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① Fun 경영 전도사 진수 테리
“신나게, 독창적으로, 보살피는 리더가 돼라”
“자, 팔을 벌리고 감정을 듬뿍 실어 말해보세요. ‘Wow’ ‘Really?’ ‘You’re amazing’ ‘You’re right’! 이 네 가지에 ‘Tell me more’ ‘You’re the best’까지 말할 줄 알면 국제무대에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습니다.”
2월25일 오전 7시 한국리더십센터가 주최한 제99차 CEO리더십포럼. 100여 명의 기업인이 때론 배꼽 잡고 때론 진솔한 강연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진수 테리(54·한국명 김진수). 그는 미국을 베이스캠프 삼아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펀(FUN)경영 전도사이자 전문 연설가다.
1985년 도미(渡美)한 그는 한·미 기업을 상대로 양국의 기업 정서와 문화, 커뮤니케이션 기술 등을 컨설팅하고 있다. 1998년 ‘라이노 비즈니스클럽’을 창설, 비즈니스맨들에게 리더십과 대중연설 기법을 가르치고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는 그가 지역사회의 경제·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사 2001년 7월10일을 ‘진수 테리의 날’로 선포했으며, 2005년 ABC방송은 그를 미국 내 아시아 지도자 11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금메달 따고 ‘No English’라니 …
서너 해 전부터 국내 기업들의 초청으로 한국에 자주 들르는 그가 이번 겨울에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장기간’ 머물고 있다. 카이스트 학생들을 상대로 2~3월 두 달간 ‘스피치 프레젠테이션 강좌’를 가르치기로 했기 때문. 이날 강연이 끝난 뒤 진수 테리를 만나 ‘한국인이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한 조건’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 내내 그는 열정적이었고, 기자의 말에 맞장구를 잘 쳐줬으며, 하회탈 닮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러니까 펀(Fun)한 시간이었다.
한국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처음이다. 겪어본 한국 대학생을 어떻게 평가하나.
“두 가지에 놀랐다. 첫째는 논리력이 떨어진다. 메시지를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눠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약했다. 둘째는 열정적이다. 한국 학생들은 이해가 빠르고 매우 성실하다.”
영어 실력은?
“카이스트 학생들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만난 한국인의 영어 실력은 충분히 뛰어나다. 문제는 자신감이 결여됐다는 점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모태범 선수가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춤추는 세리모니를 해 정말 멋졌다. 그런데 외신이 다가와 인터뷰를 요청하자 ‘No English’라며 피하더라. 세계적 스타가 될 기회를 외면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런 상황에서 모 선수는 어떻게 했어야 하나.
“외신이 그에게서 오바마 대통령 같은 화려한 언사를 기대한 건 아닐 것이다. 환하게 웃으며 ‘Thank you for asking. I’m so happy. Thank you’ 정도만 했어도 충분했다.”
진수 테리가 펀 경영을 창시하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7년간 몸 바쳐 일한 회사로부터 어느 날 해고당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아시아인이거나, 여자이거나, 미국 대학 졸업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재미가 없어서’였다. 그날 이후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리더들에게 펀(Fun)해지라고 요구한다. 다시 말해 신나게(Fun), 독창적으로(Unique), 보살피는(Nuturing) 리더가 되라는 주문이다. 그는 “글로벌 리더 또한 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펀 경영이 정말 잘되는 조직을 만나본 적 있나.
“구글이다. 3년 전 구글 직원들을 인터뷰해 보고서를 쓴 적 있다. 구글은 아이디어가 있는 개인이 동료들을 끌어들여 소규모 팀을 조직해 일하는 시스템이다. 팀을 조직하려는 개인에겐 세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성과가 있고,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며,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야 동료들이 따르니까. 바로 이것이 펀 경영의 진수다. 글로벌 리더가 되려면 이 세 가지 능력을 갖춰 글로벌한 팀을 꾸릴 줄 알아야 한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 등으로 구성된 뛰어난 글로벌 팀이 있었기에 김연아 선수가 성공할 수 있었다. 글로벌 팀이 바로 글로벌 리더의 경쟁력이다.”
하지만 낯선 세계인과 사귀기에 한국인들은 지나치게 부끄럼이 많다.
