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방송3사의 봄 개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스타는 바로 서세원이다. 기존의 KBS 2TV ‘서세원쇼’와 SBS TV ‘좋은 세상 만들기’, 신설된 KBS 2TV ‘야(夜)!한 밤에’를 비롯해 코너가 완전히 교체되는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웬만한 오락 프로그램은 모두 그가 진행을 맡게 됐다. 서세원이 방송가를 ‘점령’한 셈이다.
사실 서세원의 출연을 놓고 KBS와 MBC는 많은 신경전을 벌였다. 일요일에 방송되는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KBS 2TV ‘야(夜)한 밤에’의 방송 시간대는 겨우 두 시간 차이에 불과해 시청자를 혼란에 빠뜨릴 정도. 하지만 KBS는 경쟁사 프로그램의 편성 시간대가 비슷할 경우 진행자를 교체하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방송 시간을 바꾸는 특이한 수순을 거쳤다. 결과만 놓고 볼 때 방송사가 서세원의 위세에 꼬리를 내린 꼴이 되고 말았다.
서세원의 겹치기 출연을 놓고 방송가에서는 비난 여론이 만만치 않다. 시청자를 우롱하는 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서세원의 재능을 놓고 볼 때, 이런 논란은 무의미하다. 그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MC로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서세원의 겹치기 출연은 방송가의 MC 기근 현상과 직결돼 있다. 현재 방송가에는 출연자들의 감춰진 재능을 이끌어내고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진행해 나갈 인물이 턱없이 부족하다. 서세원만한 진행자가 없다는 말이다. 이처럼 방송가가 인물 기근을 겪는 이유는 시청률로 프로그램의 성패를 따지는 방송사의 고질적인 관행 때문이기도 하다. 방송 제작 경력 10년이 넘는 중견 PD들은 “도무지 일선 PD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캐스팅하려 애쓰는 서세원의 인기 비결은 과연 뭘까. 서세원 자신은 “시청자를 향한 철저한 ‘아부 정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도 채널 선택권이라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쥐고 있는 시청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 외면받게 된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들의 변화하는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않으면 인기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말이다.
그는 방송준비를 누구보다 철저히 한다. 신문 잡지 소설 등 활자매체를 빠짐없이 파악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책 2, 3권을 읽는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세원은 방송사의 구내 서점에 외상 장부를 만들어 놓고 책을 가져다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다. 여기에 각 세대별 유행을 발빠르게 분석하는 능력이 보태져 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영역을 개척한다.
인기에 맛들인 반짝 스타처럼 프로그램의 중심에 서려 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장수비결이다. 튀지 않게 주목받는 법을 터득했다고 할까. 그는 남들보다 잘난 모습을 보이거나 가르치려고 들면 곧바로 돌아앉아 버리는 시청자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천부적 재능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나보다 더 웃긴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서세원은 지난 79년 당시 TBC 라디오 개그맨 콘테스트에서 5위로 입상, 가까스로 방송에 진출했다. 그 뒤 1년여를 별 하는 일 없이 지내고 80년 처음으로 TV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지금은 30, 40대의 아련한 추억 속에나 남아 있을 MBC TV ‘웃으면 복이 와요’가 그의 데뷔작. 타고난 운인지 아니면 숨겨진 재능을 십분 발휘해서인지 그는 바로,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최고 인기를 끌었던 ‘영11’ MC로 발탁되는 행운을 안았다. 그리고 재치있는 입담을 과시함으로써 방송가의 화제로 떠올랐다.
서세원은 당시를 회상할 때 “내가 무대로 나설 때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너무 요란해 뒤를 돌아보곤 했다”고 자주 말한다. ‘도대체 누가 나왔기에 이렇게도 반긴단 말인가’고 생각했다는 것. 그 환호성은 바로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스타가 되어 있었다던 누군가의 말처럼 자신도 깨닫지 못한 사이 그는 스타덤에 올랐다. 보통 개그맨이 방송에 진출하는 경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방송사의 공개 테스트를 거친 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경우고, 또 하나는 대학가 혹은 일반 무대에서 유명해진 뒤 스카우트되는 경우다.
