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후발주자를 대등한 동반자로 인정하는 데 무척 인색한 편입니다. 내 자리가 좀 안정됐다 싶으면 이내 험난한 진입장벽을 쌓아올립니다. 옛 기방(妓房)이나 선비들의 모임에서 신입 멤버에게 혹독한 몬도가네식 린치를 가하던 신래참학(新來慘虐)의 관행이 그러했고, 요즘도 외국인이나 탈북자 같은 새내기 사회 구성원들을 진정한 동료의식으로 포용하는 데 익숙지 않습니다. 코흘리개 집단에서조차 전학생은 한동안 왕따 신세를 각오해야 합니다. 수월성 지상주의 사회에선 조금만 굼뜨고 뒤처지면 내실과 잠재력은 따져보지도 않은 채 내치기에 바쁩니다.
한 과학자가 닭의 품종개량을 위해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 개의 닭장에 같은 수의 닭들을 넣어 기르다 달걀 생산량이 가장 많은 닭장(A)을 골라냈습니다. 또한 각각의 닭장에서 알을 가장 많이 낳는 닭 한 마리씩을 골라 한 닭장(B)에 넣었습니다. 몇 달 뒤 두 닭장을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예상과 딴판. ‘올스타 팀’인 B닭장의 닭들은 3분의 2가 죽어나갔고, 남은 닭들도 서로 물고 뜯느라 상처투성이였다고 합니다. 알을 제대로 못 낳는 것은 불문가지. 그러나 A닭장의 닭들은 하나같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모습으로 여전히 많은 달걀을 낳고 있었습니다. B닭장의 닭들이 원래의 닭장에서 ‘톱’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다른 닭들의 복지와 생산성을 억눌러 자신의 생산성을 높인 결과였고, A닭장의 평범한 닭들은 줄곧 화합과 협조, 공생의 덕목을 실천했다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