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자멸치국수’에서 걸어서 20분쯤 가면 해안가에 있는 해비치호텔이 나온다. 이 호텔에 자리 잡은 제주 최초 프렌치 레스토랑 ‘밀리우’는 박무현이라는 젊은 셰프 덕에 유명해졌다. 영국 ‘팻 덕(Fat Duck)’, 남아프리카공화국 ‘더 테스트 키친(The Test Kitchen)’ 같은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수석 부셰프까지 거친 실력파가 셰프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프렌치 요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한국, 미국, 영국, 호주, 남아공 요리를 두루 섭렵해 ‘모던 인터내셔널 퀴진’이라는 이름을 달고 영업 중이다. 제주의 풍부한 식재료가 그의 세련된 기술과 창조적인 레시피를 통해 재탄생하는 공간이다.
특히 ‘밀리우’는 푸드랩이라는 음식 실험실을 갖추고 있다. 제주산 고등어에 유자와 사과를 곁들여 제주 일출을 재현한 요리, 옥돔 하나만으로 만든 코스 요리 등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멋진 접시 위에 그림처럼 연출된다. 이맘때는 가을에 제맛을 내는 제주 잿방어나 돌문어가 주재료로 사용된다. 제주 고기국수나 흑돼지를 이용한 음식도 맛볼 수 있다.

통돼지를 썰어 채소와 함께 볶아 먹는 두루치기 문화는 제주 전 지역에 고르게 퍼져 있다. 두루치기와 함께 나오는 몸국은 모자반과 돼지 내장, 살코기를 넣어 끓인 것으로 제주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국이다. 현지인은 ‘가시식당’의 몸국을 보약 같다고 이야기한다. 진한 맛이 인상적이다. 몸국과 더불어 이 집을 유명하게 만든 또 다른 메뉴는 제주 재래 순대인 수에다. 돼지 피에 메밀과 멥쌀밥을 섞어 속을 만들다 보니 밀도가 높다. 당면 순대나 채소 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강한 식감이 난다. 냄새 때문에 제주에서도 어르신이나 먹을 수 있다는 게 조금 안타깝다. 1960년대 시작한 ‘가시식당’은 요즘 관광객이 제법 찾는다.
‘가시식당’ 주변에 있는 ‘나목도식당’도 유명하다. 이분도체 돼지를 사와 직접 해체한 뒤 요리해 파는 곳으로, 돼지갈비가 가장 인기 있지만 일찍 떨어진다는 게 흠이다. 이 집은 삼겹살을 둥글게 말아 썰어주는 것이 독특하다. 삼겹살이든 목살이든 제주 돼지의 특징인 강한 탄력의 식감을 맛볼 수 있다. 작은 면 단위인 표선면에 제법 맛이 좋은 식당이 모여 있는 게 바로 제주의 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