“실리콘밸리에서 아시안, 아메리칸의 파티가 열린 적 있다. 약 1000명이 모였는데, 한국인은 10명도 채 안 됐다. 그나마 온 사람들도 밥만 먹고 가버렸다. 한국인은 국제무대에서 네트워크를 쌓는 기술이 매우 약하다. 이걸 극복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핵심은 유연성(flexibility)을 갖는 것이다. 모두가 김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라. 남의 처지에서 생각해라. 스티븐 잡스의 ‘애플’이 뛰어난 이유는 그들이 늘 ‘소비자의 고통(Customer’s pain)’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 만난 다문화 사람들을 그들 처지에서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또?
“스몰토크(small talk)를 잘할 수 있으면 유리하다. 세계 정상들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영어를 잘하고 다방면에 관심과 지식이 많다. 그래서 누구나 그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인도 다람살라에 찾아오는 세계 젊은이들을 통해 세계 각지, 다양한 문화를 배워온 그는 특히 우주과학에 대한 지식과 식견이 뛰어나다고 한다.”
진수 테리는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과 많은 교류를 해왔다. 그가 보는 한국 기업의 현지 적응도는? “점점 나아지곤 있지만 여전히 미스커뮤니케이션이 많다”는 게 그의 평가다.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무엇인가.
“회의를 하다 보면 결국 한국어만 하고, 한국어로 e메일을 쓴다. 또 한국 음식만 먹으러 다닌다. 한국 기업에 근무하는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지시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각종 인사말이 곁들여진 e메일을 보내는데 너무 장황해서 핵심이 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e메일에 ‘건강하세요’라고 쓰면 미국인들은 ‘내가 아파 보이나?’ 하고 오해한다. 미국인들은 토론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부하직원인 미국인이 자기 의견을 피력하면 한국인 상사는 ‘기어오른다’고 여긴다.”
한국 모르는 한국인은 ‘바보’
진수 테리의 강연 대상자 중 하나는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민족이다. 그는 흑인사회의 인정을 얻기 위해 직접 랩을 부른 음반을 발매했고, 히스패닉 경영자들의 경제활동을 돕고자 히스패닉상공회의소 창립멤버로 뛰었다. 글로벌 리더는 공짜로 되는 게 아니다. 타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히스패닉 비중과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우리에게 히스패닉 문화는 여전히 낯설다. 조언하자면.
“이들은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매운 음식과 모임을 좋아한다. 하지만 낙천적이라 일을 ‘빨리빨리’ 진행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에 존경심을, 여성의 미모에 찬사를 보내는 걸 기뻐한다.”
한국에서는 조기 영어교육이 열풍을 넘어 광풍이다. 부모들은 자녀가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려면 영어 실력이 원어민 수준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음식, 정신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세계인이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 건,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이 한국에 대해 잘 모르면 참 바보 같다. 매력이 없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바로 우리의 경쟁력이다. 영어를 쫓느라 이 귀중한 진실을 놓치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글로벌 리더② 前 세르비아 대사 김영희
“말하기와 글쓰기로 승부하라”
“이건 캐나다 대사가 선물한 접시고, 저건 세르비아 기업가가 대리석으로 만들어준 태극기예요. 이 시계는 헬무트 콜 전 총리가 선물했어요. 외국인과 친구가 되는 비결이요? 먼저 다가가 솔직하게 나를 열어 보이면 ‘오케이’입니다.”
3월1일 방문한 김영희(61) 전 세르비아 대사의 자택은 신기한 소품으로 가득했다. 20년 가까이 외교관으로 일하며 외국 친구들과 나눈 ‘우정의 증표’다. 그는 대한민국 세 번째 여성 대사. 독일 통일 직후인 1991년 외무부에 들어가 2008년까지 독일과 세르비아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다.
그가 독일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2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9급 공무원으로 일할 때였다. 우연히 백화점에서 만난 친구에게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순간 “이거다” 싶었다. 가슴 한구석에 미뤄둔 열정의 이끌림으로 그는 주저 없이 결정을 내렸다.
“어린 시절 꿈이 외교관이었어요. 늘 막연하지만 넓은 세계를 꿈꿨죠. 독일 이야기를 듣자마자 놓치면 후회할 거라는 직감에 바로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무엇보다 독일은 학비가 안 들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죠.”
