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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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선임 우왕좌왕하던 AC 밀란, 결국 UEFA 챔스 16강 좌절

[위클리 해축] 페예노르트에 패배… 폰세카 경질 후 콘세이상 감독 체제 급조가 원인

  • 박찬하 스포티비·KBS 축구 해설위원

    입력2025-03-0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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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플레이오프가 열린 2월 18일(이하 현지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의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옛 산시로 경기장). 심판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관중석은 적막에 휩싸였다. 이탈리아 세리에A 명문 구단 AC 밀란이 황인범 선수가 속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프로축구 1부 리그)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 합계 점수 1-2(1차전 0-1 패, 2차전 1-1 무승부)로 패하면서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망스러운 결과에 거센 야유가 나올 법도 했지만 AC 밀란 팬들에겐 믿기지 않는 결과를 사실로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AC 밀란, 피올리 감독과 결별 후 엇박자

    세르지우 콘세이상 AC 밀란 감독.  [GETTYIMAGES]

    세르지우 콘세이상 AC 밀란 감독. [GETTYIMAGES]

    이날 경기 전까지만 해도 AC 밀란은 1차전 원정 0-1 패배를 뒤집을 수 있다고 믿었다. 2차전이 홈구장 산시로에서 치러지고 페예노르트는 황인범을 비롯한 선수 9명이 부상으로 이탈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산티아고 히메네스까지 겨울 이적 시장에서 AC 밀란으로 이적했다. AC 밀란으로선 16강 진출 티켓을 따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2차전에서 역전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경기가 벌어지자 AC 밀란 주전 수비수 테오 에르난데스가 어이없는 ‘시뮬레이션 플레이 퇴장’을 당하면서 수적 열세에 놓였다. 결국 페예노르트의 훌리안 카란사가 동점 골을 넣으며 AC 밀란의 역전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사실 AC 밀란은 이번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엇박자의 연속이었다. 지난 시즌 리그 2위로 일찌감치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손에 넣었지만 스테파노 피올리 감독 체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피올리 감독은 2019년 10월 부진하던 팀에 부임해 2020∼2021시즌 세리에A 준우승과 2021∼2022시즌 우승을 달성한 구세주 같은 인물이었다. 과거 영광이 저물고 중상위권을 횡보하던 AC 밀란은 피올리 감독을 맞아 11년 만에 스쿠데토(이탈리아 리그 우승팀)에 올랐다. 하지만 점차 피올리호(號) AC 밀란에 성장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AC 밀란 구단은 건설적인 미래를 위해 피올리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전임 감독 체제에 한계가 있었다면 팀 분위기를 일신할 새로운 감독을 선임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AC 밀란 구단 수뇌부는 선명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구단 이상에 걸맞은 감독을 영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젊고 유능한 데다 유럽 빅리그에서 성과도 내본 명장들은 AC 밀란의 구애에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AC 밀란이 일찌감치 접촉한 감독들은 기존 팀에 남거나 다른 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결국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 울버햄프턴 원더러스를 떠난 훌렌 로페테기가 유력한 감독 후보로 떠올랐다. 로페테기 감독은 스페인 국가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 지휘봉을 잡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팬들의 강한 반대로 로페테기 감독 부임은 무위에 그쳤다. 더는 사령탑 선임을 늦출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을 때 최종 낙착된 이가 포르투갈 출신인 파울루 폰세카 감독이다.

    폰세카 감독은 근래 이탈리아 AS 로마와 프랑스 릴 OSC를 이끈 경험이 있지만 AC 밀란에서 새 그림을 그릴 적임자는 아니었다. 전술 아이디어가 확실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신선한’ 리더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도자로서 업적도 또렷하지 않다. 폰세카 감독은 우크라이나 샤흐타르 도네츠크에서 성과를 바탕으로 이탈리아 리그에 입성했으나, 이렇다 할 실적을 못 내고 2021년 AS 로마와 결별한 바 있다. 이처럼 워낙 뜻밖의 선임이었기에 AS 로마 팬들도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감독 선임이 늦어진 탓에 이번만큼은 반대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어드바이저’ 즐라탄의 그림자

    2월 18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의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플레이오프에서 AC 밀란이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 1-1 무승부를 거두며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이날 경기에서 실점 후 실망한 기색을 보이는 AC 밀란의 하파엘 레앙. [GETTYIMAGES]

    2월 18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의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플레이오프에서 AC 밀란이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 1-1 무승부를 거두며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이날 경기에서 실점 후 실망한 기색을 보이는 AC 밀란의 하파엘 레앙. [GETTYIMAGES]

    이처럼 불안하게 출발한 폰세카호 AS 로마의 부진은 예고된 것이었다. 적응 시간이 필요한 새 감독이었지만 팬들의 지지를 못 받는 그가 내린 선택에 의심만 쌓여갔다. 팀을 휘어잡고자 일부 스타플레이어와 지나치게 긴장감을 유지함으로써 선수단 반발만 커졌다. 결국 폰세카 감독은 해를 넘기지 못하고 지난해 말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선수단과 사이가 좋지 않은 데다 리그 성적도 7~8위를 오가는 등 부진해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몇 달 만에 또다시 감독을 찾아야 하는 AC 밀란 수뇌부는 세르지우 콘세이상 감독에게 구조 요청을 보냈다. 적당한 연봉 수준, 현재 직장이 없는 상태, 전 소속팀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보여준 성과, 아들 프란시스쿠가 유벤투스 소속이라 이탈리아 세리에A에 관심이 있다는 점 등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부진에 빠져도 폰세카 감독 체제보다는 나으리라는 판단이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AC 밀란은 명확한 계획 없이 시즌을 애매하게 시작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구단 전반적으로 확실한 비전과 철학 없이 그때그때 즉흥적인 결정이 이어지는 게 큰 문제다. AC 밀란은 이탈리아 사업가이자 총리를 지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팀을 소유하며 지금의 명성을 쌓아 올렸다. 구단주 베를루스코니의 행적에는 명암이 공존하지만 적어도 투자는 지금보다 활발했다. 일사불란한 의사결정 구조 덕에 팀이 강하게 유지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 후 AC 밀란은 중국 자본을 거쳐 현재는 미국 자본에 인수됐다. 그사이 강한 수직적 리더십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새로 정착된 것도 아니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의사결정 구조가 혼란을 키울 뿐이다.

    최근 AC 밀란 혼란의 중심에는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어드바이저(adviser)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있다. 즐라탄은 공식적인 팀 조직상 고문(顧問)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단장 이상의 큰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군 감독 선임과 선수 이적, 유소년팀 운영 등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될 정도다. 리더십 부재에 따른 혼란과 불안, 이견이 AC 밀란을 뒤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