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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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노소영 이혼 항소심, ‘사법 불신’ 논란

갑작스러운 재판부 변경에 프라이버시 노출, 이례적 판결문 수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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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4-06-21 09: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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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0일 선고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 및 재산분할 항소심 판결을 놓고 ‘사법 불신’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항소심 초기부터 ‘재판부 쇼핑’ 의혹이 불거져 갑작스레 재판부가 변경되는가 하면, 재판장이 가사사건 특수성을 감안해야 함에도 사건 관계자들의 사생활을 공개해 논란을 빚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항소심 판결문에서 중대한 오류가 발견돼 재판부가 판결문을 경정(更正·수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항소심 재판부 배당부터 판결문까지 고비마다 나타난 여러 문제가 사법 불신을 키운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이 자리한 서울법원종합청사. [뉴시스]

    서울고법이 자리한 서울법원종합청사. [뉴시스]

    노소영 측 ‘재판부 쇼핑’ 의혹

    당초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항소심 재판은 지난해 1월 서울고법 가사3-1부(재판장 조영철 부장판사)에 배당됐다. 조영철 부장판사는 평소 법리에 충실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정평이 난 법관이다. 그런데 노 관장 측은 돌연 지난해 2월 15일 조 부장판사 매부가 대표변호사로 있는 K 법무법인 소속 A 변호사를 선임했다. 재판장 친인척이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이 사건을 대리할 경우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어 사건이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서울고법 가사3-1부는 지난해 2월 17일 해당 재판에 기피 신청을 냈고, 서울고법은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 부장판사)로 사건을 재배당했다. 노 관장 측이 조 부장판사를 피하려고 재판부를 바꾸도록 만드는 이른바 ‘재판부 쇼핑’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사건이 재배당되자 A 변호사는 다른 법무법인으로 옮겨 노 관장 사건을 계속 맡고 있다.

    이에 대해 K 법무법인 측은 “우리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와 최 회장-노 관장의 항소심 재판장이던 조 부장판사가 매부-처남 사이라서 소속 변호사가 이 사건을 수임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파트너 변호사 모두 이를 알고 있었다”며 “그러나 A 변호사가 불허 방침에도 노 관장을 대리하는 선임계를 대표변호사 모르게 임의로 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K 법무법인 측은 “A 변호사가 선임계를 제출할 당시에는 수임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고 착수금이 입금된 바도 없는 이례적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노 관장 측은 재판부 변경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 법조인은 “판결이 안 좋게 나올 것 같거나 재판 진행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재판부 친인척이 다니는 로펌을 선임해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재판부 쇼핑이 버젓이 자행되는 게 현실”이라면서 “재판부 쇼핑은 사법부 신뢰를 떨어뜨리고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만큼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관행”이라고 말했다.

    1조3808억 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 판결을 한 김시철 부장판사는 5월 30일 선고 과정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이번 사건을 선고하면서 사생활을 보호해야 하는 가사사건 특수성에도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파경 과정, 최 회장의 재산 형성 과정 등을 약 50분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판사들이 가사사건 판결을 선고하면서 결론에 해당하는 주문을 선고하고 판결 취지를 간략히 설명하는 것과 대비를 이룬다. 김 부장판사는 선고공판을 비공개로 하지 않고, 일부 출입기자를 법정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했다. 나머지 출입기자 50여 명도 중계법정에서 선고를 지켜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프라이버시가 담긴 판결 내용이 외부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시 선고를 지켜본 한 관계자는 “김 부장판사가 언급한 내용 중 일부는 객관적 사실관계가 아닌, 주관적 판단이 상당히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객관적 사실이라도 공개적으로 밝히면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는데, 재판장의 주관적 판단이 들어간 내용까지 밝히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 같다”고 말했다. 이를 놓고 법조계 일각에선 재판장의 재량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사소송법, 가사소송법 어디에도 재판장이 은밀한 개인사를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다는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200쪽에 가까운 항소심 판결문이 선고 다음 날 외부에 유출된 점이다.

    최태원 기자회견 3시간 만에 판결문 수정

    김 부장판사의 재판 진행은 과거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7부장판사로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공작’ 사건 파기 환송심을 맡았다. 당시 김 부장판사가 무죄 판결문을 미리 작성하고, 원 전 원장 무죄를 이끌어내려고 검사와 변호사에 대한 문답 시나리오를 준비한 사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이 같은 재판 진행으로 당시 주심을 맡았던 배석판사와 갈등이 벌어지자 김 부장판사는 다른 배석 판사와 상의하면서 원 전 원장에 대한 심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죄 예단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논란을 산 김 부장판사는 2015년 10월 원 전 원장을 보석으로 석방한 후 2017년 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해당 사건의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김 부장판사의 후임 재판장은 2017년 8월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최 회장-노 관장의 항소심 판결 후 재판부가 판결문을 수정하는 이례적 사태도 발생했다. 서울고법 가사2부는 최 회장 측이 6월 17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재산분할 판단 과정에서 ‘치명적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하자 3시간 만인 같은 날 오후 판결문 일부를 수정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사망한 1998년 당시 SK C&C 지분가치를 10분의 1로 축소하는 바람에 최 회장 기여도가 35.5배에서 355배로 10배가 부풀려졌다”는 최 회장 측 주장을 사실상 인정해 판결문을 경정한 것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분할 소송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에 대해 논란이 거세지자 서울고법 가사2부는 이튿날인 6월 18일 이례적으로 4장 분량의 입장문을 배포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최종 재산분할 기준을 ‘올해 4월 16일 기준 SK 주가 16만 원’이라고 제시한 뒤, 이에 대한 기여도가 ‘최종현 선대회장 125배, 최 회장 160배’라고 밝힌 것이다. 따라서 재산분할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 입장이다. 전제가 달라졌는데도 결론은 같다는 이해하기 힘든 설명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 최 회장 측은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선 최 회장 기여도를 따진 기간을 1998년부터 2009년까지로 산정해 355배로 적시했다가 경정을 통해 35.6배로 수정했다”면서 “그러나 입장문에선 최 회장의 기여도 산정 기간을 1998년부터 2024년까지로 늘려 잡아놓고 기여도가 경정된 판결문과 달리 160배로 설명했다. 추가로 경정하겠다는 것인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초동 한 법조인은 “서울고법 가사2부는 이미 판결을 내린 만큼 치명적 실수가 있었더라도 판결문을 경정하는 일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서울고법 가사2부가 6월 18일 내놓은 입장문은 기존 판결문 논리를 부정하고 새로운 논리를 추가한 것으로, 사실상 새로운 ‘간이 판결문’을 쓴 것과 같아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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