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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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 높은 명품업계가 K-아트에 빠진 이유

한국인 인당 명품 소비 세계 1위… 샤넬·루이비통·디올 앞다퉈 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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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입력2023-06-0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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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6일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구찌의 ‘2024 크루즈 컬렉션’에서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뉴스1]

    5월 16일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구찌의 ‘2024 크루즈 컬렉션’에서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뉴스1]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의 ‘2024 크루즈 컬렉션’이 5월 중순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려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전 세계에 소개됐다. 국보 제223호로 지정된 근정전은 조선시대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이곳에서 패션 브랜드 행사가 열린 건 처음이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은 4월 ‘2023 프리폴 여성 컬렉션’ 첫 장소로 한강 잠수교를 선택했다. 세계 최대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를 이끄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3월 한국을 방문해 국내 백화점과 면세점을 둘러보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손영식 신세계백화점 대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김은수 갤러리아백화점 대표 등 유통업계 수장들을 만났다.

    콧대 높은 글로벌 명품업계가 한국 시장 선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유럽의 다양한 명품 브랜드가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일본 도쿄에 이어 한국 서울에 주목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명품시장에서 한국은 새롭게 떠오르는 ‘큰손’으로 인식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명품시장은 141억6500만 달러(약 18조8000억 원) 규모로, 미국·중국·일본·프랑스·영국·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7번째로 크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발표한 명품 소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명품 구입액은 168억 달러(약 22조2800억 원)에 달했다. 인당 명품 구매액은 325달러(약 43만 원)로 세계 1위였다. 미국은 280달러, 중국은 55달러였다.

    K-아티스트에 연이은 러브콜

    글로벌 명품업계가 최근 한국 시장에서 집중하는 분야는 저명한 K-아티스트와 협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함께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술품시장은 역대 처음으로 미술품 유통액 1조377억 원을 기록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2021년 7563억 원 대비 37.2% 성장한 수치다. 급성장하는 한국 미술시장은 글로벌 명품시장에서 높은 파급력을 발휘하며 브랜드 명성을 높이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한 K팝과 ‘오징어 게임’에 힘입은 K-드라마의 인기도 한국 아티스트의 위상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업계 관계자는 “럭셔리의 대명사로 통하는 명품과 고급스러운 취미로 인식되는 미술이 만나 윈윈(win-win)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서보 화백이 루이비통과 협업해 완성한 아티카퓌신. [루이비통 홈페이지]

    박서보 화백이 루이비통과 협업해 완성한 아티카퓌신. [루이비통 홈페이지]

    루이비통은 지난해 11월 한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과 손잡고 한정판 가방을 선보였다. 브랜드 역사상 한국 아티스트와 협업한 첫 사례다. 박 화백이 참여한 작업은 2019년부터 루이비통이 펼치고 있는 ‘아티카퓌신(ArtyCapucines)’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매년 현대미술 작가 6명과 협업해 브랜드의 대표 가방인 ‘카퓌신’을 재해석하는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일컫는다. 그동안 일본 출신 세계적인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 ‘포스터모던 키치의 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쿤스 등이 참여했고, 아티스트별로 200점 한정판 에디션으로 출시됐다. 1000만 원 넘는 고가임에도 완판될 만큼 인기가 높다.

    박 화백의 아티카퓌신은 1960년대 말부터 이어진 ‘묘법(描法)’ 시리즈 중 2016년 작품을 기반으로 디자인됐으며, 작품 질감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 특유의 아름다운 촉감과 질감을 재창조하기 위해 송아지 가죽에 먼저 붓질 효과를 낸 후 작품의 고화질 스캔본을 바탕으로 고도의 3D(3차원) 고무 사출 작업을 가죽에 정교하게 적용했다. 천연 리넨 캔버스를 안감으로 덧댄 가방 안쪽에는 박 화백의 원작 뒷면을 그대로 재연했으며, 포켓에는 프린팅된 서명도 넣었다. 박 화백의 가방은 출시 한 달도 안 돼 모두 품절됐다.



    김민정 작가가 작업한 레이디 디올 백. [디올 홈페이지]

    김민정 작가가 작업한 레이디 디올 백. [디올 홈페이지]

    디올은 K-아티스트와 협업이 가장 활발하다. 2017년부터 매년 브랜드의 시그니처 백인 ‘레이디 디올’을 세계 각국 아티스트 11명과 협업해 재해석한 ‘디올 레이디 아트’를 공개하고 있는데 2019년에는 설치 미술가 이불, 2020년에는 이지아 작가가 참여했다. 올해 7번째 컬렉션에는 한지를 재료로 독창적인 작업을 선보여온 김민정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김 작가의 한지 작품은 지난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억5000만 원에 낙찰될 만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디올은 또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이화여대에서 ‘2022 가을 여성 패션쇼’를 열었고, 5월에는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서울 성수동에 콘셉트 스토어인 ‘디올 성수’를 오픈했다. 1946년 프랑스 파리 몽테뉴가에 들어선, 디올의 상징으로 꼽히는 ‘30 몽테인’ 매장 외관을 재연해 이목을 끌었다. 디올만의 정체성이 가득한 이곳 인테리어에는 폴리스티렌 폼으로 가구를 제작하는 이광호 디자이너와 목재나 짚 등 자연 소재로 작품을 선보이는 서정화 디자이너가 참여했다.

    한국 전통 공예도 후원

    샤넬은 지난해 한국 전통 문화를 보호하고 계승하는 재단법인 ‘예올’과 5년간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예올×샤넬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장인정신을 중요시하는 샤넬은 2002년부터 수백 명의 자수 장인, 깃털 장인, 액세서리 장인, 금세공 장인, 슈즈 장인 등이 수작업으로 만든 예술 작품 같은 메티에 다르(Me′tiers d’Art·공방) 컬렉션을 선보여 왔다. 2002년 설립된 예올 역시 선사시대 유물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활동, 사직단 복원 및 정비 활동 등 문화재 보호 활동을 시작으로 한국 공예 장인을 후원하고 젊은 공예인을 발굴·지원하는 사업으로 활동을 넓히며 한국 전통 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장인정신에 대한 찬사’라는 공통된 방향성을 가진 샤넬과 예올이 만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예’(올해의 장인), 현재와 미래를 잇는 ‘올’(올해의 젊은 공예인)을 선정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샤넬은 선정된 장인과 공예가의 지속가능한 작품 활동을 위해 다양한 지원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프로젝트 첫해였던 지난해 11월에는 ‘2022년 올해의 장인’에 ‘금박장’(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박수영, 올해의 젊은 공예인에 옻칠공예가 유남권이 선정됐다. ‘반짝거림의 깊이에 관하여’ 전시를 통해 두 작가의 프로젝트 결과물을 공개했는데, 한국 전통 문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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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강현숙 기자입니다. 재계, 산업, 생활경제, 부동산, 생활문화 트렌드를 두루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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