관계 맺기의 기본은 화법 정복
독일로 건너간 그는 3년간 간호사로 일하며 주경야독했다. 간호보조원 계약이 끝나자마자 쾰른대학 예비과정을 거쳐 1975년 교육학으로 입학했다.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로 10년 만에 박사학위를 땄고, ‘전공과목을 강의한 최초의 외국인 여성’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정신없이 맞은 마흔둘. 그제야 외교관의 꿈을 실현할 기회가 왔다. 외무부(현 외교통상부)가 독일 전문가 특별 채용공고를 낸 것이다.
세르비아 대사직을 마지막으로 2008년 말 귀국한 그는 최근 특별한 작업을 끝냈다. 외교관 생활을 하며 느낀 생각과 경험을 ‘글로벌 키워드’로 엮어 책에 담아낸 것. 국제사회에서 각국과 협력하고 경쟁하는 외교관의 자질은 ‘글로벌 리더’의 덕목과 다르지 않다. 해외에 나갈 기회도, 국내 기업에 들어오는 외국인도 많아지는 요즘 후배들과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김 전 대사에게 국제용 인재로 거듭나는 노하우를 물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마거릿 대처’ 등 서재에 전기가 많다.
“전기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외교관 생활에 굉장히 유익하다. 외교도 비즈니스도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이는 대화능력이 좌우한다. 전기에는 개인의 성장과정뿐 아니라 문화와 역사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렇게 각 나라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으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는 스트레스를 덜 수 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머문 시간이 더 길다. 독일에 건너가 처음 겪은 어려움은.
“나는 가자마자 간호조무사 생활을 했다. 생명이 달린 급박한 상황에서 독일 의사, 간호사와 부대꼈다. 그 덕에 문화 적응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은 판이하게 다른 의사소통 과정으로 마음고생을 한다. 독일인은 생각, 말, 행동이 일치하지만 한국은 에둘러 말한다. 현지인의 의사소통 방법을 익히지 못하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에둘러 말하는 화법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나.
“역으로 ‘한국식 화법’에 당황한 일이 있다. 독일에서 20년 가까이 지내다 외무부에 들어갔는데, 젊은 여자 사무관이 ‘옷을 아주 젊게 입으시네요’라고 하더라. 기분이 좋았는데 곱씹어보니 ‘나이보다 옷을 젊게 입는다’는 진의가 숨어 있었다. 이런 화법은 나쁜 말을 할 때일수록 피해야 한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나쁜 말을 즉시, 직접,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오해를 부른다.”
조직 문화의 문제는 무엇인가.
“한국 회식자리에서 직급이 높은 한두 사람만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 분위기는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소통을 저해한다. 평소 젊은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다가 회의 때 갑자기 ‘아이디어를 내라’고 닦달해봐라. 절대 아이디어가 안 나온다. 서양에서는 나이와 직급이 중요하지 않다. 20대와 60대도 말이 통하면 친구가 되고, 회의 때도 자유롭게 공방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세계화 지수’는 부모세대에 비해 일취월장했다. 팔다리 길이도 훨씬 길고 어렵다는 ‘th’ 발음도 원어민처럼 구사한다. 그럼에도 국제무대의 평가는 냉혹하다. “표현력이 떨어져 조직 생활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는 지적이 가장 흔하다.
해외에 나가면 위축돼서 평소 역량을 발휘하기 힘든 것 같다.
“말하기와 글쓰기가 업무의 전부다. 의견이 있어도 말과 글로 표현하지 못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지금 한 대학에 초빙교수로 나가고 있는데, 대부분 학생들이 표현을 못하는 정도를 넘어 두려워한다. 유치원에서 할 놀이부터 토론으로 정하는 외국 인재들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언어장벽이 가장 큰 걸림돌인가.
“외국어를 완벽하게 할 때까지 기다리면 죽을 때까지 한마디도 못한다. 제2 외국어는 서툰 것이 당연하다. 조금 틀려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아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이 걱정되면 미리 ‘실수해도 이해해달라’고 웃으면서 말하라. 솔직히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면 오히려 좋아한다. 우리는 ‘고맙다, 미안하다, 도와달라’는 말에 인색한데, 그들은 이 말을 가장 빈번히 사용한다.”
에티켓을 몰라 크고 작은 사교행사에서 바보처럼 보인 일은 없는가.