하지만 서세원은 약간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개그맨으로 정식 데뷔하기 전인 78년 경기대 국문과 재학시절 박철수감독의 ‘머저리들의 긴 겨울’이란 영화를 통해 처음 대중에게 얼굴을 공개했다. 이후 끊임없는 노력과 준비로 방송 진출을 모색했다. 아무리 바빠도 고전과 현대소설을 한 달에 세 권 이상 읽었고 주 1회 이상 변두리 삼류 극장을 찾아다니며 영화에 탐닉하기도 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위한 철저한 대비였다.
인기 연예인들에겐 종종 그가 거친 직업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서세원 역시 예외는 아니다. 룸살롱 웨이터, 방범대원, 택시 운전기사 등 지금 그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다양한 직업 세계를 경험했다. 개그맨의 가장 큰 자산이 아이디어라고 할 때, 서세원은 여러 경험을 통해 아이디어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고 볼 수 있다.
서세원은 가장 긴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개그맨이다. 80년대 중반 영화 ‘납자루떼’ 제작을 위해 2년간 방송을 쉬었을 뿐, 줄곧 방송 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언제나 알게 모르게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역할을 맡아왔다.
‘서세팔’ ‘서세필리우스’ 등의 별명을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었고, ‘영숙아 숙제했니’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 등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정작 이런 별명과 유행어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유행어의 좋은 반응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구사하는 기술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 대신 예측 불가능한 패러디와 재치있는 말로 자신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서세원은 이제 600억의 사나이로 불린다. 서세원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광고는 100% 가까이 팔린다. 방송사들이 최고의 출연료를 보장하며 그를 스카우트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80년 데뷔 초기 서세원은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엎어지고 자빠지는 우스꽝스런 동작이나 의미 없는 말의 나열로 웃음을 사려는 것은 남을 우롱하는 짓입니다. 개그는 이와 달리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 토크쇼 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들으면 흔한 말이다. 이제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토크 코미디의 차원 따지기가 의미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 서세원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새까만 후배가 선배들을 싸잡아 비난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한 비난을 딛고 일어서 20년쯤 지난 시점에 그는 꿈을 이뤘다. 그의 꿈을 이루게 해준 이는 바로 시청자들이다. 그리고 그같은 일은 서세원이 시청자들에게 철저히 ‘아부’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서세원의 출연을 놓고 KBS와 MBC는 많은 신경전을 벌였다. 일요일에 방송되는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KBS 2TV ‘야(夜)한 밤에’의 방송 시간대는 겨우 두 시간 차이에 불과해 시청자를 혼란에 빠뜨릴 정도. 하지만 KBS는 경쟁사 프로그램의 편성 시간대가 비슷할 경우 진행자를 교체하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방송 시간을 바꾸는 특이한 수순을 거쳤다. 결과만 놓고 볼 때 방송사가 서세원의 위세에 꼬리를 내린 꼴이 되고 말았다.
서세원의 겹치기 출연을 놓고 방송가에서는 비난 여론이 만만치 않다. 시청자를 우롱하는 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서세원의 재능을 놓고 볼 때, 이런 논란은 무의미하다. 그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MC로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서세원의 겹치기 출연은 방송가의 MC 기근 현상과 직결돼 있다. 현재 방송가에는 출연자들의 감춰진 재능을 이끌어내고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진행해 나갈 인물이 턱없이 부족하다. 서세원만한 진행자가 없다는 말이다. 이처럼 방송가가 인물 기근을 겪는 이유는 시청률로 프로그램의 성패를 따지는 방송사의 고질적인 관행 때문이기도 하다. 방송 제작 경력 10년이 넘는 중견 PD들은 “도무지 일선 PD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캐스팅하려 애쓰는 서세원의 인기 비결은 과연 뭘까. 서세원 자신은 “시청자를 향한 철저한 ‘아부 정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도 채널 선택권이라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쥐고 있는 시청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 외면받게 된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들의 변화하는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않으면 인기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말이다.
