운드 클라우드, 해시태그로 취향을 형성하는 현 세대와 호흡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 세계에선 시간과 공간이란 무의미하니까.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중국어까지 3개 국어로 쓰인 가사 또한 그런 면을 단편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단서일 것이다. 오롯이 자신의 음악을 하는 한국 음악인 가운데 현재 가장 젊은 스타인 그들은 첫 정규 앨범에 자신들의, 그리고 세기말에 태어난 이들이 만들어갈 미래를 담았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인디 록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