“리셉션이나 디너 행사에서는 자칫하면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다. 나는 행사에 참석하는 한국인 부부나 일행에게 ‘절대 같이 서 계시지 말라’고 한다. 귀퉁이에서 우리끼리 서 있는 것은 매너도 아니고 의미도 없다. 홀로 미소로 다가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날씨, 착용 액세서리 등 일반적인 화제가 바닥나면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면 된다. 작은 이야기로 시작해 관계가 생기고, 깊은 대화를 하는 친구 사이로 발전한다. 그 관계가 비즈니스의 바탕이 된다.”
‘공통분모’ 없이 좋은 대화를 나누려면?
“한국은 지연, 학연, 혈연 없이 대화가 되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그 부분을 먼저 물어보는 것은 실례다. 온전히 관심사와 취향으로 대화해야 하는 것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내공이 중요하다. 서양 사람들은 실리적이라, 재미없고 유익하지도 않으면 두 번째 만남은 없다. 여기서 재미란 ‘fun’이 아닌 의미 있는 시간을 뜻한다. 독서와 여행을 통해 훈련을 해야 한다.”
한국 중년 남성들은 잘 웃지 않고 웃기는 일에도 서툴다. 오히려 재미있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삼킨다. 웃음이 헤프면 체면이 깎인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김 전 대사는 “직위고하와 관계없이 유머는 개인의 매력을 높이는 요소”라고 말한다.
외국에서는 대통령과 최고경영자(CEO)들도 예사로 유머를 구사하는데 한국은 경직된 경향이 있다.
“유머는 굉장한 경쟁력이다. 말단 직원이든 대통령이든 잘 웃고 웃기면 점수를 따고 들어가게 된다. 통역을 하며 모셨던 전직 대통령들도 유머 있는 분들이 회담을 부드럽게 이끌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솔직 소탈한 유머를 구사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겸손한 유머가 빛나는 분이었다.”
세계에서 통하는 우리만의 경쟁력이 있다면.
“동양인은 성품이 다정다감하고 친근하다. 여성은 체구가 아담하고 외모가 어려 보여 서양인들이 호감을 느낀다. 또 서양인들은 동양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 역사나 문화를 조금만 공부해도 금세 친해질 수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신나게, 독창적으로, 보살피는 리더가 돼라”
진수 테리가 펴낸 음반과 책, 만화책(왼쪽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음반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책과 만화책은 글로벌 무대에서 필요한 매너와 대화법 등을 알려 준다.
2월25일 오전 7시 한국리더십센터가 주최한 제99차 CEO리더십포럼. 100여 명의 기업인이 때론 배꼽 잡고 때론 진솔한 강연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진수 테리(54·한국명 김진수). 그는 미국을 베이스캠프 삼아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펀(FUN)경영 전도사이자 전문 연설가다.
1985년 도미(渡美)한 그는 한·미 기업을 상대로 양국의 기업 정서와 문화, 커뮤니케이션 기술 등을 컨설팅하고 있다. 1998년 ‘라이노 비즈니스클럽’을 창설, 비즈니스맨들에게 리더십과 대중연설 기법을 가르치고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는 그가 지역사회의 경제·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사 2001년 7월10일을 ‘진수 테리의 날’로 선포했으며, 2005년 ABC방송은 그를 미국 내 아시아 지도자 11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금메달 따고 ‘No English’라니 …
서너 해 전부터 국내 기업들의 초청으로 한국에 자주 들르는 그가 이번 겨울에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장기간’ 머물고 있다. 카이스트 학생들을 상대로 2~3월 두 달간 ‘스피치 프레젠테이션 강좌’를 가르치기로 했기 때문. 이날 강연이 끝난 뒤 진수 테리를 만나 ‘한국인이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한 조건’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 내내 그는 열정적이었고, 기자의 말에 맞장구를 잘 쳐줬으며, 하회탈 닮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러니까 펀(Fun)한 시간이었다.
한국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처음이다. 겪어본 한국 대학생을 어떻게 평가하나.
“두 가지에 놀랐다. 첫째는 논리력이 떨어진다. 메시지를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눠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약했다. 둘째는 열정적이다. 한국 학생들은 이해가 빠르고 매우 성실하다.”
영어 실력은?