그는 방송준비를 누구보다 철저히 한다. 신문 잡지 소설 등 활자매체를 빠짐없이 파악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책 2, 3권을 읽는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세원은 방송사의 구내 서점에 외상 장부를 만들어 놓고 책을 가져다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다. 여기에 각 세대별 유행을 발빠르게 분석하는 능력이 보태져 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영역을 개척한다.
인기에 맛들인 반짝 스타처럼 프로그램의 중심에 서려 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장수비결이다. 튀지 않게 주목받는 법을 터득했다고 할까. 그는 남들보다 잘난 모습을 보이거나 가르치려고 들면 곧바로 돌아앉아 버리는 시청자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천부적 재능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나보다 더 웃긴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서세원은 지난 79년 당시 TBC 라디오 개그맨 콘테스트에서 5위로 입상, 가까스로 방송에 진출했다. 그 뒤 1년여를 별 하는 일 없이 지내고 80년 처음으로 TV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지금은 30, 40대의 아련한 추억 속에나 남아 있을 MBC TV ‘웃으면 복이 와요’가 그의 데뷔작. 타고난 운인지 아니면 숨겨진 재능을 십분 발휘해서인지 그는 바로,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최고 인기를 끌었던 ‘영11’ MC로 발탁되는 행운을 안았다. 그리고 재치있는 입담을 과시함으로써 방송가의 화제로 떠올랐다.
서세원은 당시를 회상할 때 “내가 무대로 나설 때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너무 요란해 뒤를 돌아보곤 했다”고 자주 말한다. ‘도대체 누가 나왔기에 이렇게도 반긴단 말인가’고 생각했다는 것. 그 환호성은 바로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스타가 되어 있었다던 누군가의 말처럼 자신도 깨닫지 못한 사이 그는 스타덤에 올랐다. 보통 개그맨이 방송에 진출하는 경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방송사의 공개 테스트를 거친 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경우고, 또 하나는 대학가 혹은 일반 무대에서 유명해진 뒤 스카우트되는 경우다.
하지만 서세원은 약간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개그맨으로 정식 데뷔하기 전인 78년 경기대 국문과 재학시절 박철수감독의 ‘머저리들의 긴 겨울’이란 영화를 통해 처음 대중에게 얼굴을 공개했다. 이후 끊임없는 노력과 준비로 방송 진출을 모색했다. 아무리 바빠도 고전과 현대소설을 한 달에 세 권 이상 읽었고 주 1회 이상 변두리 삼류 극장을 찾아다니며 영화에 탐닉하기도 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위한 철저한 대비였다.
인기 연예인들에겐 종종 그가 거친 직업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서세원 역시 예외는 아니다. 룸살롱 웨이터, 방범대원, 택시 운전기사 등 지금 그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다양한 직업 세계를 경험했다. 개그맨의 가장 큰 자산이 아이디어라고 할 때, 서세원은 여러 경험을 통해 아이디어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고 볼 수 있다.
서세원은 가장 긴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개그맨이다. 80년대 중반 영화 ‘납자루떼’ 제작을 위해 2년간 방송을 쉬었을 뿐, 줄곧 방송 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언제나 알게 모르게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역할을 맡아왔다.
‘서세팔’ ‘서세필리우스’ 등의 별명을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었고, ‘영숙아 숙제했니’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 등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정작 이런 별명과 유행어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유행어의 좋은 반응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구사하는 기술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 대신 예측 불가능한 패러디와 재치있는 말로 자신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서세원은 이제 600억의 사나이로 불린다. 서세원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광고는 100% 가까이 팔린다. 방송사들이 최고의 출연료를 보장하며 그를 스카우트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80년 데뷔 초기 서세원은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엎어지고 자빠지는 우스꽝스런 동작이나 의미 없는 말의 나열로 웃음을 사려는 것은 남을 우롱하는 짓입니다. 개그는 이와 달리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 토크쇼 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들으면 흔한 말이다. 이제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토크 코미디의 차원 따지기가 의미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 서세원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새까만 후배가 선배들을 싸잡아 비난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한 비난을 딛고 일어서 20년쯤 지난 시점에 그는 꿈을 이뤘다. 그의 꿈을 이루게 해준 이는 바로 시청자들이다. 그리고 그같은 일은 서세원이 시청자들에게 철저히 ‘아부’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