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는 정말 꾸역꾸역 오래갔죠. 12월 개봉해 다음 해 4월까지 상영됐으니. 지난해 여름부터는 흥행 판이 많이 달라졌어요. 시장 크기가 커진다 커진다 했는데, 정말 많이 커졌죠. 주중, 주말 개념도 사라지고, 비수기와 성수기도 이제 의미 없어요. 내 주변에서 영화 뭐 봤다, 영화 뭐 보러 가자고 얘기하는 50~60대가 정말 많아요. 옛날에는 40대만 돼도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했는데, 가히 ‘중년 혁명’이라고 할 수 있죠.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도 많이 늘어났잖아요. 게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때문에 하루에도 입소문이 엄청나게 쏟아지고요. 흥행 조건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셈이죠.”
지난 10년간 멀티플렉스 증가
공식 ‘1000만 한국 영화’ 1호인 ‘실미도’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의 말이다. 2003년 12월 24일 개봉한 ‘실미도’가 다음 해 2월 19일 1000만 번째 관객을 맞은 지 9년, ‘실미도’ 개봉을 기준으로 삼으면 꼭 10년 만에 한국 영화는 관객 100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작품을 8편이나 보유하게 됐다. 더구나 지난 반년여 동안 3편이 잇달아 탄생했다. 강 감독은 “거의 한꺼번에 쏟아진 최근 ‘1000만 영화’ 3편은 과거와 많이 달라진 흥행 조건과 상업적 환경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 사이 한국 영화는 급변하는 사회상만큼이나 끊임없이 달라지는 흥행 흐름을 보였다. 산업적으로는 흥행 규모와 속도 증가가 가장 눈에 띄고, 작품 자체의 문화적 맥락에서는 역사에서 오락으로 변화 추세가 감지된다.
역대 1000만 영화 8편의 흥행일지를 나란히 놓고 봤을 때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갈수록 빨라진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실미도’가 개봉 후 1000만 번째 관객을 맞기까지는 58일이 걸렸다. ‘괴물’은 개봉 21일째 1000만 명을 넘었고, 지난해 ‘도둑들’은 22일을 기록했으며, ‘7번방의 선물’(‘7번방’)은 기록을 세우는 데 한 달여(32일)가 걸렸다. 지난 10년간 멀티플렉스 증가와 한국 극장영화 시장 증대가 1000만 영화의 흥행 속도를 높인 것으로 분석된다.
‘실미도’ 개봉 당시와 비교해 전국 상영관(스크린) 수는 1461개에서 2081개로 늘어났으며, 국민 1인당 연간 영화관람 횟수도 2.78회에서 3.83회로 증가했다. 여기에 더해 40대 이상 중년 관객 증가와 SNS를 통한 입소문이 흥행 속도를 높인 요인으로 꼽힌다. 결국 흥행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는 것은 한국 영화 시장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관객 동원이 개봉 규모와 마케팅 전략, 입소문에 좌우될 소지가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둑들’, 엄숙주의 종말 선언
흥행 트렌드에선 ‘역사’에서 ‘오락’으로, ‘현실’에서 ‘판타지’로 변화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그 기점으로 지난해 ‘도둑들’을 꼽을 수 있다. ‘도둑들’은 한국 영화의 전형적인 흥행 공식을 깼다. 순전히 영화적 쾌감과 오락적 가치에만 집중한 작품이 1000만 명을 넘은 것은 ‘도둑들’이 처음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흥행 불패 소재로 여기던 것이 ‘분단’이었으며,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1968년 창설한 실미도 북파부대(684부대)를 소재로 한 ‘실미도’는 한국 현대사의 금기 ‘봉인’을 뜯어낸 작품이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6·25전쟁 당시 남북한 군으로 운명이 엇갈린 비운의 형제 얘기를 담았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는 조선 연산군 시대 한 광대를 통해 권력과 민중 삶을 풍자했다는 점에서 사회성이 짙었다. ‘괴물’은 주한미군의 독극물 방사 사건을 소재로 한 괴수영화로, 극장 상영 당시 ‘반미주의’ 논쟁까지 일으킨 작품이었다. ‘해운대’는 기상 이변 때문에 일어난 쓰나미가 부산을 덮친다는 아이디어를 담은 재난영화였다.