“카이스트 학생들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만난 한국인의 영어 실력은 충분히 뛰어나다. 문제는 자신감이 결여됐다는 점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모태범 선수가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춤추는 세리모니를 해 정말 멋졌다. 그런데 외신이 다가와 인터뷰를 요청하자 ‘No English’라며 피하더라. 세계적 스타가 될 기회를 외면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런 상황에서 모 선수는 어떻게 했어야 하나.
“외신이 그에게서 오바마 대통령 같은 화려한 언사를 기대한 건 아닐 것이다. 환하게 웃으며 ‘Thank you for asking. I’m so happy. Thank you’ 정도만 했어도 충분했다.”
진수 테리가 펀 경영을 창시하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7년간 몸 바쳐 일한 회사로부터 어느 날 해고당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아시아인이거나, 여자이거나, 미국 대학 졸업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재미가 없어서’였다. 그날 이후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리더들에게 펀(Fun)해지라고 요구한다. 다시 말해 신나게(Fun), 독창적으로(Unique), 보살피는(Nuturing) 리더가 되라는 주문이다. 그는 “글로벌 리더 또한 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펀 경영이 정말 잘되는 조직을 만나본 적 있나.
“구글이다. 3년 전 구글 직원들을 인터뷰해 보고서를 쓴 적 있다. 구글은 아이디어가 있는 개인이 동료들을 끌어들여 소규모 팀을 조직해 일하는 시스템이다. 팀을 조직하려는 개인에겐 세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성과가 있고,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며,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야 동료들이 따르니까. 바로 이것이 펀 경영의 진수다. 글로벌 리더가 되려면 이 세 가지 능력을 갖춰 글로벌한 팀을 꾸릴 줄 알아야 한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 등으로 구성된 뛰어난 글로벌 팀이 있었기에 김연아 선수가 성공할 수 있었다. 글로벌 팀이 바로 글로벌 리더의 경쟁력이다.”
하지만 낯선 세계인과 사귀기에 한국인들은 지나치게 부끄럼이 많다.
“실리콘밸리에서 아시안, 아메리칸의 파티가 열린 적 있다. 약 1000명이 모였는데, 한국인은 10명도 채 안 됐다. 그나마 온 사람들도 밥만 먹고 가버렸다. 한국인은 국제무대에서 네트워크를 쌓는 기술이 매우 약하다. 이걸 극복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핵심은 유연성(flexibility)을 갖는 것이다. 모두가 김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라. 남의 처지에서 생각해라. 스티븐 잡스의 ‘애플’이 뛰어난 이유는 그들이 늘 ‘소비자의 고통(Customer’s pain)’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 만난 다문화 사람들을 그들 처지에서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또?
“스몰토크(small talk)를 잘할 수 있으면 유리하다. 세계 정상들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영어를 잘하고 다방면에 관심과 지식이 많다. 그래서 누구나 그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인도 다람살라에 찾아오는 세계 젊은이들을 통해 세계 각지, 다양한 문화를 배워온 그는 특히 우주과학에 대한 지식과 식견이 뛰어나다고 한다.”
진수 테리는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과 많은 교류를 해왔다. 그가 보는 한국 기업의 현지 적응도는? “점점 나아지곤 있지만 여전히 미스커뮤니케이션이 많다”는 게 그의 평가다.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무엇인가.
“회의를 하다 보면 결국 한국어만 하고, 한국어로 e메일을 쓴다. 또 한국 음식만 먹으러 다닌다. 한국 기업에 근무하는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지시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각종 인사말이 곁들여진 e메일을 보내는데 너무 장황해서 핵심이 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e메일에 ‘건강하세요’라고 쓰면 미국인들은 ‘내가 아파 보이나?’ 하고 오해한다. 미국인들은 토론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부하직원인 미국인이 자기 의견을 피력하면 한국인 상사는 ‘기어오른다’고 여긴다.”
한국 모르는 한국인은 ‘바보’
진수 테리의 강연 대상자 중 하나는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민족이다. 그는 흑인사회의 인정을 얻기 위해 직접 랩을 부른 음반을 발매했고, 히스패닉 경영자들의 경제활동을 돕고자 히스패닉상공회의소 창립멤버로 뛰었다. 글로벌 리더는 공짜로 되는 게 아니다. 타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히스패닉 비중과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우리에게 히스패닉 문화는 여전히 낯설다. 조언하자면.
