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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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파 6총사 “매운맛 보여주마”

시즌 개막 실력으로 유럽 평정 새 각오 … 월드컵 ‘한국 축구의 힘’ 그라운드서 입증

  • 아인트호벤·산 세바스티안 = 최원창/ 굿데이신문 특파원 gerrard@hot.co.kr

    입력2003-09-04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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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파 6총사 “매운맛 보여주마”
    ‘친구와 우상의 벽을 뛰어넘어라.’ 송종국(네덜란드 페예노르트) 이영표·박지성(네덜란드 PSV아인트호벤) 차두리(독일 프랑크푸르트) 이천수(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 설기현(벨기에 안더레흐트) 등 유럽파 6명에게 시즌 개막과 함께 내려진 지상명령이다.

    이들은 올 시즌 평소 절친한 동료와 선의의 경쟁을 벌이거나 자신의 우상을 넘어서야만 유럽 무대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 송종국은 일본 국가대표이자 팀 동료인 오노 신지와 좌우 미드필더로 한·일 간 자존심을 건 대결에 나선다. 박지성은 자신의 우상인 허정무의 아성에 도전하며, 차두리는 아버지 차범근이 일궜던 ‘차붐’을 재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최초의 프리메라리거로 스페인 땅을 밟은 이천수는 ‘아시아의 베컴’을 자청하며 세계적인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28·레알 마드리드)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1978년 차범근이 독일 분데스리가 다름슈타드에 진출한 이후 25년간 유럽 무대에 명함을 내민 한국 선수는 총 25명. 1년에 1명꼴로 유럽 무대에 진출했지만 차범근의 명성을 뛰어넘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렇기에 유럽파 6총사는 “더 이상 변죽만 울릴 수 없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천수는 “지난해 월드컵에서 보여준 한국 축구의 힘을 나를 포함해 유럽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이 고스란히 다시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성 vs 허정무

    ‘쪽빛보다 더 진한 쪽빛으로’



    박지성은 묘하게도 자신의 스승이자 우상인 허정무가 걸어온 길을 똑같이 걷고 있다. 허정무가 그랬듯 어린 나이에 태극마크를 달며 기량을 인정받더니, 허정무가 1980년 8월부터 83년 5월까지 소속 선수로 뛰며 77경기에 출장해 11골을 터뜨렸던 PSV아인트호벤에 둥지를 틀며 ‘닮은꼴 인생’을 살고 있다.

    허정무는 1999년 철저히 무명이던 박지성에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아준 스승이다. 당시 자그마한 체구의 박지성을 주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허정무는 박지성의 가능성을 믿고 지켜봐줬다. 박지성은 결국 허정무의 기대에 부응하며 히딩크로부터 오른쪽 윙포워드로 낙점받았고, 지난해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리며 한국을 16강으로 이끌었다.

    박지성이 아인트호벤에 입단하자 구단의 월간 소식지인 ‘인사이드’는 허정무와 박지성 특집 기사를 내보내며 박지성을 ‘제2의 허정무’로 표현했다.

    지난 시즌 박지성은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지만 올 시즌엔 공격라인의 주축으로 자리잡았다. 그동안 주로 맡아왔던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최전방 공격수나 오른쪽 윙포워드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박지성은 8월24일 빌렘II전에서 마침내 네덜란드리그 데뷔골을 터뜨렸다. 6대 1로 대승을 거둔 이날 경기에서 박지성은 케즈먼과 투톱으로 포진해, 롬메달과 케즈먼의 골을 어시스트한 후 마지막 6번째 골을 멋지게 성공시키며 월드컵의 영광을 재현했다.

    박지성은 “거친 축구판에서 살아남으려면 강철 체력을 유지하고 부상을 조심하라”는 허정무의 충고를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터뜨린 허정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월드컵 골맛을 본 박지성. 그의 가능성은 이미 스승을 넘어섰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 했던가.