그런데 ‘도둑들’은 다르다. 도둑들이 모여 서로 속고 속이며 ‘한탕’하는 이 영화에는 역사적 주제 의식도, 당면한 사회 이슈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도둑들’은 한국 영화계에서 ‘계몽주의’와 대중문화의 ‘엄숙주의’가 끝났음을 증명하는 작품이었고, 그런 점에선 싸이 ‘강남스타일’ 신드롬과 일맥상통한다. ‘7번방’ 역시 휴먼코미디라는 장르적 쾌감에 충실한 작품으로, 사회성이나 역사성을 특별히 내세운 작품이 아니다.
대형 흥행작에서 ‘판타지’ 성격도 점차 짙어지고 있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은 실화나 실제 역사에서 소재를 취했으나, ‘해운대’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광해’)로 갈수록 직접적인 현실 반영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광해’에서 역사는 배경일 뿐이며, 미국 영화 ‘데이브’와 일본 영화 ‘카게무샤’, 동화 ‘왕자와 거지’ 속 모티프를 활용해 기획한 작품이다. ‘7번방’ 역시 현실 반영보다 동화나 우화적 ‘판타지’ 성격이 강하다.
감독의 작가주의 지향보다 흥행을 위한 기획이 더 중요해졌다는 점 역시 변화된 흥행 경향으로 짚어볼 수 있다. 이른바 흥행 경향의 할리우드화다. ‘도둑들’은 할리우드 영화 ‘오션스 일레븐’처럼 당대 톱스타를 대거 동원해 흥행에 성공한 경우이고, ‘광해’는 아예 투자배급사인 CJ E·M이 시나리오를 개발한 뒤 외주제작사와 감독을 기용해 만든 기획 영화다.
규모보다 내용 자체가 흡인력
마지막으로 규모에서 내용으로의 중심 이동 또한 변화된 흥행 경향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 ‘7번방’은 관객 1000만 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휴먼코미디 영화이며, 총제작비가 역대 최소인 58억 원에 불과하다. 앞선 1000만 영화들은 액션, 전쟁, 괴수, 재난, 사극 등을 앞세운, 제작비 100억 원대 작품이 대부분이다. ‘스펙터클’과 ‘할리우드 이상의 규모’를 내세운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7번방’은 규모보다 내용 자체가 가진 흡인력이 흥행 동력이 됐다.
한국 영화가 기술 측면에서 대단한 성취를 이루고, 세계적으로도 높이 평가받는 마당에 과거처럼 ‘웰메이드 영화’임을 내세우거나 ‘할리우드 버금가는 스펙터클’만을 강조해서는 관객에게 호소력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지난 10년간 멀티플렉스 증가
공식 ‘1000만 한국 영화’ 1호인 ‘실미도’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의 말이다. 2003년 12월 24일 개봉한 ‘실미도’가 다음 해 2월 19일 1000만 번째 관객을 맞은 지 9년, ‘실미도’ 개봉을 기준으로 삼으면 꼭 10년 만에 한국 영화는 관객 100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작품을 8편이나 보유하게 됐다. 더구나 지난 반년여 동안 3편이 잇달아 탄생했다. 강 감독은 “거의 한꺼번에 쏟아진 최근 ‘1000만 영화’ 3편은 과거와 많이 달라진 흥행 조건과 상업적 환경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 사이 한국 영화는 급변하는 사회상만큼이나 끊임없이 달라지는 흥행 흐름을 보였다. 산업적으로는 흥행 규모와 속도 증가가 가장 눈에 띄고, 작품 자체의 문화적 맥락에서는 역사에서 오락으로 변화 추세가 감지된다.
역대 1000만 영화 8편의 흥행일지를 나란히 놓고 봤을 때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갈수록 빨라진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실미도’가 개봉 후 1000만 번째 관객을 맞기까지는 58일이 걸렸다. ‘괴물’은 개봉 21일째 1000만 명을 넘었고, 지난해 ‘도둑들’은 22일을 기록했으며, ‘7번방의 선물’(‘7번방’)은 기록을 세우는 데 한 달여(32일)가 걸렸다. 지난 10년간 멀티플렉스 증가와 한국 극장영화 시장 증대가 1000만 영화의 흥행 속도를 높인 것으로 분석된다.
