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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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곡 느낌은 살리고 창작 감정 키우고

‘리메이크 전성시대’

  • 정바비 bobbychung.com

    입력2011-11-14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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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곡 느낌은 살리고 창작 감정 키우고

    밴드‘라이너스의 담요’.

    ‘바야흐로 리메이크 전성시대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음악 칼럼이라면 나부터도 하품하며 넘겼을 것이다. ‘올해는 정말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로 뻔한 말이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사에 리메이크가 뜸했던 시기가 과연 있기는 했을까. 안정적인 수익을 바라는 제작자와 자신의 음악적 영웅에 헌사를 보내고픈 아티스트의 욕구는 늘 존재했다. 심지어 지금보다 리메이크할 명곡 수가 훨씬 적었을 비틀스의 데뷔 무렵에도 이들이 오리지널 곡 위주로 채운 음반을 냈다는 것 자체가 이들의 머리 모양만큼이나 혁명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도 저 문장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심지어는 노래방 신곡 포스터에까지 리메이크 곡의 융단폭격이 가해지는 경우는 전무했기 때문이다.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여기서는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해보고 싶다. 뮤지션 처지에서는 사람들이 리메이크 버전의 새로운 편곡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고맙기 때문이다. 변수와 상수를 구분할 때 방정식의 답이 나오고, 변인을 통제할 때 신뢰할 만한 실험결과가 나오듯, 리메이크 곡이 원곡과 어떻게 달라졌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를 느끼는 순간, 음악 듣는 재미는 몇 갑절이 된다. 필자가 보기에 그 재미가 특히 컸던 리메이크 곡을 몇 개 소개할까 한다.

    원곡 느낌은 살리고 창작 감정 키우고

    밴드‘라이너스의 담요’.

    먼저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가 주톤스(Zutons)의 미드템포 파워팝을 청량감 있는 솔(soul) 소품으로 재해석한 ‘Valerie’를 추천한다. 이 노래는 처음 들으면 혹시 실수로 드럼트랙이 지워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썰렁한데, 바로 이 점이 리듬에 한없이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까랑까랑한 와인하우스의 목소리는 흡사 시원한 레몬꿀차에 살짝 가미한 생강 향처럼 오래오래 질리지 않는 특유의 풍미를 더한다. 그의 유작이 되고만 ‘Back To Black’의 디럭스 버전에 들어 있는 곡이다.

    대중적이면서도 한정된 청자에게만 알려진다는 점에서 컨트리 음악은 팝가수에게 리메이크의 젖줄과도 같은 장르다. 휘트니 휴스턴의 최고 히트곡 ‘I Will Always Love You’나 올포원(All For One)의 ‘I Swear’는 모두 컨트리 곡이었다. 록발라드를 컨트리 가수가 리메이크한 경우도 있다. 마크 체스넛(Mark Chesnutt)의 ‘I Don’t Wanna Miss a Thing’이 대표적인 예다. 원곡은 에어로스미스(Aerosmith)가 불렀는데, 재미있는 점은 이 곡을 쓴 사람이 에어로스미스가 아니라 발라드 전문 작곡가인 다이앤 워런이란 사실이다(그의 또 다른 고객으로는 셀린 디옹과 토니 브랙스톤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 경우에는 리메이크가 묘하게 더 원곡처럼 느껴지는 재미가 있다.

    원곡 느낌은 살리고 창작 감정 키우고
    얼마 전 이 지면에서 소개했던, 우리나라 밴드 ‘라이너스의 담요’의 ‘보라빛 향기’도 꼭 들어보기를 권한다. 이 곡의 특징은 보컬 없이 연주곡으로 리메이크했다는 점이다. 노래가 없어서 심심할 것 같다고? 당김음을 감칠맛 나게 활용한 리듬 섹션은 원곡의 전자 비트를 훌륭히 대체하고, 그 위에서 주거니 받거니 수놓은 클린 기타 톤과 플루트 연주는 아이돌 원조인 강수지의 강렬한 잔상을 완벽히 봉쇄한다. 남는 것은 원곡 작곡자 윤상이 빚어낸 아름다운 멜로디에 대한 경외감이다. 리메이크가 뮤지션의 태도와 음악관, 감정까지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멋지게 느껴진다.



    *정바비는 1995년 인디밴드 ‘언니네이발관’ 원년 멤버로 데뷔한 인디 뮤지션. ‘줄리아 하트’ ‘바비빌’ 등 밴드를 거쳐 2009년 ‘브로콜리 너마저’ 출신 계피와 함께 ‘가을방학’을 결성, 2010년 1집 ‘가을방학’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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