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지진은 판과 판이 만나는 경계에서 발생한다. 일본은 유라시아판, 필리핀판, 태평양판, 북미판 등 4개의 지각판 위에 자리해 지진 발생률이 높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 지헌철 책임연구원은 “과거 사례를 보면 일본이나 중국에서 큰 규모의 지진이 났을 때 1~2년 뒤 우리나라에도 지진이 나타났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우리나라에 발생할 지진 규모는 5 내지 6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지진 대책이 허술해 상당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일본 발생 후 5, 6 규모로 찾아와
이희일 지진연구센터장도 “동일본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이 우리나라 지진계에 잡힌 것을 보면 분명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일본이나 중국보다 확률은 낮지만 우리나라에도 응력(應力)이 많이 쌓인 곳이 있다면 중강(中强) 규모의 지진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1975년과 76년 중국 하이청(海城), 탕산(唐山) 지역에서 규모 7.3과 7.8의 지진이 발생한 지 2년 후인 1978년 우리나라 속리산과 충남 홍성에서 규모 5.2와 5.0의 지진이 일어났다. 또 1995년 일본 고베에서 규모 7.2의 강진이 나자 다음 해인 96년 강원 영월에서 규모 4.5, 97년 경북 경주에서 규모 4.2의 지진이 잇따라 발생했다. 2005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규모 7.0의 지진이 났을 때도 2년 뒤인 2007년 강원도 평창에서 규모 4.8의 지진이 기록됐다.
지 연구원은 다만 이번 대지진이 발생한 동일본 지역이 일본 동쪽 태평양판과 북미판이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길게는 5년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유라시아판과 북미판의 경계 또는 유라시아판과 필리핀판의 경계가 완충작용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판구조론에 따르면 일본은 유라시아판과 필리핀판, 태평양판, 북미판 등 모두 4개의 지각판 위에 있다. 지진은 주로 판과 판이 만나는 경계에서 발생한다. 서로 밀면서 생긴 응력이 일정 기간 쌓이다가 순간적으로 해소되면서 지각에 충격을 주는 것.
도쿄를 기점으로 가장 동쪽에 있는 것이 북미판이 태평양판과 만나는 경계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이 바로 이 지역에서 발생했다. 또 도쿄에서 서남쪽으로 유라시아판과 필리핀판 경계가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유라시아판과 북미판 경계, 동남쪽으론 북미판과 필리핀판의 경계가 맞닿아 있다. 지 연구원의 주장은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을 이들 판 경계에서 일정 기간 지연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판 경계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는 점이다. 가장 위험한 곳이 도쿄 서남쪽 ‘동해(도카이)’ 지역이다. 유라시아판과 필리핀판에 북미판까지 만나는 경계다. 일본 정부와 지진학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규모 8.0 이상의 대지진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다.
지진공백대가 지진이 날 확률이 높은 곳
근거는 지진 주기다. 도카이 지역은 1600년 이후 90~150년 간격으로 대지진이 일어났다. 가장 마지막으로 발생한 시점이 1854년이다. 그로부터 156년 지난 지금까지 조용하다. 응력의 크기는 기간에 비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응력은 커지고, 그만큼 지진 규모도 커진다. 일본 정부가 이곳을 예의주시하면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삼성화재 방재연구소 이호준 수석연구원은 “일본 정부 발표를 보면 동일본 대지진 피해 예상 규모가 사망자 9200명, 경제 피해 37조 엔에 이른다. 만약 도쿄 바로 아래서 규모 8.0 이상 (수도직하형) 지진이 일어난다면 그 피해 규모는 더욱 커져 사망자는 1만 명, 가옥 피해 85만여 동, 경제 손실은 112조 엔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으로 도카이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더욱 높아졌다.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홍태경 교수는 “이번 지진 규모가 워낙 커서 도카이 지역을 더욱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었을 위험이 있다”며 “대지진이 지금 당장 발생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임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 연구원도 “동일본 대지진이 틀림없이 어떤 형태로든 도카이 지역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가까운 시일 안에 발생하면 일본에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카이 대지진이 실제 일어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동남해(도낭카이)와 남해(낭카이) 등 유라시아판과 필리핀판 경계를 따라 형성된 활단층대에서 연쇄적으로 대규모 지진이 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지진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센터장은 “지진 빈발지역에서 오랫동안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 곳을 지진공백대라고 한다. 거꾸로 보면 그곳이 바로 지진이 날 확률이 높은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도카이를 포함해 도낭카이와 낭카이 등이 바로 지진공백대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후지산 폭발까지 이어지면 이른바 ‘일본 침몰’이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후지산은 대폭발이 일어난 지 300년이 지난 상태. 10여 년 전부터 산 밑에서 자주 발생하는 저주파 지진이 마그마 활동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 교수는 “동일본 대지진에 이어 도카이 대지진까지 나면 후지산 내부의 마그마 활동을 가속화할 위험이 높다”고 우려했다.
동일본 대지진과 달리 도카이-도낭카이-낭카이 지역은 모두 유라시아판과 맞닿아 있어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이다. 도쿄 수도직하형 지진과 후지산 폭발 등 일본 내륙에서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 발생할 경우에도 우리나라 지반 내부에 응축된 응력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본 서쪽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판과 북미판 경계 지역에서 대규모 지진이 날 위험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 지역은 수심이 얕고 지진 규모는 큰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이 지역에서 대규모 지진이 나면 우리나라 동해 쪽에 쓰나미(지진해일) 피해는 물론 1~2년 사이 한반도에도 지진이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도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대지진과 쓰나미에 원자력발전소 폭발까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일본. 그들의 불안한 미래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정부 관계자와 지진 전문가가 일본의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