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치는 리스트’, 요제프 단하우저, 1840년, 119×167cm, 독일 베를린 국립미술관.
마치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총집결 같은 이 그림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여기 등장한 인물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포즈를 취했을까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은 없다.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는 오스트리아 역사화가인 요제프 단하우저(1805~1845)가 1840년 피아노 제작자 콘라드 그라츠에게 의뢰받아 제작한 일종의 상상화다.
그라츠는 19세기 전반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제작자였다. 리스트와 프레데리크 쇼팽을 비롯해 당대 일류 피아니스트는 대부분 그가 만든 피아노를 사용했다. 그라츠는 이 같은 자신의 명성을 자랑하기 위한 그림을 단하우저에게 의뢰한 것이다.
단하우저는 오스트리아 출신인 만큼 여러 음악가의 초상을 그린 경력이 있었다. 그의 작품 가운데는 임종 직후의 베토벤 모습을 그린 스케치도 있다. 이런 경력 때문에 그라츠는 자신의 피아노와 예술가들을 돋보이게 할 작품의 화가로 단하우저를 점찍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는 영화도 TV도 없던 시대에 만들어진 최고급 광고 화보 같은 작품이다.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의 등장인물은 모두 그림 주문자인 그라츠가 정했다. 리스트는 이 그림이 그려지기 직전인 1838년과 1839년 연속으로 그라츠사가 있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주회를 열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때문에 그라츠는 당연히 당대 최고 피아니스트인 리스트를 메인 모델로 점찍었을 것이다. 위고, 상드, 뒤마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들 리스트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던 예술가들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림 속에 등장할 예술가를 지정하면서 그라츠는 당시 리스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쇼팽이나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쇼팽과 클라라 슈만 역시 그라츠의 피아노를 즐겨 사용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그라츠는 작품 안에 한 명의 피아니스트만 등장시키는 것이 자신의 피아노를 더 돋보이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림 속에서 피아노에 기대앉은 다구 백작 부인은 리스트를 만나기 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유명한 살롱을 운영하고 있었다. 1833년 리스트를 만난 그는 백작 부인이라는 지위와 파리 살롱을 모두 포기한 채 여섯 살 연하 리스트를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은 스위스에서 동거하며 세 명의 자녀를 낳는데, 이 중 둘째 딸 코지마 리스트는 훗날 어머니의 전철을 밟는다. 지휘자 한스 폰 뷜로와 결혼한 뒤 만난 작곡가 바그너를 따라 남편과 아이들을 뒤로한 채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것이다. 코지마는 스물일곱 되던 해 가정을 버리고 바그너를 따라 나섰는데, 어머니인 다구 백작 부인이 리스트와 함께 스위스로 도피했던 시기 역시 스물일곱일 때였으니, 우연치고는 참으로 기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