‘실미도’ 개봉 당시와 비교해 전국 상영관(스크린) 수는 1461개에서 2081개로 늘어났으며, 국민 1인당 연간 영화관람 횟수도 2.78회에서 3.83회로 증가했다. 여기에 더해 40대 이상 중년 관객 증가와 SNS를 통한 입소문이 흥행 속도를 높인 요인으로 꼽힌다. 결국 흥행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는 것은 한국 영화 시장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관객 동원이 개봉 규모와 마케팅 전략, 입소문에 좌우될 소지가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료 영화진흥위원회
흥행 트렌드에선 ‘역사’에서 ‘오락’으로, ‘현실’에서 ‘판타지’로 변화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그 기점으로 지난해 ‘도둑들’을 꼽을 수 있다. ‘도둑들’은 한국 영화의 전형적인 흥행 공식을 깼다. 순전히 영화적 쾌감과 오락적 가치에만 집중한 작품이 1000만 명을 넘은 것은 ‘도둑들’이 처음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흥행 불패 소재로 여기던 것이 ‘분단’이었으며,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1968년 창설한 실미도 북파부대(684부대)를 소재로 한 ‘실미도’는 한국 현대사의 금기 ‘봉인’을 뜯어낸 작품이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6·25전쟁 당시 남북한 군으로 운명이 엇갈린 비운의 형제 얘기를 담았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는 조선 연산군 시대 한 광대를 통해 권력과 민중 삶을 풍자했다는 점에서 사회성이 짙었다. ‘괴물’은 주한미군의 독극물 방사 사건을 소재로 한 괴수영화로, 극장 상영 당시 ‘반미주의’ 논쟁까지 일으킨 작품이었다. ‘해운대’는 기상 이변 때문에 일어난 쓰나미가 부산을 덮친다는 아이디어를 담은 재난영화였다.
그런데 ‘도둑들’은 다르다. 도둑들이 모여 서로 속고 속이며 ‘한탕’하는 이 영화에는 역사적 주제 의식도, 당면한 사회 이슈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도둑들’은 한국 영화계에서 ‘계몽주의’와 대중문화의 ‘엄숙주의’가 끝났음을 증명하는 작품이었고, 그런 점에선 싸이 ‘강남스타일’ 신드롬과 일맥상통한다. ‘7번방’ 역시 휴먼코미디라는 장르적 쾌감에 충실한 작품으로, 사회성이나 역사성을 특별히 내세운 작품이 아니다.
대형 흥행작에서 ‘판타지’ 성격도 점차 짙어지고 있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은 실화나 실제 역사에서 소재를 취했으나, ‘해운대’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광해’)로 갈수록 직접적인 현실 반영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광해’에서 역사는 배경일 뿐이며, 미국 영화 ‘데이브’와 일본 영화 ‘카게무샤’, 동화 ‘왕자와 거지’ 속 모티프를 활용해 기획한 작품이다. ‘7번방’ 역시 현실 반영보다 동화나 우화적 ‘판타지’ 성격이 강하다.
감독의 작가주의 지향보다 흥행을 위한 기획이 더 중요해졌다는 점 역시 변화된 흥행 경향으로 짚어볼 수 있다. 이른바 흥행 경향의 할리우드화다. ‘도둑들’은 할리우드 영화 ‘오션스 일레븐’처럼 당대 톱스타를 대거 동원해 흥행에 성공한 경우이고, ‘광해’는 아예 투자배급사인 CJ E·M이 시나리오를 개발한 뒤 외주제작사와 감독을 기용해 만든 기획 영화다.
규모보다 내용 자체가 흡인력
마지막으로 규모에서 내용으로의 중심 이동 또한 변화된 흥행 경향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 ‘7번방’은 관객 1000만 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휴먼코미디 영화이며, 총제작비가 역대 최소인 58억 원에 불과하다. 앞선 1000만 영화들은 액션, 전쟁, 괴수, 재난, 사극 등을 앞세운, 제작비 100억 원대 작품이 대부분이다. ‘스펙터클’과 ‘할리우드 이상의 규모’를 내세운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7번방’은 규모보다 내용 자체가 가진 흡인력이 흥행 동력이 됐다.
한국 영화가 기술 측면에서 대단한 성취를 이루고, 세계적으로도 높이 평가받는 마당에 과거처럼 ‘웰메이드 영화’임을 내세우거나 ‘할리우드 버금가는 스펙터클’만을 강조해서는 관객에게 호소력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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