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바둑을 휩쓸며 독주할 때에도 조치훈 9단은 세계대회에서는 이상하리만치 힘을 못 썼다. 91년 후지쓰배에서 딱 한 번, 그것도 상대가 갑작스런 발병으로 기권하는 바람에 우승컵을 쥐었을 뿐 통 인연이 없었다. 이후 이창호, 조훈현 9단 등 한국 바둑의 위세에 눌려 우승권 언저리에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번엔 힘을 낼지….
원성진 5단은 85년생으로 최철한 5단, 박영훈 4단과 더불어 한국 바둑이 자랑하는 ‘송아지띠 3총사’로 올해 농심신라면배 국가대표권을 당당히 획득한 신예 유망주다. 에서 보듯 바둑사에 한 획을 그은 대선배를 만나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초반에 일찌감치 하변의 백대마를 잡아 단숨에 우세를 확립했다. 하변 백대마가 이대로 잡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흑은 이어지는 백의 강수를 약세를 의식한 승부수라 보고 부자 몸조심하는 격으로 쉽게 쉽게 물러서 주었다. 이미 대세는 결정된 상황이니까. 그러나 이는 엄청난 착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