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슈발 블랑 1999. 방문자를 위해 준비된 반 병짜리 와인.
슈발 블랑은 흰 말을 뜻한다. 슈발 블랑은 보르도의 가장 세련된 와인이란 평을 듣는 레드 와인이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시조 앙리 4세(재위 1589~1610)가 파리에서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말을 갈아타기 위해 이 근처에서 쉬어 갔다고 한다. 흰 말을 사랑한 앙리 4세를 기려 샤토 슈발 블랑이란 이름이 유래됐다는 전설이 있다.
보르도를 관통하는 지롱드 강 오른쪽에 자리한 생테밀리옹 마을은 메독과 더불어 프랑스 와인의 심장이다. 그중에서도 생테밀리옹 마을을 대표하는 와인의 양대 산맥은 샤토 슈발 블랑과 샤토 오존이다. 샤토 슈발 블랑은 샤토 피작 포도밭의 일부가 독립해 오늘날에 이르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샤토 오존보다 일천하다. 1854년이 원년인데 기존 특급 샤토에 비하면 아주 어린 샤토인 셈이다. 그러나 슈발 블랑은 한 집안에서 오랫동안 계속해서 경영하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슈발 블랑은 1862년 런던 품평회에서, 1878년 파리 품평회에서 각각 금상을 받으며 이름을 세간에 알렸다. 성주는 수상을 명예롭게 여겨 상으로 받은 금메달 문양을 라벨에 디자인했다. 이 라벨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한 집안서 장수 경영 … 각종 품평회서 명성 확인
포도밭은 유산으로 상속될 경우 쪼개지기 쉽다. 부르고뉴 포도밭에서는 늘 일어나는 일이다. 자기 이름으로 와인을 만들려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그러나 슈발 블랑은 그렇지 않았다. 슈발 블랑의 분열을 원치 않아 이를 법인으로 바꿔놓은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자크 에브라르다. 그는 슈발 블랑 집안의 사위로 들어와 1970년부터 실질적인 경영을 맡아온, 포도밭과 바다밖에 몰랐던 남자다.
에브라르의 할아버지는 리부르네 지역의 와인 브로커였고, 아버지는 해군 항공대 소속으로 해군 대장까지 지낸 바다의 사나이였다.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당시엔 위험한 일이던 대서양 횡단을 감행했고 프랑스 로컬 항공사 에어인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가 대서양을 횡단했을 당시의 비행기 모형은 지금도 샤토에 전시돼 있다. 하지만 샤토는 1998년 주인이 바뀌어 지금은 루이비통 그룹 회장과 그의 친구가 양분해 소유하고 있다. 샤토의 책임자는 피에르 뤼통이다.
1870년 구축된 37ha의 포도밭은 자갈층과 모래층이 혼합된 토양으로 철분과 점토 등이 섞여 있다. 언덕에 자리한 오존과는 달리 슈발 블랑은 평탄한 곳에 있지만 토양의 성질로 인해 배수가 용이하다. 주품종은 카베르네 프랑과 메를로다. 슈발 블랑은 생테밀리옹과 포므롤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슈발 블랑을 마시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영국의 와인경매사 마이클 브로드번트는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최고 반열에 오른 와인이 바로 슈발 블랑이라는 찬사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