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2047년까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민간기업이 투입하는 자금 규모다. 최근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수급 문제가 도마에 오르면서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도 추후 완공된 생산시설 가동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필요로 하는 대규모 전력을 충당하려면 동해안 등 지역에서 전기를 끌어와야 하는데 송배전망을 비롯한 전력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경기 남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일부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일반산업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SK하이닉스, 자구책 마련했지만…
정부 및 전력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수요는 최대 10GW(기가와트)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서울 전체 전력 사용량과 비슷한 규모로 기당 1GW 전력을 생산하는 신형 원전 10기를 새로 지어야 조달 가능한 수준이다.당장 10GW에 달하는 전력을 충당할 방법은 전력 자급률이 100% 이상인, 잉여 전력이 많은 지역에서 전기를 받아오는 것이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는 수도권에 새로 발전시설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력을 이송할 신규 송배전망 건설은 2008년 밀양 송전탑 사건, 한국전력공사 자금난 등 영향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동해안 원전 및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500㎸(킬로볼트)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는 당초 2019년 2월 준공이 목표였으나 2026년 6월로 미뤄졌다. 태안화력 등 서해안 석탄화력발전소와 수도권을 잇는 ‘345㎸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목표했던 2012년 2월보다 150개월 넘게 지연된 올 연말쯤 완공 예정이다.
365일 24시간 내내 가동되는 반도체 생산시설 특성상 안정적인 전력 수급은 매우 중요하다. 전기가 끊겨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완전 복구까지 최대 수개월이 소요돼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1년 2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극심한 한파가 닥쳐 삼성전자 현지 반도체 공장이 3일간 정전을 겪었을 때 발생한 손실은 3000억~4000억 원에 달한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국민의힘 고동진 의원이 “반도체 경쟁 우위를 점하려면 ‘인수전’(인력·수력·전력)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SK하이닉스는 직접 반도체 클러스터 내 생산시설에 전력을 조달할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SK E&S가 반도체 클러스터에 LNG(액화천연가스) 열병합 발전소를 건설하고 SK하이닉스 공장에 열·전기 에너지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이는 근본적 해법은 아니다. 탄소중립을 위해 한국중부발전의 노후 화력발전소를 줄이고 그 여분만큼 LNG 발전소를 짓는 방식인데, 노후 발전소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최종적으로 조달 가능한 전력이 어느 정도일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미국·대만 천문학적 보조금과 비교”
전문가들은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 문제에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미국, 대만 등 경쟁국에선 천문학적 보조금을 쏟아부어 전력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고 해외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면서 “반면 한국은 한전이 기업들에 ‘수익자 부담 원칙’을 거론하며 되레 송배전망 구축비용을 떠넘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반도체에서 기본 중 기본인 전력 문제를 이제 와 논의하는 것도 문제인데, 여기에 전폭적 지원도 없다면 국내 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도 (반도체 클러스터를) 선택할 유인이 사라진다”며 “반도체 산업 성장과 관련한 정부 의지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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