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차를 바꿔? 몇 달만 기다리면 250만원까지 싸게 살 수 있다는데….”
인터넷으로 재빨리 뉴스를 검색한 김씨는 자신이 놀림당한 이유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3월26일 대통령 주재 ‘제13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가 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것.
그 내용은 개인과 법인이 2000년 1월1일 이전 등록된 차량을 5월1일부터 연말까지 새 차로 바꿀 경우 개별소비세, 취득세, 등록세 등을 합해 최고 70%까지 자동차 관련 세금을 감면한다는 것이었다. 김씨처럼 세금이 많이 붙는 대형 승용차를 살 경우 최고 250만원(국세 150만원, 지방세 100만원)까지 할인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 그는 신차 구매를 포기하고 5월 이후 상황을 봐서 다시 결정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도대체 뭘 어떻게 지원 … 헷갈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자동차회사 직영 매장 직원들은 그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일까. 당장 팔아먹고 싶은 마음에 직원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는 비로소 일요일이었음에도 자동차 판매장에 손님이라곤 자신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괘씸한 마음에 매장 직원에게 전화를 건 김씨는 오히려 황당한 말을 들었다.
“그거 확정된 것 아닌데요. 또 회사 차원에서 정확한 지침이 내려온 것도 없습니다. 기사 잘 뒤져보면 아시겠지만 지원 방안의 내용이 다 달라요. 노사관계가 좋아져야지만 (세금감면)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최종 결정이 아니라는 말도 있고…. 손님, 그러지 마시고 이번 기회에 그냥 구매하시죠.”
이건 또 무슨 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은 그는 좀더 자세히 기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에 대한 기사는 그야말로 중구난방이었다. 청와대는 지경부가 방안을 발표한 그날 오후 “지경부가 발표한 ‘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은 최종 결정 사안이 아니다. 지경부 발표 내용이 논의되긴 했으나, 구체적인 추진 방안은 추후 관계 부처에서 논의할 예정이며 향후 국회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지경부의 일방적 발표를 부인했다. 또 한쪽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날 회의석상에서 “정부 지원에 앞서 노사가 특단의 조치를 발표하는 게 좋겠다. (이번 방안을) 노사문화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즉, 세금감면의 전제조건으로 심각한 대립양상을 보이는 자동차 업계의 노사관계 개선을 든 것. 다음 날인 3월27일 지경부 이윤호 장관도 “세금감면안은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전제조건 하에 추진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김씨가 차를 구입하기로 한 4월5일 당일에도 청와대 관계자는 “현대자동차 노사가 최근 신기술 개발 투자와 생산라인의 전환배치 조치를 내놓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자동차 노조의 임금동결 선언이 안 된다면 최소 ‘무분규 선언’에 준하는 조치는 나와야 세금감면안이 가능하다. 만족할 만한 자구노력이 없으면 세제지원 시행시기를 늦출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헛갈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세금감면을 해준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강성으로 소문난 자동차 노조가 무분규 선언을 할 리도 없고, 그렇다면 세금감면이 언제 이뤄질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요?”
김씨는 계속 지켜보기로 결정했지만, 신규 판매 자동차의 세금감면안에 대한 지경부의 입장은 사흘 후 또 한 번 뒤집어졌다. 4월8일 지경부 임채민 1차관이 “언제 우리가 노사 선진화 조건을 (세금감면안과 관련해) 이야기했느냐. 전제조건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말 자체가 모호하다”고 밝힌 것. 대통령과 장관이 한 말을 모두 부인하고 신차 구입 시 세금감면안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 때문일까. 지금 자동차 판매장에는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 김씨처럼 정부의 세금감면안이 시작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구입 대기자들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자동차 매장 관계자는 “판매량이 전달에 비해 30%가량 줄었다. 처음엔 경기불황 탓인지 알았는데, 모두 세금감면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사람들이다. 특히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려는 사람 가운데 계약을 해놓고도 취소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회사가 왜 정부에 항의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고급승용차 계약 취소 사태 속출
정부의 신차 구매세금 감면 발표에 중고차 시장도 거래가 뚝 끊겼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는 정부의 어설픈 정책 발표에 대해 공식 항의는커녕 대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도와준다고 한 일을 나무랐다가는 어떤 화를 당할지 모르는 까닭이다. 한마디로, 찍힐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각 자동차 업체는 정책 발표 시점인 3월26일 이후의 자동차 판매 감소량 통계도 쉬쉬하며 내놓지 않고 있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현대기아자동차의 3월26일 이후 하루 평균 계약대수 통계치를 보면 현대차 2600대, 기아차 1800대로 올 1월 말과 대비해 현대차는 30%, 기아차는 무려 44%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동차 판매가 이렇듯 급감하자 현대기아자동차는 4월1일 중고차 보유고객에 대한 할인 폭을 크게 늘렸다. 현대차의 경우 4년 이상 보유고객에게 자동차 가격을 10만~30만원, 7년 이상 보유고객에게 20만~50만원을 할인해주고 있으며, 기아차는 6년 이상 보유고객을 대상으로 신차 종류에 따라 20만~50만원 할인행사에 들어갔다.
이렇듯 시장에 혼선이 가중되자 지경부는 4월12일 ‘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을 최종 발표했다. 내용은 3월26일과 별반 바뀐 게 없다. 하지만 쟁점이 됐던 자동차 업계 ‘노사선진화 전제조건’ 조항은 발표에서 쏙 빠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이 방안에 전제조건을 붙이고 나섰다. 4월13일 기획재정부 백운찬 재산소비세정책관은 “향후 자동차 업계의 노사관계 진전 내용 및 평가에 따라 세금감면의 조기 종료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 노조가 불법파업을 하거나 사측이 인력 감축 노력을 소홀히 하는 등 자동차산업 선진화의 저해요인이 발생할 경우 종료 시점 이전에 지원 중단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시행 시점도 지경부가 밝힌 5월1일이 아니라, 국회를 통과하면 이달 중에라도 시행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3월12일 최종안이 발표되자 자동차 업계는 더 큰 고민에 빠졌다. 정부가 세금을 감면하는 대신 자동차 업계의 자구노력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날 지경부 측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대 1로 약속을 한 건 아니지만 자동차 업계가 정부의 세금감면 폭에 부응해서 최대한 할인을 해주기로 했다. 추가적으로 할인 폭을 강화하는 패키지를 내놓을 거다. 그러면 세제 혜택 250만원에 더해 추가할인 폭이 250만원 혹은 그 이상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주간동아’의 확인 결과 지경부에 세금감면에 상응하는 추가할인에 대해 약속을 하거나 자료를 제출한 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정말 당황스럽다. 세금감면 발표로 4월 한 달 동안 추가할인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더 할인을 하라는 말은 적자를 보고 차를 팔라는 얘기”라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또 “정부에서 시키니 안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려니 엄청난 적자가 생기겠고, 현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5월1일 시행에도 많은 걸림돌
3월26일 자동차 업체를 방문해 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듣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이날 청와대는 신차에 대한 세금감면안을 발표했다 다시 취소했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위 소속 한나라당 관계자는 “다음 달 보궐선거가 있는 만큼 민주당도 이 법안에는 쉽게 합의할 것이다.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지만 4월 말까지 이번 국회를 끝낸다는 게 우리당의 방침인 만큼 처리를 서두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