“이들은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매운 음식과 모임을 좋아한다. 하지만 낙천적이라 일을 ‘빨리빨리’ 진행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에 존경심을, 여성의 미모에 찬사를 보내는 걸 기뻐한다.”
한국에서는 조기 영어교육이 열풍을 넘어 광풍이다. 부모들은 자녀가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려면 영어 실력이 원어민 수준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음식, 정신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세계인이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 건,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이 한국에 대해 잘 모르면 참 바보 같다. 매력이 없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바로 우리의 경쟁력이다. 영어를 쫓느라 이 귀중한 진실을 놓치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글로벌 리더② 前 세르비아 대사 김영희
“말하기와 글쓰기로 승부하라”
“이건 캐나다 대사가 선물한 접시고, 저건 세르비아 기업가가 대리석으로 만들어준 태극기예요. 이 시계는 헬무트 콜 전 총리가 선물했어요. 외국인과 친구가 되는 비결이요? 먼저 다가가 솔직하게 나를 열어 보이면 ‘오케이’입니다.”
3월1일 방문한 김영희(61) 전 세르비아 대사의 자택은 신기한 소품으로 가득했다. 20년 가까이 외교관으로 일하며 외국 친구들과 나눈 ‘우정의 증표’다. 그는 대한민국 세 번째 여성 대사. 독일 통일 직후인 1991년 외무부에 들어가 2008년까지 독일과 세르비아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다.
그가 독일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2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9급 공무원으로 일할 때였다. 우연히 백화점에서 만난 친구에게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순간 “이거다” 싶었다. 가슴 한구석에 미뤄둔 열정의 이끌림으로 그는 주저 없이 결정을 내렸다.
“어린 시절 꿈이 외교관이었어요. 늘 막연하지만 넓은 세계를 꿈꿨죠. 독일 이야기를 듣자마자 놓치면 후회할 거라는 직감에 바로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무엇보다 독일은 학비가 안 들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죠.”
관계 맺기의 기본은 화법 정복
독일로 건너간 그는 3년간 간호사로 일하며 주경야독했다. 간호보조원 계약이 끝나자마자 쾰른대학 예비과정을 거쳐 1975년 교육학으로 입학했다.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로 10년 만에 박사학위를 땄고, ‘전공과목을 강의한 최초의 외국인 여성’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정신없이 맞은 마흔둘. 그제야 외교관의 꿈을 실현할 기회가 왔다. 외무부(현 외교통상부)가 독일 전문가 특별 채용공고를 낸 것이다.
세르비아 대사직을 마지막으로 2008년 말 귀국한 그는 최근 특별한 작업을 끝냈다. 외교관 생활을 하며 느낀 생각과 경험을 ‘글로벌 키워드’로 엮어 책에 담아낸 것. 국제사회에서 각국과 협력하고 경쟁하는 외교관의 자질은 ‘글로벌 리더’의 덕목과 다르지 않다. 해외에 나갈 기회도, 국내 기업에 들어오는 외국인도 많아지는 요즘 후배들과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김 전 대사에게 국제용 인재로 거듭나는 노하우를 물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마거릿 대처’ 등 서재에 전기가 많다.
“전기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외교관 생활에 굉장히 유익하다. 외교도 비즈니스도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이는 대화능력이 좌우한다. 전기에는 개인의 성장과정뿐 아니라 문화와 역사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렇게 각 나라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으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는 스트레스를 덜 수 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머문 시간이 더 길다. 독일에 건너가 처음 겪은 어려움은.
“나는 가자마자 간호조무사 생활을 했다. 생명이 달린 급박한 상황에서 독일 의사, 간호사와 부대꼈다. 그 덕에 문화 적응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은 판이하게 다른 의사소통 과정으로 마음고생을 한다. 독일인은 생각, 말, 행동이 일치하지만 한국은 에둘러 말한다. 현지인의 의사소통 방법을 익히지 못하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에둘러 말하는 화법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나.
“역으로 ‘한국식 화법’에 당황한 일이 있다. 독일에서 20년 가까이 지내다 외무부에 들어갔는데, 젊은 여자 사무관이 ‘옷을 아주 젊게 입으시네요’라고 하더라. 기분이 좋았는데 곱씹어보니 ‘나이보다 옷을 젊게 입는다’는 진의가 숨어 있었다. 이런 화법은 나쁜 말을 할 때일수록 피해야 한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나쁜 말을 즉시, 직접,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오해를 부른다.”
