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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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버는 전문직 수의사, 알고 보면 ‘3D 업종’

[황윤태의 동물병원 밖 수다] 위험하고 노동 강도 높지만 동물 건강에 이바지 한다는 사명감 강해

  • 황윤태 빌리브동물병원 대표원장

    입력2026-03-17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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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에 귀여운 동물들과 늘 함께하는 수의사 모습이 많이 노출되지만, 수의사는 강도 높은 육체적·정신적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더 많다. GETTYIMAGES 

    미디어에 귀여운 동물들과 늘 함께하는 수의사 모습이 많이 노출되지만, 수의사는 강도 높은 육체적·정신적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더 많다. GETTYIMAGES 

    수의과대학이 6년제로 개편된 지 29년 됐다. 수의사도 의사처럼 의료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입시 현장엔 수험생이 선호하는 학과명의 머리글자를 따 ‘의치한약수’(의학·치의학·한의학·약학·수의학)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각종 TV 동물프로그램에서도 수의사들 활약이 두드러지다 보니 어린이 사이에서도 수의사는 선망의 대상으로 꼽힌다. 수의사 하면 보통은 귀여운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그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밝은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수의사로 지낸 지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이는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현실을 체감한다.

    멀쩡한 동물까지 살처분해야 했던 그날

    나 역시 동물 생명을 지키고 싶어 수의사가 됐지만, 지키지 못한 적도 있다. 공중방역 수의사로 근무하던 10년 전 한겨울,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었다. 나는 경기 파주시 한 농가로 향했다. 처음부터 반듯하게 지은 공장형 축사가 아니라, 작게 시작해 형편이 나아질 때마다 조금씩 덧붙여 확장한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삐뚤빼뚤한 건물 곳곳엔 한 가족의 노력과 시간이 배어 있었다. 나의 일은 그곳에 살던 소들을 안락사하는 것이었다.

    축사는 여러 차례 증축된 탓에 천장 높이가 일정하지 않았다. 중장비가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워 수백㎏에 달하는 소 사체를 한꺼번에 옮길 방법이 없었다. 결국 농장주가 직접 지게차 운전대를 잡았다. 자식처럼 키워온 소들을 내가 안락사하면 그는 말없이 사체를 옮겼다. 농장주의 아내는 영하 날씨에도 내복 차림으로 뛰쳐나와 울부짖었다. “우리 소들 멀쩡해요!” “제발 살려주세요!” 아들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머니를 위로하며 함께 울었다. 지게차의 요란한 엔진 소리보다 소들의 거친 숨소리와 아내의 울음이 더 선명했다. 

    아내의 말처럼 그 소들은 멀쩡했다. 구제역은 치사율이 굉장히 낮아 어린 개체를 제외하면 사망률이 1%가 채 되지 않는다. 그 농장은 구제역이 실제 발생한 곳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역 농가의 모든 개체를 살처분하는 이유는 구제역의 높은 전염성 때문이다. 동물의 상품성 하락을 막으려고 구제역에 걸리지 않은 개체조차 모두 살처분한다. 바로 어제까지 건강하게 사료를 먹던 소도, 이제 막 젖을 뗀 아기 돼지도 예외가 아니다. 구제역 발생 농가와 가깝다는 이유로 ‘예방적 살처분’ 대상이 된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눈이 오는 추운 겨울밤이면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수의사는 동물 건강 증진을 위해 힘쓰지만, 정작 자기 건강은 잘 챙기지 못하기도 한다. 수의사는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직업 가운데 하나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남자 수의사의 자살률은 일반인 남성과 비교해 2.1배 수준이다. 여성은 3.5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이나 호주에서도 수의사가 일반인 대비 3~4배 많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집계됐다. 위험 약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직업적 특성도 한 원인이겠지만, 그보다는 다른 직업군에서 찾기 힘든 특유의 심리적 스트레스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수의사는 새끼일 때 만나 접종부터 담당한 후 오랜 시간 정을 쌓아온 동물의 마지막 길을 직접 배웅한다. 그때 느끼는 상실감은 수의사가 겪는 큰 어려움 중 하나다. 분명 치료법이 있는데도 보호자가 자신의 경제적 사정이나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가치관, 기대수명에 대한 비관 등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고 안락사를 요청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깊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진료비 갈등이나 치료 결과에 따른 항의, 온라인상 무분별한 비방 또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화한다.

    일반인보다 자살률 높아

    수의사는 스스로를 ‘3D 업종’ 종사자라 부른다. 동물의 대소변, 혈액 등에 매일 노출되고(Dirty), 장시간 수술과 의학적으로 난도 있는 처치 등 강도 높은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하며(Difficulty), 반려동물의 물림과 할큄, 인수공통전염병에 노출되는 위험한(Dangerous) 직업이기 때문이다. 전문직이면서 3D 종사자인 수의사는 그럼에도 말 못하는 동물과 인간의 건강에 이바지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세상에 스트레스 없는 직업은 없겠지만, 수의사도 단순히 돈 잘 버는 전문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귀여운 동물을 만지기만 하는 직업은 더더욱 아니다. 동물 생명권을 수호하고 공중보건의 최전선을 지키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러움 섞인 시선보다 그들이 마주하는 고통과 책임감에 대한 따뜻한 배려 및 존중이다. 귀여운 동물 뒤에는 언제나 그 무게를 감당하는 사람이 있다.  

    황윤태 수의사는… 2013년부터 임상 수의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경기 성남 빌리브동물병원 대표원장, 한국동물병원협회 위원을 맡고 있다. 책 ‘반려동물, 사랑하니까 오해할 수 있어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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