    ‘헛다리짚기를 넘어서’

    이영표는 아르헨티나의 ‘축구신동’ 마라도나를 닮고 싶어 축구를 시작했다. 그는 어릴 시절 마라도나의 신기에 가까운 드리블을 따라하며 꿈을 키웠다. 이영표가 안양공고 3학년 때인 1995년 아르헨티나의 명문 보카 주니어스 소속으로 잠실주경기장을 찾은 마라도나에게 사인을 받으며 “마라도나 같은 멋진 드리블로 세계를 평정하겠다”고 다짐했다는 일화는 축구팬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청소년대표 시절 이영표가 꿈에 그리던 팀은 마라도나가 한때 활약했던 이탈리아의 나폴리다. 이영표는 나폴리의 흰색과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자신을 머릿속에 그리며 드리블 훈련에 몰두했고, 그때 현재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헛다리짚기 드리블’이 탄생했다. 하지만 ‘헛다리짚기 드리블’이 처음부터 각광받은 것은 아니다. 비효율적인 움직임으로 패스 타이밍을 놓치기 쉽고, 오히려 상대편에게 수비라인을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지적도 많았다. 돌파와 크로스 성공률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됐다.

    하지만 이영표의 움직임은 점차 세련되어가고 있다. 한 경기에서 몇 차례씩 펼쳐 보이는 헛다리짚기 드리블은 네덜란드 선수들에게 통하고 있다. 이영표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 잉글랜드전에서 혼자 40m를 드리블하며 3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골을 터뜨렸던 마라도나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깔끔하고 위력적인 새로운 드리블을 개발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송종국 vs 오노 신지

    ‘빅리그는 내가 먼저’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은 송종국이 올 시즌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공격력 배가’. 지난 시즌 송종국은 오른쪽 날개와 풀백, 왼쪽 풀백, 중앙 미드필더와 중앙수비수 5개 포지션을 소화했다. 하지만 오른쪽 날개를 맡았던 에머튼과 칼루가 모두 이적하는 바람에 올 시즌부터는 오른쪽 날개로 출전하는 날이 많아질 전망이다.

    송종국이 오른쪽 날개를 맡게 되면 왼쪽 날개인 오노 신지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송종국보다 1년 먼저 페예노르트에 입단한 오노 신지는 두 시즌 동안 59경기에서 10골을 터뜨리며 부동의 왼쪽 날개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영원한 앙숙’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송종국과 오노 신지는 선의의 경쟁을 피할 수 없다. 해묵은 한·일 간 감정을 뒤로 하더라도 두 선수 모두 빅리그 진출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1골3도움을 기록한 송종국으로서는 올 시즌 좀더 많은 공격포인트를 올려야 오노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들은 무명 시절부터 각별한 인연이 있다. 1998년 12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대회 당시 두 차례의 한·일전에서 송종국이 오노를 전담마크했던 것. 당시 한국은 두 경기 모두 승리로 이끌며 우승을 거뒀지만, 이 대회를 통해 스타로 떠오른 것은 오히려 오노였다. 송종국은 지난해 한·일 월드컵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히딩크의 황태자’로 떠오르며 유럽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들은 지난해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해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줬을 만큼 돈독한 사이다.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경쟁의식이 자리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페예노르트의 좌우 측면을 책임진 이들이 리그가 끝나는 2004년 5월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에 축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아시아를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페예노르트 구단으로서도 아시아 시장에서 부가수입을 올리려면 이들의 활약이 필수적이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겠다’

