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하늘꿈학교에서 탈북청소년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인성 교육 위해 그룹홈 운영
3월 10일이면 개교 10주년을 맞는 하늘꿈학교. 통일부에서 인정하는 탈북자 대안학교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한 이 학교는 현재 30세 이하 탈북청소년 60명이 재학 중이다. 탈북청소년, 즉 북한에서 태어나 현재 한국에서 사는 만 6세 이상, 24세 이하 북한 이탈주민은 배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하늘꿈학교 학생은 수준에 따라 초등반, 중등반, 고등반으로 나눠 공부하고,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대입준비반에서 논술, 영어 등을 배운다. 그동안 입학생 340명 가운데 113명만 졸업했을 정도로 교육과정이 엄격하다.
10년 전만 해도 탈북청소년은 탈북자 정착지원 시설인 하나원에서 교육받고 그 즉시 사회로 들어갔다. 하지만 탈북청소년 90%가 무학자, 학교중퇴자이기 때문에 이들이 남한 사회에 수월하게 적응할 공산은 희박하다. 특히 북한을 벗어나 중국 같은 제3국에서 장기체류한 경우에는 더 그렇다.
임향자(57) 하늘꿈학교 교장이 탈북청소년만을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심한 이유도 그래서다. 선교사 교육을 담당하던 그는 고(故) 김동식 목사를 만나면서 탈북자에 관심이 생겼다(상자기사 참조). 그는 하나원에 찾아가 탈북자들의 1박2일 남한 가정 홈스테이와 여성 탈북자 생활교육을 제안했으며, 이를 진행하면서 ‘어른보다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탈북청소년 대안학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자 임 교장은 전에 없던 책임감이 생겼다고 한다. 매달 학교 운영자금 600만 원과 학생들이 머물 공간을 마련해준 이서 목사가 세상을 뜨고, 임 교장 자신에게 뇌종양이 생기면서 그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그때는 학교고 뭐고, 이제 죽겠구나 싶어 많이 울었어요. 하지만 정말 많은 분이 기도해준 덕에 종양 크기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고신대로부터 지원받아 아이들 6명과 교사 6명을 데리고 학교를 열었어요.”
시작은 그야말로 미약했다. 시설뿐 아니라 아이들 상태가 처절했다. 학생 30명 가운데 29명이 영양실조, B형 간염, 폐결핵 등을 앓았고, 기생충이 뇌에 침투한 아이도 있었다. 정신상태도 좋지 않았다. 가정과 사회에서 폭력을 경험한 아이는 타인에게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물론, 위협적 분위기를 조장하며 인간관계를 평등관계가 아닌 수직관계로 만들었다.
임향자 하늘꿈학교 교장이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사회 정착률에 교육 방점
지금도 하늘꿈학교 재학생 60명 가운데 80%는 그룹홈 생활을 한다. 그룹홈은 탈북청소년이 가정과 같은 주거 여건하에서 보호를 받으며 재사회화하는 시설. 각 그룹홈에는 생활지도 교사 1명과 또래 4~6명이 함께 산다. 여학생과 남학생을 위한 그룹홈이 각각 7곳, 4곳이고 그중 2곳은 하늘꿈학교를 졸업한 대학생들이 머문다. 그룹홈은 서울 광진구에 3개, 강남구에 1개, 송파구에 7개가 있으며 아이들은 책임의식과 절약정신을 기르는 차원에서 매달 관리비 5만 원(겨울)을 납부한다. 관리비는 아이들이 1시간 동안 샤워하고, 전등을 끄지 않은 채 집을 비우는 등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자 생활 교육 차원에서 부담하게 했다.
아이들은 대체로 그룹홈 생활에 만족하는 편이다. 기상시간이 오전 7시, 귀가시간이 오후 11시로 정해졌지만 분위기는 대체로 가정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 탈북자(21)는 “선생님과 같이 밥을 해먹고 나들이도 하니까 집에서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가 북한에 사는 이 탈북자는 “언젠가 사회로 나가겠지만 선생님과 제자 이상의 사이로 가까워지고 싶다. 엄마와 딸, 친언니와 동생 같은 사이로 발전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물론 그룹홈 시스템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이 탈북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를 여과 없이 노출하고, 북에 남은 가족에게 돈을 보내려면 교육을 중도에 포기해야 한다며 생활교사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생활교사가 이를 조율하지만 대부분 2년 반이 지나면 생활교사 스스로 견디다 못해 떠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3년 반 동안 생활교사 생활을 하는 임은정(33) 씨는 “업무 부담은 있지만 아이 절반이 부모 없이 살고 부모가 있다 해도 편부, 편모인 경우가 많다”면서 “아이들과 사랑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룹홈에서 배운 생활 태도 덕분일까. 하늘꿈학교 아이들 성적은 우수하다. 하늘꿈학교는 교육부 인가를 받지 않은 대안학교로, 학생들은 학력을 인정받으려면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학교 측은 검정고시란 유인책을 써야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한다고 판단해 인가를 받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검정고시 합격률뿐 아니라 상위권 대학 진학률도 높다.
문제는 ‘진학률’보다 ‘사회 정착률’이다. 실제로 많은 아이가 사회 정착에 실패했다. 1회 졸업생 6명 가운데 제대로 대학을 졸업한 아이는 1명에 불과하다. 그뿐 아니라 초기 졸업생 대다수가 미국, 캐나다 등으로 떠났다. 3~4년간 함께 살았던 선생님에게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떠난 것이다. 임 교장은 “탈북청소년의 남한 사회 정착을 돕겠다는 목표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하늘꿈학교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아이들이 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현실적인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 그 대학이 자신에게 적합한지 알아보는 테스트 기간을 거쳤다. 즉, 원하는 대학에 직접 가보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 맞는지, 자신이 할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과정을 마련했다. 또한 직업 인턴십 과정도 거치게 했다. 학생들은 한의사가 되고 싶다면 한의원, 간호가가 되고 싶다면 병원에 가서 일주일 동안 직업 체험을 한다.
자금 마련이 가장 큰 숙제
이와 더불어 ‘인내심’을 기르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졸업생 상당수는 자신이 사회초년병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탈북자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이라고 생각해 스스로 포기하곤 한다. 학교 측은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탓에 이런 생각을 한다”고 판단했고, 이를 보완하고자 학교 건물이 있는 상가 1층에 직업스쿨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제과제빵 과정, 커피바리스타 과정을 배울 뿐 아니라, 직장 생활도 경험할 수 있다. 한편 독서 플랜, 왜곡된 역사 바로 알리기, 미국인 40여 명과 남한 학생 150여 명이 함께하는 영어통일캠프 등을 통해 탈북자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도 마련했다.
학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대학 입시 진로상담 방향도 개선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가고자 하는 일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독려했다. 그러나 이제는 학교 이름값보다 취업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간호학과, 물리치료학과, 치위생학과 등 취업 가능성이 높은 학과에 보낸다. 이는 아이들의 의지, 신념, 꿈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현재 능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덕분이다.
이처럼 좋은 성과를 내지만 하늘꿈학교는 근근이 살아간다. 미국 국무성으로부터 일회성으로 2년간 23만 달러(2억4000만 원), 통일부로부터 매년 1억 원을 지원받지만 아이들을 무료로 교육시키고 무료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려면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현재는 교회, 개인 회원 등을 통해 충당하기 때문에 운영자는 늘 마음을 졸인다. 유난히 김치를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김치는 늘 부족하다. 임 교장은 “사람이 핵심”이라면서 “통일과 사회 안정을 위해서라도 탈북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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