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라이너스의 담요’.
그런데도 저 문장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심지어는 노래방 신곡 포스터에까지 리메이크 곡의 융단폭격이 가해지는 경우는 전무했기 때문이다.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여기서는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해보고 싶다. 뮤지션 처지에서는 사람들이 리메이크 버전의 새로운 편곡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고맙기 때문이다. 변수와 상수를 구분할 때 방정식의 답이 나오고, 변인을 통제할 때 신뢰할 만한 실험결과가 나오듯, 리메이크 곡이 원곡과 어떻게 달라졌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를 느끼는 순간, 음악 듣는 재미는 몇 갑절이 된다. 필자가 보기에 그 재미가 특히 컸던 리메이크 곡을 몇 개 소개할까 한다.
밴드‘라이너스의 담요’.
대중적이면서도 한정된 청자에게만 알려진다는 점에서 컨트리 음악은 팝가수에게 리메이크의 젖줄과도 같은 장르다. 휘트니 휴스턴의 최고 히트곡 ‘I Will Always Love You’나 올포원(All For One)의 ‘I Swear’는 모두 컨트리 곡이었다. 록발라드를 컨트리 가수가 리메이크한 경우도 있다. 마크 체스넛(Mark Chesnutt)의 ‘I Don’t Wanna Miss a Thing’이 대표적인 예다. 원곡은 에어로스미스(Aerosmith)가 불렀는데, 재미있는 점은 이 곡을 쓴 사람이 에어로스미스가 아니라 발라드 전문 작곡가인 다이앤 워런이란 사실이다(그의 또 다른 고객으로는 셀린 디옹과 토니 브랙스톤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 경우에는 리메이크가 묘하게 더 원곡처럼 느껴지는 재미가 있다.
얼마 전 이 지면에서 소개했던, 우리나라 밴드 ‘라이너스의 담요’의 ‘보라빛 향기’도 꼭 들어보기를 권한다. 이 곡의 특징은 보컬 없이 연주곡으로 리메이크했다는 점이다. 노래가 없어서 심심할 것 같다고? 당김음을 감칠맛 나게 활용한 리듬 섹션은 원곡의 전자 비트를 훌륭히 대체하고, 그 위에서 주거니 받거니 수놓은 클린 기타 톤과 플루트 연주는 아이돌 원조인 강수지의 강렬한 잔상을 완벽히 봉쇄한다. 남는 것은 원곡 작곡자 윤상이 빚어낸 아름다운 멜로디에 대한 경외감이다. 리메이크가 뮤지션의 태도와 음악관, 감정까지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멋지게 느껴진다.
*정바비는 1995년 인디밴드 ‘언니네이발관’ 원년 멤버로 데뷔한 인디 뮤지션. ‘줄리아 하트’ ‘바비빌’ 등 밴드를 거쳐 2009년 ‘브로콜리 너마저’ 출신 계피와 함께 ‘가을방학’을 결성, 2010년 1집 ‘가을방학’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