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해외 민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비슷한 견해가 나온 적은 있지만, 한반도 안보관리의 한 축인 유엔사 공식채널을 통해 이 같은 비판이 대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50년 유엔의 6·25전쟁 참전과 함께 구성된 유엔사는 78년 한국군과 주한미군에 대한 지휘권을 한미연합사령부에 이양한 후 정전협정 유지와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 재발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6·25전쟁 주요 참전국의 현역 고위장교들(주로 주한 대사관 무관부 대표)이 주축을 이루며, 매년 UFG를 비롯한 주요 군사훈련에 참여해왔다.
킬체인은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와 함께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제시해온 ‘맞춤형 억제전략’의 주요 수단 중 하나다. 인공위성과 정찰기를 통해 북한 장사정포나 미사일 등 대규모 군사도발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확인되면 F-15K 같은 항공전력이나 유도탄을 이용해 관련 시설을 일거에 파괴한다는 게 핵심 개념이다. 탐지→식별→결심→타격이라는 전 과정을 진행하는 데 총 30분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 군 당국이 설정한 작전 목표.
8월 18일 시작된 한미 연합군사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에 참여하는 세종대왕함(오른쪽)과 미 해군 7함대 지휘함인 블루리지가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 입항하고 있다.
선제공격 논란은 상대 포탄이 발사되기 전 ‘징후’를 근거로 공격한다는 점 때문에 생긴 것으로, 이를 의식해 킬체인이라는 용어가 처음 공론화된 2012년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공개 거론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조기 구축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현 정부의 대표적인 국방 목표로 자리매김했고, 9월 18일 발표된 2015년 예산안에서 관련 사업에 총 1조1809억 원이 책정되기도 했다.
이번 UFG는 맞춤형 억제전략을 시험 가동한다는 취지에서 킬체인 작전 개념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첫 번째 훈련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UFG는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전시 상황을 가정해 진행하는 일종의 워게임(War Game)으로, 북한의 주요 전쟁 도발 움직임을 사전에 설정하고 해당 상황이 현실화됐을 때 한미 정부와 연합군이 어떤 절차와 논의를 거쳐 대응 방안을 실행하는지 테스트하는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가운데 킬체인 가동 과정을 참관한 유엔사 측 관계자들이 우려를 제기한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먼저 군 당국이 설정해둔 북측의 도발징후 ‘문턱’이 낮다는 것. 한국군은 이를 △핵위협 단계 △사용 임박 단계 △사용 단계로 설정했지만, 각 단계를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단순한 으름장이나 위협으로 그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국군이 격파에 나선다면 오히려 전면전의 방아쇠를 당기는 구실을 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킬체인 개념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 걸프전 등에서 미군이 활용한 킬체인 개념은 전쟁이 개시된 이후 가동한 것이었던 데 비해, 한국군이 상정한 교리는 개전 선언 등 전쟁 시작 이전에 먼저 타격한다는 점에서 선제공격 시비를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이었다. 쉽게 말해 국제법적으로 볼 때 남측이 먼저 전쟁을 개시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고, 이 경우 유엔 차원의 지원이나 개입에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게 유엔사 측 견해였다는 것이다.
유엔사 측은 관련 훈련 진행이 마무리된 후 사후 평가 과정에서 이러한 의견을 한미 양측에 정식으로 제기했다고 복수의 관계자는 전했다. 특히 이 기구가 유사시 유엔 등 국제사회의 군사지원 절차를 담당할 공식채널이라는 점에서 안보당국이 느끼는 민감성은 한층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염려가 단순한 개념 문제에 그치지 않는 것은 이번 UFG 기간 미국 측이 보여준 태도 때문이다. 훈련 시나리오 초기 단계인 북측의 도발징후 확인 시점에서 한국 측이 데프콘(DEFCON) 격상과 미국 주요 전력의 조기 투입을 요청했으나 미국 측이 이를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의 도발을 억제하는 차원에서 항공전력과 타격전력을 빠른 시간 안에 한반도에 배치해야 한다는 우리 측 요청에 대해, 미국 측은 중국의 개입 우려와 전면전 확대 가능성을 지적하며 ‘공식 개전’ 이후 시점으로 전력 투입을 미뤘다는 것.
한반도 전면전 보는 시각 달라
일련의 정황은 전면전 상황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시각이 사뭇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측은 “국제법 때문에 미사일이 서울에 날아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지 않느냐”는 현실론을 내세우지만, 다른 나라들은 “섣부른 대응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할 수 있다”며 조기 개입을 꺼리는 경향을 고수하는 셈.
실제로 2010년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직후 한국 측은 항공전력을 동원한 보복 공격 계획을 미국 측에 제안했지만 미국 측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 국방부 장관은 1월 출간한 자서전에서 “한국의 보복 계획은 과도하게 공격적(disproportionately aggressive)이었다”며 “긴장 고조를 우려해 오바마 대통령 등이 한국 측 상대와 며칠간 통화하면서 논의했다”고 회고했다.
국회 등 일부 전문가 사이에선 최근 워싱턴이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연기 제의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 역시 이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의 도발징후를 검토해 군사 대응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말 그대로 전작권의 요체에 해당한다. 전면전 개전의 결정권을 한국군에 넘기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게 미국 측 시각인 셈이다.
분명한 것은 유엔사와 미국 측의 이러한 우려로 한국군이 제시해온 ‘맞춤형 억제전략’의 한 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킬체인 가동의 핵심 요건인 ‘도발징후 탐지’가 상당 부분 미국 군사위성 정보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도발과 대응에 대한) 시각 차이가 아예 킬체인 개념 자체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점증하는 외부 당사자들의 ‘염려’가 한국군의 미래 군사력 운용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