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주민들 입장에서 재건축은 평가 절하된 집값을 높이는 데 반드시 필요한 투자다. 어떤 점에선 분당보다 일산이 재건축 선도지구 선정이 더 중요하다.”(일산신도시 한 통합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 관계자)
9월 24, 25일 기자가 찾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와 고양시 일산동·서구는 재건축 선도지구 공모를 맞아 기대감이 한껏 고조된 분위기였다. 도시 곳곳에 ‘1분 만에 제출한 동의서 10년 재건축 앞당긴다’ ‘재건축 선도지구 동의서 제출은 재산을 지키는 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9월 23~27일 진행되는 재건축 선도지구 신청에 필요한 주민 동의서를 내달라는 독려 메시지다. 주간동아 취재를 종합하면 두 지역 상당수 단지가 9월 25일 기준 90% 안팎의 높은 주민 동의율을 기록했다. 높은 재건축 열망을 보여주는 수치다.
‘2030년 입주’ 재건축 선도지구 기대감↑
경기 성남시 수내동 일대 아파트 단지(위). 수내동 한 아파트 단지에 재건축 선도지구 신청 동의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우정 기자]
이날 기자가 찾은 분당구 수내동 양지마을은 한양3·5·6, 금호1·6, 청구2단지가 통합재건축 형태로 선도지구에 도전한 곳이다. 현재 4392채 규모로, 분당에서 재건축을 준비하는 단지 중 최대 규모다. 지하철 수인분당선 수내역과 인근 상권, 중앙공원 등 녹지가 지척이라 입지가 좋다는 평가도 받는다. 서현동 시범1·2구역, 수내동 파크타운, 분당동 샛별마을 등과 함께 재건축 선도지구 선정에 출사표를 낸 주요 주자로 꼽힌다. 이곳에 거주하는 50대 김모 씨는 “집집마다 배관 누수나 주차 공간 부족이 심각하다. 선도지구로 선정돼 빨리 재건축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일찌감치 동의서를 냈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공사 중인 분당 아파트 소유주 70대 오모 씨는 “재건축과 비교해도 리모델링 공사 기간과 비용이 만만찮더라. 나는 원체 리모델링에 반대했는데, 소수 의견은 소용없었다. 당장 시간이 걸리더라도 재건축을 했어야 하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주민 사이에서는 “선도지구에 선정되더라도 부동산시장 상황에 따라 분담금이 얼마나 높아질지 알 수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장은 주민 동의율을 높이기 위한 열기가 여전히 뜨거웠다. 양지마을 60대 소유주 장모 씨는 “9월 들어 동의서 제출을 독려하는 단지 내 방송이 부쩍 늘었다. 주민들이 엘리베이터에 ‘동의서를 빨리 내서 재건축 선도지구로 도약하자’는 쪽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선화 양지마을 통합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 사무국장은 9월 24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어제(9월 23일) 오전 기준 주민 동의율 95%를 넘겼고 오늘도 동의서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전한 주민 동의서와 관련한 일화다.
“집을 세놓고 해외에 사는 이도 적잖다. 그런데 해외에 있는 일부 소유주가 ‘외국에는 지장 날인에 쓸 인주가 없다’고 했다. 인주를 무엇으로 대체할지 이것저것 찾아 직접 써보니 립스틱이 제일 잘 찍히더라. 그래서 인주를 구하기 어려운 해외 소유주에게는 립스틱을 손가락에 칠해 지장을 찍고, 동의서를 국제우편으로 보내면 된다고 안내했다. 또한 미국, 유럽 등 지역별로 담당자를 정해 소유주의 동의서 제출을 독려했다.”
“배관 누수, 주차 공간 부족 심각”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 아파트 단지(왼쪽). 마두동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선도지구 선정 실패 시 우리 단지 5년 뒤 모습’이라고 적힌 홍보물이 붙어 있다. [김우정 기자]
1기 신도시 양대 산맥인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도 재건축 선도지구 선정을 앞두고 들뜬 분위기였다. 9월 25일 기자가 찾은 강촌마을3·5·7·8단지 주민들은 “우리 단지는 입지가 워낙 좋아 일단 재건축만 되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지하철 3호선 마두역이 가까운 이곳 단지는 현재 3616채 규모로, 일산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곳 중 최대 규모다. 강촌1·2단지와 백마1·2단지, 후곡마을3·4·10·15단지, 백송마을1·2·3·5단지 등과 함께 일산 재건축 선도지구에 도전한 곳이다.
강촌마을에 사는 50대 소유주 권모 씨는 “주민 상당수가 수십 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이다. 대단한 이득을 보자는 게 아니라, 살던 동네 그 자리에서 깨끗한 새집에 살고 싶다는 것”이라며 자신이 재건축 선도지구 신청에 동의한 이유를 밝혔다. “낡은 배관 탓에 아무리 난방을 해도 집이 따뜻하지 않다. 겨울철 관리비가 100만 원 가까이 나온 집도 있다고 한다. 올해 겨울도 엄청 춥다는데 벌써 걱정”이라는 게 재건축 필요성을 주장하는 주민들의 전언이었다. 또 다른 70대 주민은 “당초 ‘죽기 전에 재건축이 끝나 새집에 살아볼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회의적이었지만, 이웃들이 ‘지금이라도 재건축을 시작하면 자식, 손주라도 덕을 보지 않겠느냐’고 설득해 동의했다”면서도 “서울 강남이나 분당은 일단 지어놓으면 집값이 쭉쭉 오르니 그렇다 쳐도, 일산 집값은 그 정도는 아니라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장성희 강촌마을3·5·7·8단지 통합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 위원장은 9월 25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주민 동의율 86%를 넘겼다. 우리 단지는 기존에도 일산 중심이라서, 재건축 선도지구로서 최적 입지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강촌마을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백마마을3·4·5·6단지. 이곳 홍보물은 재건축에서 뒤처질 경우 예상되는 불이익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 현수막은 인근 백마초의 올해 신입생이 56명에 불과한 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현실은 젊은 세대의 신축 선호 현상 때문. 선도지구 탈락하면 농촌 고령화가 우리 단지의 미래’라며 재건축 선도지구 신청에 동의해달라는 호소가 담겨 있었다. 또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선도지구 선정 실패 시 우리 단지 5년 뒤 모습’이라며 신축 아파트에 둘러싸인 노후 건물 사진을 담은 홍보물이 눈에 띄었다. ‘선도지구 공모 탈락하면 다시는 이런 기회 없다’ ‘미동의 세대 가족분들의 적극적인 설득 부탁한다’는 백마마을3·4·5·6단지 통합재건축 추진단 명의의 호소문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일산 집값이 ‘똥값’, 왜 이런 대우받아야 하나”
단지 출입구 근처에 설치된 주민동의서 접수 창구에선 추진단 소속 봉사자와 주민 간 대화가 한창이었다. 자신도 이곳 주민이라는 70대 봉사자 심모 씨는 동의서를 낸 주민에게 “우리 동네 집값이 ‘똥값’인데, 대체 일산이 어디가 모자라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이제 합당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병옥 백마마을3·4·5·6단지 통합재건축 추진단장은 9월 25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계속 동의서를 받고 있는데 현재 동의율 80%를 넘겼다”며 “재건축 선도지구로 선정돼 향후 재건축 호재에 따른 집값 상승을 누려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라고 말했다.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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