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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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의 검은 영웅 흥행 KO 거둘까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입력2008-11-20 18: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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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버스의 검은 영웅 흥행 KO 거둘까

    바스키아의 1982년 작품 ‘무제(Boxer)’, 193×243cm, 리넨에 아크릴릭과 오일 페인트스틱. KO승을 거둔 무하마드 알리.

    역사적인 날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미국인들 덕분에 미 대통령 선거 다음 날인 2008년 11월5일자 일간지들이 나오자마자 가판대에서 사라진 것은 물론,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웃돈을 주고라도 그 날짜 신문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요.

    미국 역사상 가장 길고 치열한 당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이겼고, 제44대 미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대선 주자인 존 매케인의 2배가 넘는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압도적 승리를 거둔 버락 오바마. 그가 누구보다 주목받은 까닭은 232년 미국 역사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기 때문이라는 것,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죠?

    오바마가 각종 언론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동안 미술 관련 매체에는 그래피티, 일명 낙서화로 유명한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 ‘무제(Boxer)’가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바로 그의 작품이 크리스티 옥션하우스의 이브닝 세일에 나왔기 때문이죠. 경매가 열리기 몇 주 전부터 과연 새로운 세계 경매기록이 세워질지에 미술계 사람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었답니다.

    바스키아는 아이티와 푸에르토리코의 피를 물려받은 흑인으로, 17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의 화가로 활동하다 20세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그는 백인 아트딜러와 컬렉터 일색인 당시 미술계는 물론 현대미술에서 흑인을 묘사한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흑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본 적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세요. 잘 안 떠오르시죠?

    그는 1982년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 중 최고라고 꼽는 ‘무제’, 일명 ‘Boxer’라 불리는 작품을 발표합니다. 두 손을 번쩍 든 권투선수. 당시 바스키아 영감의 원천은 ‘갈색 폭격기’라는 별명을 가진 헤비급 챔피언 조 루이스였습니다.



    ‘갈색 폭격기’ 루이스 영웅으로 묘사한 ‘Boxer’ 경매에 관심 고조

    “조 루이스란 이름만 들어도 코피가 쏟아진다”고 영국의 헤비급 챔피언인 토미 파르가 말했듯, 당시 루이스는 27전승이라는 놀라운 기록, 그것도 23 KO승을 거둔 영웅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8년, 훗날 그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기게 되는 독일 슈멜링과의 경기를 앞두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루이스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식사하며 “당신의 두 팔에 미국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말했다고 하죠? 네, 그는 1회 2분4초 만에 승리의 두 팔을 번쩍 들게 됩니다. 언론들은 앞다퉈 나치에 대한 승리라고 보도했고요. 루이스뿐 아니라 당시 베트남전에 반대하며 스포츠 영웅이자 사회저항가로 활동했던 무하마드 알리도 바스키아에게는 영원히 작품으로 남겨야 할 전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단순히 영웅만을 표현한 것은 아닙니다. 바스키아는 미술사에서 오랫동안 누락된 흑인을 영웅으로 묘사했을 뿐 아니라, 노예로 실려오면서 두 팔을 위로 결박당한 채 채찍질을 당해야 했던 흑인의 비극적인 역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이 흑인 복서의 머리 주변에는 후광이 가시 면류관처럼 둘러져 있습니다. 거리에서 생활하며 백인들의 인종차별을 직접 체험했던 바스키아는 자신을 포함한 흑인을, 세계를 향해 어퍼컷을 날리는 전사로 표현하고자 했지만 작품에는 어쩔 수 없이 비애가 어려 있습니다.

    바스키아가 영웅으로 묘사한 조 루이스는 알코올 중독과 마약 복용으로 불우한 말년을 보냈고, 알려졌듯 알리도 파킨슨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바스키아 역시 1988년 27세라는 나이에 약물중독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가 말로를 비극적으로 보냈음에도 그의 작품은 오바마가 승리한 지 꼭 일주일 만에 1352만2500달러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앤디 워홀의 작품까지 유찰되는 상황에서 아주 선전한 셈이죠.

    눈썰미 있는 분들은 작품 속 복서의 왼쪽 팔 위에 KO라는 낙서를 찾아내실 수 있을 겁니다. 당시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던 흑인들이 대부분 스포츠 선수였다는 사실과 유일한 흑인 예술 스타였던 바스키아의 짧은 생애를 돌이켜보면 오바마의 손이 번쩍 치켜올라가기까지, 그가 KO승을 거두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흑인들이 인종차별이라는 사각의 링에서 다운당하고 패배했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예술은 모든 편견을 부수는 강펀치를 항상 품고 있습니다. 바스키아가 이미 오래전 이 작품에서 예견했듯 말입니다.

    미술 재테크

    전통 민예품과 도자기에 눈 돌려라


    불황에 빠진 요즘 아트마켓에 막연한 낙관론이 떠돌고 있다. 이러한 근거 없는 ‘설’들은 컬렉터를 혼란스럽게 한다. 컬렉터들이 아트마켓의 움직임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마켓의 움직임을 알고 있음직한 누군가의 의견이나 언론보도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빈약한 정보로는 투자를 결정하기 어렵고, 비효율적인 투자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캔버스의 검은 영웅 흥행 KO 거둘까

    청화백자 초화문호, 27.8×11.7×12.5cm, 18세기 말~19세기. 2006년 K옥션에서 예상가(1100만~1500만원)의 2배에 가까운 2500만원에 낙찰됐다.

    늘 거론돼온 얘기지만, 아트마켓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지나치게 주관적이거나 비논리적이고 불안전해 보인다. 그럼에도 미술작품에 대한 투자가 매력적인 것은 성공했을 때 예상치 못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적인 만족을 얻고 예술작품에 대한 안목을 기를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다. 더불어 안목의 고양이 경제적 이익을 부르는 밑바탕이 된다는 것 또한 미술투자만이 가진 매력일 것이다.현재 아트마켓은 멈춘 것처럼 보인다. 매매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컬렉팅은 일종의 강한 중독성이 있어 자꾸만 작품을 사고 싶게 한다. 그럼에도 작품 값이 더 내려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지 거듭 고민하게 된다. 환율이 요동치는 바람에 해외작품 구입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가격이 불안정하고 좋은 작품을 발견하기도 어려운 이때, 조금 취향을 넓혀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카테고리를 찾아보는 것도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컨템포러리 마켓이 급상승하기 직전에는 고미술 시장이 활기 있게 움직였다. 그중에서도 기대 이상의 가격 상승을 보여온 분야는 바로 민예품이었다. 예를 들면 목기, 비녀, 노리개 등과 같이 공급이 매우 부족한 전통 민예품이 그것이다. 덧붙여 절대적으로 저평가된 도자기를 바라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도자기는 세계 어디 것과 비교해도 뛰어나고 독창성이 빛나는 안정적인 예술품이다. 거품이 끼어 불안정해 보이는 작가의 작품에 손댈지 말지를 고민 중이라면, 전통 도자기와 민예품 연구에 시간을 투자해보자. 머지않아 다시 움직일 아트마켓에서 자기 색이 확실한 컬렉션을 만들어가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호숙 아트마켓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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