조직 문화의 문제는 무엇인가.
“한국 회식자리에서 직급이 높은 한두 사람만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 분위기는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소통을 저해한다. 평소 젊은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다가 회의 때 갑자기 ‘아이디어를 내라’고 닦달해봐라. 절대 아이디어가 안 나온다. 서양에서는 나이와 직급이 중요하지 않다. 20대와 60대도 말이 통하면 친구가 되고, 회의 때도 자유롭게 공방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세계화 지수’는 부모세대에 비해 일취월장했다. 팔다리 길이도 훨씬 길고 어렵다는 ‘th’ 발음도 원어민처럼 구사한다. 그럼에도 국제무대의 평가는 냉혹하다. “표현력이 떨어져 조직 생활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는 지적이 가장 흔하다.
해외에 나가면 위축돼서 평소 역량을 발휘하기 힘든 것 같다.
“말하기와 글쓰기가 업무의 전부다. 의견이 있어도 말과 글로 표현하지 못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지금 한 대학에 초빙교수로 나가고 있는데, 대부분 학생들이 표현을 못하는 정도를 넘어 두려워한다. 유치원에서 할 놀이부터 토론으로 정하는 외국 인재들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언어장벽이 가장 큰 걸림돌인가.
“외국어를 완벽하게 할 때까지 기다리면 죽을 때까지 한마디도 못한다. 제2 외국어는 서툰 것이 당연하다. 조금 틀려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아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이 걱정되면 미리 ‘실수해도 이해해달라’고 웃으면서 말하라. 솔직히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면 오히려 좋아한다. 우리는 ‘고맙다, 미안하다, 도와달라’는 말에 인색한데, 그들은 이 말을 가장 빈번히 사용한다.”
에티켓을 몰라 크고 작은 사교행사에서 바보처럼 보인 일은 없는가.
“리셉션이나 디너 행사에서는 자칫하면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다. 나는 행사에 참석하는 한국인 부부나 일행에게 ‘절대 같이 서 계시지 말라’고 한다. 귀퉁이에서 우리끼리 서 있는 것은 매너도 아니고 의미도 없다. 홀로 미소로 다가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날씨, 착용 액세서리 등 일반적인 화제가 바닥나면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면 된다. 작은 이야기로 시작해 관계가 생기고, 깊은 대화를 하는 친구 사이로 발전한다. 그 관계가 비즈니스의 바탕이 된다.”
‘공통분모’ 없이 좋은 대화를 나누려면?
“한국은 지연, 학연, 혈연 없이 대화가 되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그 부분을 먼저 물어보는 것은 실례다. 온전히 관심사와 취향으로 대화해야 하는 것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내공이 중요하다. 서양 사람들은 실리적이라, 재미없고 유익하지도 않으면 두 번째 만남은 없다. 여기서 재미란 ‘fun’이 아닌 의미 있는 시간을 뜻한다. 독서와 여행을 통해 훈련을 해야 한다.”
한국 중년 남성들은 잘 웃지 않고 웃기는 일에도 서툴다. 오히려 재미있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삼킨다. 웃음이 헤프면 체면이 깎인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김 전 대사는 “직위고하와 관계없이 유머는 개인의 매력을 높이는 요소”라고 말한다.
외국에서는 대통령과 최고경영자(CEO)들도 예사로 유머를 구사하는데 한국은 경직된 경향이 있다.
“유머는 굉장한 경쟁력이다. 말단 직원이든 대통령이든 잘 웃고 웃기면 점수를 따고 들어가게 된다. 통역을 하며 모셨던 전직 대통령들도 유머 있는 분들이 회담을 부드럽게 이끌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솔직 소탈한 유머를 구사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겸손한 유머가 빛나는 분이었다.”
세계에서 통하는 우리만의 경쟁력이 있다면.
“동양인은 성품이 다정다감하고 친근하다. 여성은 체구가 아담하고 외모가 어려 보여 서양인들이 호감을 느낀다. 또 서양인들은 동양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 역사나 문화를 조금만 공부해도 금세 친해질 수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