    차두리에게 아버지 차범근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가장 부담스러운 존재다. 차두리는 자신의 이름 석 자에 항상 따라붙는 ‘차범근 아들’이란 수식어를 떼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 빌레펠트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젊은 시절 아버지가 선수로 뛰었던 프랑크푸르트로 옮긴 차두리는 ‘순둥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차두리는 ‘차붐 주니어’라는 자신의 닉네임을 떨쳐버리기 위해 새로운 별명 ‘아우토반’을 독일 언론을 통해 홍보하고 나섰다.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리는 자동차처럼 빠른 돌파력을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독일의 축구전문지 ‘키커’는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프랑크푸르트의 젊은 유망주 차두리가 폭풍을 몰고 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빌리 라이만 감독 역시 차두리를 부동의 투톱으로 기용하며 신뢰감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차두리가 독일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아버지의 명성에 힘입은 바 크다. 지난해 입단한 레버쿠젠과 올 시즌 적을 둔 프랑크푸르트 모두 차범근이 소속했던 팀이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키커’의 볼프강 토빈 기자는 “25년 전 프랑크푸르트의 코치였던 디터 슐데가 차범근을 분데스리가에 진출시켰듯이 차범근은 자신의 아들을 독일 무대로 이끌었다”고 전했다. 독일 언론 역시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차범근은 1980년대 분데스리가에서 308경기에 출전, 98골을 터뜨리며 지난 5월 ‘키커’가 선정한 분데스리가 40년을 빛낸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 9위에 올랐다. 독일 무대에서 성공하려면 차두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아버지의 후광을 벗고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가 아니라 ‘차두리의 아버지 차범근’이라는 말이 나오게 해야 하는 것이다.

    차두리가 아버지의 후광을 넘어설 수 있을까. 독일 언론은 ‘아직은 미지수’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이천수 vs 데이비드 베컴

    ‘내 오른발은 베컴’

    왜 하필 베컴인가. 이천수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가장 경쟁하고 싶은 스타로 베컴을 꼽자 국내팬들은 “역시 당차다” 혹은 “역시 건방지다”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천수 본인은 건방지다는 지적에 대해 사대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베컴이 자신보다 세계적인 명성이나 기량 면에서 월등한 것이 사실이지만 자신과 베컴 모두 스페인리그 새내기인 만큼 누가 먼저 적응하고 성공가도를 달릴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이천수의 생각이다.

    이천수가 베컴에 대해 경쟁심을 보이기 시작한 데는 묘한 인연이 있다. 지난해 5월21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잉글랜드의 평가전에서 이천수는 경기를 마친 후 벤치에 앉아 있던 베컴에게 달려가 유니폼을 바꿔 입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베컴은 이천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돌아서 벤치로 향했고 그때부터 베컴은 ‘당돌한 아이’ 이천수의 경쟁자가 됐다.

    이천수가 레알 소시에다드 정식 입단식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깨겠다”고 밝힌 것도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베컴의 전 소속팀과 현 소속팀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이천수는 평소 자신의 휴대전화 초기화면에 ‘아시아의 베컴’이라고 써놓는가 하면 “제 오른발은 베컴이죠”를 연발하며 베컴에 대한 경쟁심을 드러내왔다. 또 지난 5월 대표팀 소집 때는 베컴이 2002년 월드컵 때 유행시킨 닭벼슬 모양의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타나 관심을 모았다. 이천수의 베컴에 대한 경쟁심을 눈치챈 ‘마르카’ 등 스페인 언론들도 이천수를 ‘아시아의 베컴’이라고 표현하며 이들의 맞대결을 은근히 즐기는 눈치다.

    이천수는 8월21일 스웨덴 말뫼와의 평가전에서 1골1도움의 성적을 올린 데 이어 이탈리아의 명문 인터 밀란과의 경기에서도 인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스페인 성공기’의 서막을 쓰기 시작했다. 8월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FC 도쿄전에서 데뷔골을 넣은 베컴과 비슷한 행로를 걷고 있는 셈이다.

    이천수가 베컴을 경쟁자로 삼은 것은 치기 어린 라이벌 의식 때문이 아니라 자신도 세계적인 스타 대열에 올라서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베컴을 빌려 표현하는 것이다. 이천수는 올 시즌 스페인리그에서 10골 이상 성공시킨다, 챔피언스리그에서 골을 터뜨린다, ‘올해의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한다는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이천수는 2004년 1월15일 레알 마드리드와의 홈경기에서 베컴과 첫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 지난해 22골을 기록한 ‘이천수의 경쟁자’ 니하트(24)가 지난 시즌 레알 마드리드와의 홈경기에서 2골을 터뜨리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듯이 이천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베컴이 속한 레알 마드리드라는 거함을 침몰시켜야 한다. 자신감 넘치는 이천수가 과연 베컴과의 맞대결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에 벌써부터 축구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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