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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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 연기로 죽음의 공포에 떠는 서울대병원 중환자들

교수 휴진 시작되자 의료 공백 현실화… 의사 출신 환자 “이렇게 파업하는 건 도리 아냐”

  •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전혜빈 기자 heavin0121@donga.com

    입력2024-06-21 09: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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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7일 오후 2시 반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실 보호자 대기실에는 난데없이 세간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 2명이 간신히 누울 정도의 작은 돗자리에 반찬통과 양치 도구, 방울토마토가 담긴 종이컵이 눈에 띄었다. 돗자리를 지키는 신모 씨(65)는 6월 11일부터 이곳에서 위암 말기인 형의 임종을 기다리고 있다. 원래 몸이 좋지 않던 신 씨의 형은 1주일 전 쓰러져 이곳 응급실로 실려 왔다. 의사는 형의 혈압이 너무 낮아 검사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치료는 이미 늦었고, 다른 병원으로 가고 싶어도 옮기는 도중에 사망할 수 있는 위중한 상태였다. 가족은 “임종실에라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남은 방이 없다며 거부했다. 결국 신 씨 가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일주일째 응급실 보호자 대기실 바닥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응급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아버지 생각에 딸은 “의료대란이 아니었으면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길이 좀 편안하지 않았겠느냐”며 눈물을 글썽였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에 돌입한 6월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입구. [전혜빈 기자]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에 돌입한 6월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입구. [전혜빈 기자]

    말기 위암 환자 임종만 기다리는 가족 눈물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들의 ‘무기한 휴진’ 첫날인 6월 17일 서울대병원 본원은 평소보다 한산했지만 진료 차질로 환자들은 불안에 떨었다. 혈액종양내과 대기실 의자 60여 개는 빈자리라곤 없던 평소와 달리 군데군데 자리가 비어 있었다. 대기실 뒤편 소파에는 발을 뻗은 채 잠을 청하는 환자도 보였다.

    3주에 한 번씩 항암치료를 하러 온다는 박모 씨(67)는 “평소 자리가 없어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서울대병원 암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교수는 각 과마다 1~2명에 불과했다. 갑상선센터는 텅 빈 채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명의의 ‘휴진 안내문’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휴진이라는 걸 알면서도 고통이 심해 병원을 찾은 환자도 상당수였다. 이날 갑상선암 환자 보호자 A 씨는 남편과 함께 무작정 서울대병원을 찾아왔다. 그는 “남편이 진통제가 없으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파한다”고 말했다. 담당 교수를 2시간 넘게 기다린 부부는 결국 진통제 처방전만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발길을 돌린 환자는 그들만이 아니다. 응급실 보호자 대기실에서 만난 B 씨(57)의 제부도 협력병원 뺑뺑이를 돌았다. B 씨의 제부는 두 달 전 서울대병원에서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하려면 먼저 항생제 주사를 한두 달 맞아야 했다. 당연히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줄 알았지만 병원 측은 “협력병원으로 가라”며 다른 병원 한 곳으로 안내했다. 급하게 찾아간 협력병원 측은 “환자 상태가 너무 심각해 손을 쓸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시 찾아간 서울대병원에선 또 다른 협력병원을 안내했지만 이번에도 항생제 처방전만 줄 뿐 입원은 시켜주지 않았다. B 씨는 “서울대병원에서 연결해준 병원인데도 말기 암 환자를 받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은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에서도 입원을 거부당한 사이 환자 배엔 주기적으로 복수(腹水)가 찼다. 위급할 때마다 서울대병원을 찾아 복수를 빼냈다.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뒀느냐”는 의사의 말이 가족 입장에선 야속하기만 하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안정적으로 치료받았다면 이토록 상태가 악화하진 않았으리라 게 B 씨 생각이다. 그는 “한 달 전만 해도 걷고 뛰어다니던 사람이다. 이제 50대밖에 안 된 제부에게 남은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러다 남편 죽으면 어떡하나”

    6월 17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암센터 대기실이 평소와 달리 한산한 모습이다. [임경진 기자ㅔ

    6월 17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암센터 대기실이 평소와 달리 한산한 모습이다. [임경진 기자ㅔ

