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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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의 귀재’ 이번 배역도 잘 소화할까

  • 송평인/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pisong@donga.com

    입력2003-03-05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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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신의 귀재’ 이번 배역도 잘 소화할까

    이창동 신임 문광부 장관은 순수문학과 문화산업 쪽 경력을 모두 갖춘 드문 경우다.

    취임 직후의 ‘파격 행보’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이창동(49) 문화관광부(이하 문광부) 장관의 이름이 신문지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다. 1983년 경북대 사대 국어과를 나와 서울 신일고 교사로 있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 공모에서 중편소설 ‘전리품(戰利品)’이 가작으로 뽑혔던 것. 당시 심사를 맡았던 문학평론가 유종호씨와 작가 최인훈씨는 ‘문장이 단정하고 말의 절약과 경제적 처리의 묘미도 보여주고 있다’면서도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많아 설득력을 잃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까스로 등단의 관문을 통과하긴 했지만 그는 차츰 작위성을 벗어나 얘기를 풀어가는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87년 ‘소지’, 92년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 2권의 창작집을 냈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그해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설가 이창동은 영화감독 이창동과는 달리 최고라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소설가가 아니었다면 최고의 영화감독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다. 그와는 선후배 사이로 20년 지기인 작가 신경숙씨는 “이선배는 영화감독 이전에 소설가로서 탄탄한 기반을 가진 사람”이라며 “나는 늘 그의 영화를 그의 소설세계의 확장으로 봤다”고 말했다.

    교사→작가→감독 거쳐 끊임없는 도전인생

    그는 살아가면서 보통사람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을 몇 차례 내렸다. 가난한 집안의 대학 졸업생인 그는 87년 안정된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소설에 인생을 걸었다. 그러다 93년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잔심부름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10년, 영화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아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는 다시 ‘감독의 길만 걷느냐’ ‘문화장관으로 외도를 하느냐’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그의 영화 스승(?)인 박광수 감독은 “한번은 촬영장 근처에 두엄이 많이 쌓여 있었지만 인부를 쓸 형편이 못돼 연출부가 직접 나서야 했는데 이감독이 ‘솔선수범’해 두엄을 치우다 허리를 심하게 다쳐 크게 고생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영화홍보를 맡아 작고 낡은 프라이드 승용차를 직접 끌고 촬영장과 언론사를 오가며 고군분투하던 이감독의 모습을 아직 기억하는 기자들도 있다.

    직접 영화를 만들어볼 돈이 필요했던 것일까. 96년 그는 느닷없이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 ‘집념-길 위의 길’을 썼다. 그해 그는 노사모의 핵심 멤버인 영화배우 문성근 명계남씨 등과 함께 영화사 ‘이스트필름’을 설립하고 다음해 ‘초록물고기’라는 영화를 직접 만들어 성공적으로 감독에 데뷔한다. 이들은 또 99년에는 영화제작 투자 전문회사인 ‘유니코리아 문예투자’를 설립했다. 이 인연은 2000년 3월 스크린쿼터문화연대 활동으로 이어졌고 이때 노무현 대통령과 처음 만났다. 노사모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작년 대선 당시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왜 노무현인가’를 역설하며 그의 당선을 측면 지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68년 문화공보부가 출범한 후 5공화국까지는 언론인 출신들이 장관을 도맡다시피 했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후 한때 작가 정한모씨가 장관을 맡기도 했고 89년 문화부가 독립하면서 문학평론가 이어령씨가 초대장관으로 부임해 의욕적으로 사업을 펼쳤으나 크게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김영삼 정권부터는 국회의원이나 비서관들이 돌아가며 장관을 했다. 그런 양상은 김대중 정권까지 이어졌다.

    이감독은 순수문학과 문화산업 쪽의 경력을 모두 갖춘 드문 경우지만 문화뿐만 아니라 체육 청소년 관광까지 포함된 문광부의 다양한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처리할지 우려를 표시하는 이들도 많다.

    이감독의 특징은 과작(寡作)이다. 창작 소설집은 겨우 두 권을 냈을 뿐이고 영화도 세 편 만들었을 뿐이다.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 작가 신경숙씨는 “그의 성실함과 꼼꼼함에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인간의 조건’의 작가 앙드레 말로가 프랑스 문화장관으로,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의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가 그리스의 문화장관으로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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