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대선 때 부산 유세에 나선 노무현 후보.
부산은 사실상 신당의 승부처이기도 하다. 이해성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박재호 전 정무2비서관,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등 ‘청와대 3인방’을 급파한 것은 고질적인 동서 분열을 끝내고 이곳에 자신의 세력을 심으려는 노대통령의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 신·구파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청와대는 외곽 신당세력 중심의 개혁신당에 무게를 두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고 그 중심에 ‘부산’이 자리잡고 있다.
역대 선거 결과를 살펴보면 ‘부산은 하나의 지역구’다. 인물이 아닌 ‘당’에 투표했다는 방증이다. 부산 신당파들은 고착화된 이런 선거구도를 깨는 비책으로 인물론을 내세운다. 이른바 ‘노무현 드림팀’을 만들어 한나라당과 백병전을 벌이자는 계산이다. 지난해 대선 이후 이런 기운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게 현지에서 활동중인 노대통령 측근들의 판단이다. 그 신호탄인 이 전 수석과 박, 최 전 비서관 등의 출마 선언은 영남권의 총선 후보군을 중층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노무현 전사이자 드림팀의 일원인 이들의 1차 목표는 부산에서 ‘노풍(盧風)’을 재점화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박 전 비서관은 청와대 비서진들의 부산 선거 투입을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100인의 결사대에 비유했다. 그는 ‘3인방’의 출마에 대해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대통령이 믿을 수 있는 인사들이 먼저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조직특보였던 그는 부산과 경남 지역 30, 40대 조직을 묶어 ‘조직의 귀재’라는 평을 들은 바 있다. 그는 “지금은 다소 분위기가 침체됐지만 ‘부산이 노대통령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키겠느냐’는 논리로 치고 나가면 방법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3인방 급파 노대통령 의지 표현

조경태 위원장은 최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발탁됐다. 그는 8월 중순 청와대를 방문, 노대통령으로부터 “이제 가닥을 잡았으니 믿고 같이 가자”는 말을 들었다. 청와대를 나서는 그에게 노대통령은 “살아서 돌아오라”는 격려의 말을 던졌다고 한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그를 가리켜 “노대통령이 기대를 걸고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조위원장은 선거구도가 불리하다고 지역구를 옮기거나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옥새전략으로 이번 선거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내 어민들은 “당을 잘못 타 고생이 많다”며 그에게 ‘명예 어민증’을 수여, 주민 파고들기가 성공적임을 알게 해준다. 최근 ‘조경태를 사랑하는 모임’ ‘조경태를 사랑하는 교수모임’ 등을 잇따라 만들어 세 확산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월9일 부산 크라운호텔에서 열린 부산정치개혁추진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한 민주당 신기남 의원, 조성래 부산정개추 위원장, 정동영 의원(왼쪽부터).
이들의 선전이 부산 총선 기상도에 변화를 몰고 올 경우 노무현 드림팀의 또 다른 일원들이 합류할 수도 있다. 청와대 주변에선 부산인맥의 핵심인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과 이호철 민정1비서관에 대한 징발 가능성이 거론된다. 두 사람은 이제까지 여러 차례 “선거에 나설 뜻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산인맥 총동원’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여권 내부의 기류다. 여기에 조성래 신당연대 상임대표,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 이태일 전 동아대 총장 등 중량감 있는 인물들의 신당 참여와 부산 출마도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산의 노풍을 증폭시키기 위해 타 지역 현역들의 부산 출마도 검토 대상이다. 이미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영춘 통합연대 의원(서울 광진갑)의 경우 부산 신당파들로부터 “지역으로 내려오라”는 직·간접적 요청을 받고 있다. 노대통령이 출마했던 북·강서을 지역에서는 정동영 의원 출마설도 떠돌아다닌다. 정윤재 위원장은 “학자 변호사 등 전문가 그룹과 386, 그리고 정치원로와 관료 출신 등을 각 30%씩 배분, 최고의 드림팀을 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초보 인지도 낮아 지역 반응은 썰렁
그러나 현재 노대통령에 대한 부산 분위기는 생각보다 싸늘하다. 무엇보다 ‘호남이 민 영남후보’에 대해 명쾌한 입장정리를 못하고 있는 눈치다. ‘우리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의 집 식구도 아닌’ 어정쩡함이 부산민심의 중심을 관통한다. 노대통령 측근들이 ‘드림팀’이라고 규정했지만 실상 노무현 사단의 지명도와 인지도는 아직 초보 수준이다. 지명도가 낮은 이들에 대한 지역의 반응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이해성 전 수석에 대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동생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조경태 위원장은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특히 경제 문제가 노대통령에 대한 인식에 치명적 영향을 미쳤다는 게 현지에서 활동중인 인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윤재 위원장은 “이미 100점짜리 신당은 포기한 지 오래다”고 말했다.
‘낙하산식 공천’에 대한 혼란도 예상된다. 북·강서을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최도술 전 비서관의 경우 이런저런 얘기가 따라붙는다. 최 전 비서관은 “8월11일쯤 대통령이 불러 ‘당신이 내 지역구(북·강서을)를 오래 관리해왔으니 그쪽에서 출마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4월부터 이 지역구에서 ‘낙동강 포럼’을 만들어 활동중인 윤원호씨(민주당 부산시지부장)는 “나와 최 전 비서관이 경선을 치르는 경우는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4월 내가 사무실을 낼 때 청와대에서 노대통령이 ‘잘해보라’고 격려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청와대는 북·강서을에 2명의 전사를 내보낸 셈이다. 최 전 비서관의 불출마를 점치는 다른 배경도 거론된다. 지역구 사정에 정통한 최 전 비서관이 조직을 관리하다가 선거에 임박, 동서화합을 기치로 내건 정동영 의원에게 지역구를 물려줄 것이란 소문도 퍼지고 있다.
한나라당 권철현 부산시지부장은 “총선 때마다 새 얼굴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친노 인사들은 부산에서 별다른 호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직은’이란 단서를 달면서 “지금으로서는 신당바람이 위협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9월1일, 전국 16개 시·도지사회의 참석을 명분으로 취임 후 처음으로 정치적 고향인 부산을 방문했다. 노무현 드림팀은 이를 계기로 신당의 부산공략 작업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항도 부산은 과연 이들의 등장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