    극심한 통증으로 급히 서울대병원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린 환자도 있었다. 같은 날 오후 3시 40분쯤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다른 병원으로 가려고 택시를 잡고 있던 이모 씨(77)는 “4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응급실에 들어가지도 못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 씨는 소장(小腸)에 천공(穿孔)이 생겨 3년 전 서울대병원에서 소장 절제술을 받았다. 이날 천공이 났을 때와 비슷한 강한 통증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오전 11시쯤 서울대병원에 도착했지만 결국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아내 남모 씨(70)는 “서울대병원 측이 사설 구급차를 타고 (다른 병원에) 가라고 했는데 너무 비싸서 부르지 못했다”며 “택시를 타고 원자력병원으로 가려 한다”고 말했다. 남 씨는 “3년 전 천공이 생겼을 때 수술을 못 받으면 남편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지금 증상이 당시와 비슷하다”며 “이러다 남편이 죽으면 어떡하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무기한 휴진으로 진료 일정이 변경된 경우는 부지기수다. 항암병동 앞에서 만난 C 씨(65)는 “남편이 전립선암 말기 환자라 항암치료 중”이라며 “원래 오후 3시 30분에 교수 외래진료가 예약돼 있었는데 12시 45분으로 변경됐다”고 말했다. C 씨는 “오늘 오후 진료가 없다고 안내 문자메시지가 왔다”며 “파업 때문에 진료 시간이 줄어들어 암 환자 보호자 입장에서는 불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외래진료실 앞에서 만난 노모 씨(72)는 2018년 신장 이식을 받고 석 달에 한 번꼴로 외래진료를 받고 있다. 3월 진료에서 의사로부터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이러다가는 투석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노 씨는 “6월 20일 외래진료가 7월로 미뤄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며 “나처럼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은 면역억제제를 꾸준히 먹어야 하는데 진료 일정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미 입원한 환자도 무기한 휴진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의료 파업의 전운이 감돌던 6월 14일 서울대병원 본원 주사치료실 앞에서 만난 간병인 강모 씨(50)는 “의사 파업 때문에 다음 주 치료 예약이 안 된다고 들었다”며 “지금 돌보고 있는 뇌염 입원 환자는 다음 주 주사 치료 예약이 다음 달로 미뤄졌다”고 전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불편을 겪기는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도 마찬가지였다. 6월 17일 오후 1시 30분 분당서울대병원 1층 로비에서 만난 60대 중반 여성 D 씨는 “일방적으로 진료를 거부하는 건 불법이라서 그런지 교수가 직접 전화해 ‘예약을 미뤄도 괜찮겠느냐’고 묻던데, 괜찮다고 해야지 어쩌겠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뇌동맥류 수술을 받은 그는 이날 신경외과와 가정의학과 두 곳에 진료 예약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뇌동맥류 수술 경과를 관찰하기 위한 신경외과 진료만 받을 수 있었다. 6월 13일 가정의학과 교수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 “진료 예약을 7월 1일로 미루자”고 했기 때문이다. 진료가 미뤄지면서 D 씨는 6개월에 한 번씩 맞아야 하는 골다공증 주사를 맞지 못했다. 그는 “골다공증 주사가 급한 것은 아니라지만 진료가 미뤄지는 것을 직접 경험하니 내가 위급한 상황이 됐을 때는 어쩌나라는 생각에 불안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세 번째 항암주사를 맞았다는 한 60대 남성은 예약돼 있던 혈액종양내과 교수의 진료를 받지 못했다. 그는 “원래는 교수를 먼저 보고 항암주사를 맞기로 돼 있었는데, 진료를 생략하고 바로 항암주사를 맞았다”며 “교수가 지난주 금요일에 전화가 와 ‘자신은 진료를 못 보지만 항암주사는 맞을 수 있게 잘 준비해두겠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환자 볼모로 잡은 의사들 괘씸”

    이날 검사를 받으려고 분당서울대병원을 찾은 40대 유방암 4기 환자는 혈액종양내과 교수들의 휴진 소식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음 주 화요일에 혈액종양내과 진료가 잡혀 있다. 전공의 파업 때 이 병원 피부과 진료가 예약일 2~3일 전 취소된 적이 있어서 다음 주 진료도 취소될까 봐 걱정”이라며 불안해했다. 이어지는 그의 하소연이다.

    “유방암은 전이가 빠르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항암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하루 이틀은 밀려도 크게 상관없다지만 환자 입장에선 당장 항암주사를 안 맞으면 죽거나 암이 퍼질 것 같은 공포감이 든다. 다음 주 진료가 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의료 공백 장기화로 의료진의 피로감이 높아지면서 환자들은 진료와 치료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6월 17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본 송모 씨(84)도 “오늘 교수 얼굴이 유난히 팅팅 부어 있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는 데다, 뭘 물어봐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며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교수들도 점점 힘에 부치자 대충 진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의사들의 무기한 휴진에 입을 모아 반대 목소리를 냈다. 서울대 출신 의사로 현재 췌장암 4기 투병 중이라는 60대 환자는 “의사들이 잇속을 챙기려고 파업하는 건 아니지만, 국민적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파업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유방암 3기 환자의 보호자도 “외래진료 일정이 바뀌는지 물어보면 의사가 짜증만 내고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면서 “환자를 볼모로 잡은 의사들이 너무 괘씸하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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